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종찬 "국정원 특활비? 국정 잘 돌아가게 지원한 윤활유"
김당
dangk@kpinews.kr | 2020-07-23 11:28:53
"국정원 특활비 사법처리 문제 털고 가야…이병기·이병호 억울"
UPI뉴스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 특활비 횡령' 사건을 취재하면서 이종찬 전 국정원장을 만나 과거의 '관행'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그런데 그 뒤에 박지원 전 의원의 국정원장 지명이 이뤄졌다. 이에 기사화를 전제한 정식 인터뷰는 아니었지만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일문일답'으로 정리해 공개한다. [편집자주]
ㅡ국정원 특활비(국정원장 특수사업비) 관련 김대중 정부 장관들과 이헌수 기조실장과 일부 예산관 등을 만나 취재해 보니 다들 '관행이었다'고 한다.
"김대중 정부 초대 원장이 되어 가보니 전(김영삼) 정부까지는 대통령이 관행적으로 쓸 수 있는 정보비가 국정원 예산에 책정돼 있더라. 이강래 기조실장 첫 업무보고 때 '100억 원대의 대통령 예산이 있으니 3~4억원 짜리 수표를 떼어서 청와대 주례보고 때 가져가 드리십시오' 그러더라. 그래서 내가 '대통령 첫 보고인데 돈을 들고 가는 것은 모양이 안 좋으니 선(先)보고 하고 필요하시다면 드리자, 이렇게 했다."
ㅡ과거 정부 때부터 국정원 예산에 '대통령 몫'이 있었다는 이야기네요.
"그런 거지. 원장은 대통령의 정보참모니까 대통령께 정보비를 드릴 수 있지만 물어보고 드리자, 하고 그냥 갔다. 대통령 주례보고를 다 마치고 돈 얘기를 했다. 지난 정부에서는 '대통령 몫' 정보비를 100억대 단위로 쓰셨는데 어떻게 할까요? 그랬더니 DJ가 한참을 고심하더니 '쓰지 맙시다' 그러더라. DJ는 야당 시절에 비자금 공세를 겪어서 대통령 돼서도 돈 문제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김대중은 '쇼'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실제로 매우 조심했다. 그래서 그냥 왔다."
ㅡ그런데 김대중 정부에서도 청와대가 국정원 예산을 전용했다는 얘긴 왜 나온 것인가.
"그게 김대중 대통령 취임후 첫 한미정상회담이 6월로 잡혀 미국을 방문하는데, 청와대가 지난 정부 때도 국정원(안기부)이 경비를 지원해줬다며 방미 수행단 예산이 부족하니 경비를 보조해 달라는 거야. 당시 박지원 공보수석이 전화해, 기자단 방미 취재하는데 경비가 없으니 돈을 좀 달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요전에 어른(대통령)이 국정원 돈 안 쓰겠다고 했는데 결재 받았냐' 그랬더니 어른한테 결재 받은 거라며 받으라고 했다고 해서 처음으로 경비 지원을 해준 것이다."
ㅡ그때 얼마를 지원했나?
"처음 준 것은 3~4억원이었는데 그때는 정기적인 지원은 아니었다. 이후로도 주로 언론대책비 등의 명목으로 부정기적으로 지원했다."
당시 청와대 공보수석실과 출입기자들에 따르면, 앞선 정부까지는 대통령 해외순방 취재경비를 청와대에서 다 대줬으나, 김대중 정부 때는 일부 숙박비와 취재경비만 청와대가 제공했다. 당시 청와대 공보수석실의 한 관계자와 출입기자에 따르면, 해외순방 때는 취재기자들에게 선물 구입비 명목으로 '1인당 500달러씩' 지원했다.
과거에는 일반 국민의 해외여행이 드물 때여서 해외 출장을 가면 직장 동료나 가족들에게 선물을 사오는 게 관행이었다. 이에 청와대가 대통령 해외순방을 취재하는 출입기자들에게 일종의 '선물 구입비'를 1인당 500달러(60만원)씩 정액으로 지원해준 것이다. 국정원이 청와대에 제공한 기자단 '선물 구입비'만 해도 100명이면 1회에 6천만원이고, 5년간 50회로 셈하면 30억원이다.
ㅡ정무수석은 야당 정치인들 만나는 게 일이고, 공보(홍보)수석실도 기자들과 만나면 밥값을 내야 하는데 업무추진비가 월 500만원밖에 안 돼 부족하다고 한다.
"어찌 보면 국정원이 국정이 원활하게 돌아가게 청와대에 '윤활유'를 제공한 셈이다. 엄격히 법을 적용하면 위반이지만 사적 유용이나 개인 착복이 아니면 용인되어온 관행이었다. 물론 청와대 지원이 편법이고 예산지출 비목에 나와 있지 않지만, 그것도 일종의 첩보비다. 특활비는 '이현령 비현령'이다. 국회 정보위에 보고는 안하지만 내부에서 지출결의서를 작성하고 당연히 엄격히 회계감사를 한다."
ㅡ국회 정보위에 보고는 안 하지만 지출결의서나 입증 서류는 다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 그런 것은 다 공개가 안되니까 그렇지, 다 있다. 그리고 기조실장은 대통령이 임명하기 때문에 원장이 마음대로 돈 못쓴다. 원장이 마음대로 하는 그런 예가 거의 없다."
독립운동가 가문인 이종찬 전 원장은 육사 졸업후 소령 때 중앙정보부에 입부해 주영 한국대사관 참사관, 총무국장을 거쳐 국가안전기획부 초대 기조실장을 지내 정보기관의 조직·예산에 밝은 '정통 정보맨'이다. 이 전 원장은 1980년 안기부 초대 기조실장 시절 안기부 예산 일부를 민정당 창당자금으로 사용했다.
이 전 원장은 "나는 60~70년대 '남산의 부장들' 시절에 악행의 전비(前非)가 있다"며 자신은 '모순된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그는 "김대중은 그때 정보공작 정치의 최대 피해자였다. 그래서 내가 초대 원장이 되고나서 국정원상(像)을 정립한 것"이라며 과거의 '전비'를 털고 갈 것을 주문했다.
이 전 원장은 고령임에도 현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장을 맡아 국가에 마지막 봉사를 하고 있다.
K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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