[조용호의 문학공간] "물방울로 사라진 엄마에게 바치는 송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0-11-06 12:52:39

9년 만에 묶어낸 한지혜 소설집 '물 그림 엄마'
'모성의 신화' 깨고 '엄마'를 직시하는 이야기들
구차한 삶의 바닥 껴안는 웅숭깊은 시선과 유머
"우리 삶이란 물방울로 태어나 물방울로 흩어지는가"

"반복되어 익숙해지는 기적은 기적일 수 없었다. 엄마가 세 번쯤 살아나자 고비를 넘기셨습니다 하는 의사들의 목소리에 차츰 권태가 꼈다. 이건 기적입니다 라고 더 이상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처음 한두 번은 놀라웠을 그 거듭된 회복이랄지 회생이랄지 부활이랄지 하는 상황은 자식들의 삶에도 균열을 가져왔다. …무엇보다도 괴로운 건 그런 시간들이 반복되면서 우리도 우리의 진심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엄마가 살아났다. 의사는 엄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도록 권유했는데, 그 엄마가 악착같은 투쟁으로 저승 문턱에서 다시 돌아왔다. 엄마는 이후에도 여러 번 같은 고비를 넘기고 살아났다. 임종을 지키라는 연락이 오는 건 늘 깊은 밤이거나 새벽이었고, 초조하게 지방에서 첫 차를 기다리던 오빠는 이제 그저 이른 차를 타고 올라왔으며, '나'는 이제 깊은 새벽에 어린아이를 집에 두고 나오지 않게 되었다. 고비를 넘기는 동안에도 엄마는 요양 병원 비슷한 단어만 꺼내도 당장 혀라도 깨물어 버릴 것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9년 만에 작품집을 묶어낸 소설가 한지혜. 그는 "'물 그림 엄마'는 엄마를 마음 편히 사랑하지 못했던, 엄마가 아픔이었던 이들을 위한 소설"이라고 밝혔다. [민음사 제공] 


한지혜가 9년 만에 펴낸 소설집 '물 그림 엄마'(민음사)의 서두에 포진한 단편 '환생'에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엄마가 등장한다. 헌신적인 모성을 발휘하는 엄마가 아니라 자식들에게 기대며 끊임없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엄마다. '이제껏 엄마는 세상천지에 당신이 가장 불쌍하고 안 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신밖에 위할 줄 몰랐다. 우리를 키우는 동안에도 우리를 돌봐 주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돌봐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 엄마가 생사를 넘나들면서 자식들 중 하나의 자식으로 환생하고 싶다는 말을 한다. '나'는 엄마가 내 자식으로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속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엄마의 시선을 피한다. 이 엄마를 어찌할까.

 

이 단편에는 부모 세대를 보내야 하는 자식들이 겪는 일단의 상황이 세밀하게 드러나 있다. 고령의 부모마저 편의에 따라 훔치고 버리는 '토마토를 끓이는 밤'도 마찬가지인데, 고령화시대 자식들이 맞닥뜨린 문제를 이 즈음 소설이 정면에서 파고드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런 미덕보다 정작 작가 한지혜가 '환생'에서 맞추는 포커스는 따로 있다. 그녀는 이후에 등장하는 단편들을 통해 이어가거니와 '엄마'라는 모성의 신화를 깨고 한 인간으로서의 여성을, 그의 딸을 냉정하게 돌아보며 지금 이곳의 삶을 웅숭깊게 녹여낸다. 눅진한 삶은 후경(後景)으로 희미하게 물러선 채 날선 페미니즘이 전경(前景)에서 목청을 높이는 스타일과는 다르다.

 

'환생'의 엄마는 왜 그토록 자신을 스스로 불쌍히 여겼을까. 말미에 그 사연이 드러나지만 그것만으로 모두 납득하기는 어렵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연민, 부모 자식의 질긴 업이 만만치 않은 여운으로 남는다. '함께 춤을 추어요'의 화자는 TV 상담 프로그램 출연자인 심리학 박사에게 거칠게 항의한다. 작가의 모성에 대한 시각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지만, 그 시각이 우리 사회에서 수용되기 어렵다는 현실은 화자가 착란 상태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으로 대체한다.

 

"남편에게 선생님이 들려주신 심리 분석에 대한 이야기를 해봐야 '결핍'에만 주목할 거예요. 제 속의 아이와 대등하게 만나기는커녕 제게 엄마 노릇을 강요하겠죠. …왜 나는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이인 동시에 모든 아이의 엄마여야 하는 건가요. 엄마에 대한 결핍 운운하는 건 남성 학자들의 잘난 모성 신화 아닌가요. 아무래도 세상 대부분의 심리학자, 정신분석학자들이 남자라서 그따위 소리를 지껄이는 것 같아요. 그놈의 엄마, 엄마, 엄마 타령. 빌어먹을."


'으라차차 할머니'는 엄마의 엄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파란 많은 한 여성의 삶을 이야기로 위무하는 단편이다. '나'는 꼽추인데 집안에서 밀려난 나를 거둬준 이도 '꼽추' 할머니다. 할머니 김순녀 여사는 어느날 "아가, 나 간다"고 말하고, 가긴 어딜 가느냐는 '나'의 말에 "내가 갈 데가 저세상 말고 또 있나"라고 답한다. 쿨하게 전개하는 비통함 속에 웃음기를 내장한 한지혜 식 화법이다. 할머니는 자신이 가고 나면 '김순녀 여사 90년'을 찾아 읽어보라고 말한다. 그 회고록은 '지어도 너무 지어냈고, 꾸며도 너무 꾸몄으며, 허풍과 젠 체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전생에 자신이 너무 예뻐서 뭇 남성들 애간장을 녹였는데 그 총각들이 자신을 잊지 못해 이생까지 따라온 거라, 그 넋을 달래느라 등에 지고 살기로 해 꼽추가 되었다는 식이다. 나의 경우는 '서로 좋아 붙어나온' 쌍둥이였는데, 둘을 나누려 하자 얼른 하나를 내 속에 감추어 '꼽추'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가만히 심장소리를 들어보면 두 개의 박동이 느껴질 거라고 할머니는 말한다. "그 말이 참말일 리는 없지만, 그러나 참말 같기도 했다. 가끔은 그 이야기가 사실 같았다. 사실이었으면 싶기도 했다. 여전히 무서웠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하다고 상상하면 한편으로는 놀랍고, 신비하고, 경이롭고, 황홀했다. 그러면 그게 진실이 아닌가 싶었다."

 

이야기의 효능이란 그런 것일지 모른다. 단지 허황된 위로가 아니라 어찌해볼 수 없는 삶을 새롭게 해석해 생의 끝까지 걸어갈 동력을 제공하는 그런 기능이야말로 아름다운 거짓말의 순기능일 터이다. 등에 혹이 아니라 삶을 지고 다닌 거라고, 제 목숨을 다 살고 나면 등이 펴진다고, 그래서 할머니도 으라차차 기지개를 켜고 당신 갈 길로 가려나 보다고, 또하나의 나를 등에 지고 다니는 '나'는 생각한다. 김순녀 여사 90년 인생을 다 읽은 후, '나'는 그 낡고 오래된 공책을 한 장씩 찢어 '꽃가마'를 장식할 종이꽃을 접는다. '으라차차 할머니'는 이야기꽃으로 장식한 상여인 셈이다.

 

'으라차차 할머니'와 '엄마'의 관계도 일그러져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나'에게 "(집을 나갔던 할머니가) 머리 허옇게 와서 거뒀지, 검은 머리로 왔으면 말도 안 섞었을 거"라고 했다. 엄마의 엄마도 '환생'의 '나'와 엄마 같은, 범상치 않은 모녀이다. 한지혜의 엄마들은 대체로 문제가 많은 존재인데, 소설집 말미에 배치한 표제작 '물 그림 엄마'에 이르면 비로소 엄마라는 존재와 화해하고 제대로 떠나보내는 의식에 참여할 수 있다.

 

▲한지혜는 "모성이, 본성이 아니라 하나의 신화이고 환상이라는 데 이제는 대부분 동의하지만, 그 훨씬 이전부터 나는 엄마에게 그 사실을 배웠다"고 썼다. [민음사 제공]


'물 그림 엄마'는 태어나자마자 극장에 버려졌고, 극장에서 만난 남자와 눈이 맞아 나를 가졌으며, 남자에게 버림받은 후 극장에서 청소를 하는 일로 생계를 꾸리며 나를 키웠다. 삶을 가공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공간이 극장이라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으라차차 할머니'의 회고록과 '극장'은 같은 반열에 놓인 셈이다. 그 엄마가 극장 맨 앞자리에 앉아 돌연사한 이후, 귀신이 되어 줄곧 나타나다가 신혼여행지까지 따라온다. '적당한 무관심과 거리두기'가 생전 엄마와 딸의 태도였는데 죽어서는 이토록 따라다닌다. 신혼여행지인 라스베이거스의 한 극장에서 무대를 관람하다가 '나'는 한순간 몸 안에서 뭔가 움직이는, 아주 작고 미세한 파동을 느낀다. 그것은 물방울이 터지는 느낌과 비슷했고, 그 순간부터 엄마는 나타나지 않았으며 극심한 고통을 주던 입덧도 끝이 난다.

 

"내 배 속에서도 아주 작고 미약한 무언가가 움직였다. 작은 물방울처럼 퐁퐁 시작해 북을 두드리듯 둥둥거리는 울림으로 바뀌었다. 안에서 터진 한 방울의 물은 몸 전체를 노곤하게 적시더니 어느 순간 눈 밖으로 흘러나왔다. …극장에서 두 번째 태동을 느낀 순간,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는데 그것은 엄마가 사라지는 모습이 한 방울의 물이 온 우주로 흩어져서 사라지는 모습을 닮았다면 태동은 한 방울의 물이 온 세상을 적시는 그런 느낌이었다. 우리의 삶이란 결국 물방울로 태어나 물방울로 흩어지는 건가."

 

엄마는 물방울처럼 사라졌고, 다른 생명이 배 속에서 물방울이 되어 북을 두드리듯 퐁퐁거린다. 비로소 '생명'을 매개로 엄마를 품고 보내는 치유의 단계에 이른 것이다. 한지혜는 "엄마란, 내게 늘 가장 어렵고 아픈 이름"이라며 "엄마가 떠난 지 몇 년 지난 지금도 그렇다"고 말한다. 그는 "이제까지 써 온 많은 이야기들이 엄마에게서 출발했는데, 이제 그 이야기의 주인에 대해 기록하고 싶다"면서 "그것이 헤어지는 순간, 사랑한다,는 말 대신 엄마에게 전한 나의 작별 인사이자 약속이기도 하다"고 썼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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