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장, '관련법' 없는 회의 자꾸 간 의도는?
김당
dangk@kpinews.kr | 2020-06-25 18:07:34
반부패정책협의회 설치는 '관련법' 없이 '규칙'뿐…상위법령 국정원법과 충돌
'반부패' 관장 조국 수석과 반부패비서관, 감찰 무마·하명수사 혐의로 재판중
〈UPI뉴스〉가 입수한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에 제출한 대외비 자료에 따르면, 국정원은 "국정원의 직무를 규정한 '국정원법' 제3조를 한정적·열거적 조항으로 해석하는 판례의 태도를 감안시, 정책정보 및 부정부패 정보는 국정원 직무에 미(未)포함된다"고 답변했다.
국정원을 감독하는 국회 정보위의 지난해 11월 국정감사에서 "정책 수립·집행과 관련된 정보와 부정부패 정보활동이 국정원 직무범위에 포함되는지"를 묻는 질의에, 국정원이 정책정보와 부정부패 정보의 수집생산은 소관 업무가 아니라고 공식 답변한 것이다.
그런데도 서훈 국정원장은 국정원의 직무에 포함되지 않는 '반부패정책'을 협의하는 청와대 회의(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하는 잘못된 관행을 답습함으로써 국정원이 과거처럼 사정·수사기관에 부정부패 정보를 수집·제공한다는 '오해'를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장이 참석하는 외부회의를 톺아보니…
그렇다면 국정원장은 논란이 된 반부패정책협의회 말고도 어떤 외부회의에 참석할까?
지난해 5월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으로 불리는 양정철 당시 민주연구원장이 서울 강남의 한 한정식 집에서 서훈 국정원장과 비공개로 회동한 모습이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돼 논란이 된 바 있지만, 비밀정보기관장인 국정원장의 동선은 베일에 싸여 있다.
지난해 국회 정보위 국감에서도 관련 질의가 있었다. 국정원은 '국정원장 및 국정원 정무직의 외부회의 참석 현황'을 묻는 질의에 이렇게 답변했다.
☐ 국정원장과 각 차장은 필요시 유관 부처와 업무 관련 협의를 실시하고 있는 바, 현 정부 출범 이후 다음과 같은 외부회의에 참석하였음
○ '국가안전보장회의법'에 의거, 국가안전보장회의·NSC상임위·NSC실무조정회의 등 안보협의체에 통상 주(週) 단위로 참여하고 있으며
○ 기타 관련법에 의거, 중앙통합방위회의·국가테러대책위원회 및 반부패정책협의회 등에 참석 중임
이 가운데서 "관련법에 의거, 중앙통합방위회의·국가테러대책위원회 및 반부패정책협의회 등에 참석 중"이라는 답변은 사실을 왜곡한 잘못된 답변이다.
국정원 직무 벗어나는데 참견은 '이율배반'…관련법도 없는데 "관련법에 의거"
우선 국정원 스스로 "정책정보 및 부정부패 정보는 국정원 직무에 미(未)포함된다"고 답변하고서 직무에 포함되지 않은 반부패정책을 협의하는 자리에 국정원장이 참석하는 것부터가 '이율배반'이다.
또한 국정원은 "관련법에 의거"해 "중앙통합방위회의·국가테러대책위원회 및 반부패정책협의회 등에 참석 중"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중앙통합방위회의·국가테러대책위원회는 '관련법'이 존재하지만 반부패정책협의회는 '관련법'이 없으므로 이는 사실을 호도하는 답변이다.
구체적으로 적(敵)의 침투·도발에 대응하는 국가 총력전(總力戰)을 상정한 민·관·군 협의체인 '중앙통합방위회의'는 통합방위법(법률 제14839호)과 그 시행령에 따른 것이다. '국가테러대책위원회'는 국정원장이 주관하는 국무총리 산하기구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법률 제17466호)과 그 시행령(대통령령) 및 시행규칙(총리령)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반부패정책협의회'는 법령(법률·대통령령·부령)이 아닌 행정규칙(훈령·예규·고시)에 의거해 설치된 협의체이다.
즉, 국정원장의 반부패정책협의회 '배석'을 규정한 대통령훈령(행정규칙)은 '부패정보 수집은 국정원 직무를 벗어난다'는 상위법(국가정보원법) 및 대법원 판례(2006도1368)와 위배되는 것이다.
'반부패협의회' 설치 근거인 대통령훈령 제·개정 연혁을 보니
[표] 반부패정책협의회 관련 대통령훈령 제·개정 연혁
명칭
행정규칙 연혁
개정 내용
감사원장·국정원장
당시 국정원장
주관 부처
주관 비서관(민정수석)
의장(대통령)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
20. 1. 14 일부 개정
'조국 사태' 계기로 '공정사회'로 확대
2인 배석
서훈
국민권익위원장
김조원
문재인
반부패정책협의회
17. 9. 6 일부 개정
'반부패정책협의회'로 변경
2인 배석
서훈
국민권익위원장
조국
문재인
반부패관계기관협의회
05. 11. 22 일부 개정
국정원장 배석
2인 배석
김승규/김만복(06. 11~)
국가청렴위원장
문재인
노무현
반부패관계기관협의회
04. 1. 29 제정
대통령이 의장인 부패방지대책 협의회 설치
감사원장만 배석
고영구
부패방지위원장
문재인
노무현
실제로 '반부패정책협의회'의 설치 근거인 대통령훈령의 제·개정 연혁을 보면, 2004년 1월 처음 '반부패관계기관협의회'를 설치할 때는 감사원장만 배석하고, 국정원장은 배석하지 않았다. 당시는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민정수석, 고영구 국정원장 체제였다.
그러다가 2005년 11월 주관 부처인 부패방지위원회가 국가청렴위원회로 바뀐 가운데 대통령훈령을 일부 개정해 반부패관계기관협의회 회의에 국방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신규 위원으로 참석하고, 국정원장도 배석하도록 고쳤다. 당시 민정수석은 문재인, 국정원은 김승규 원장 체제였다.
이후 문재인 비서실장과 김만복 국정원장(2006년 11월~2008년 2월) 체제에서도 줄곧 국정원장은 반부패관계기관협의회 회의에 배석했다. 그러다가 문제의 이명박 서울시장의 처남 김재정씨 부동산 보유현황 행자부 전산망 열람 사건이 대통령후보 경선이 한창 진행중인 2007년 7월에 터졌다.
국정원장이 반부패관계기관협의회 회의에 배석하면 실무협의회에는 국정원의 관련 실국장이 참여해 '업무협조'가 이뤄지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또한 '자리'가 생기면 '일거리'를 만드는 것이 정보기관의 생리다.
2006년 8월 당시 국정원 '부패척결TF'의 팀원(5급 고○○)이 대선 출마가 유력한 이명박 서울시장의 처남 김재정씨의 부동산 보유 현황을 행정자치부 통합전산망을 통해 열람한 사실이 2007년 대선 경선 과정에서 드러났다. 또한 국정원 부패척결TF는 이명박 경선후보의 주변 인물 93명에 대한 주민이력 조회 및 범죄경력 등 개인정보를 406회에 걸쳐 들여다본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 사찰 의혹이 불거지자 당시 국정원은 '대통령훈령의 반부패협의회 규정에 국정원장이 배석기관으로 규정돼 있어, 정부기관과의 반부패 관련 정보 협력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명박 후보 관련 개인정보를 사찰한 국정원 부패척결TF의 보고를 받는 지위에 있던 간부가 여당인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후보인 정동영 후보의 캠프에 가담했다는 것이다.
국정원, 주민등록 등·초본 등 연간 2만건 열람
국정원은 국가안보 관련 수사뿐만 아니라 및 공직자 재산등록·심사 등의 목적으로 전자정부법의 '행정정보공유' 제도에 따라 행안부 통합전산망을 통해서 주민등록 등·초본, 토지등기사항 증명서 등 12종의 행정정보를 열람·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
2007년 당시에는 정부 각 부처와 기관이 관리하는 토지, 건물, 세금 등 17개 분야의 행정전산망 정보 접근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후 12종으로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의 행정정보(주민등록 등·초본) 열람 건수만도 연간 2만 건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된다.
기자가 입수한, 2015년 10월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에 보고한 '국가안보수사 목적의 주민등록 등·초본 열람 현황'(대외비)에 따르면, 당시 열람·이용 건수는 △2011년 1만9705건 △2012년 1만8646건 △2013년 1만8691건 △2014년 1만9430건이었다.
국정원이 간단한 인증절차를 거쳐 접근할 수 있는 전산정보에는 국세청과 건설교통부 전산망을 통한 세금, 토지, 건물 정보뿐 아니라 법무부의 출입국기록, 경찰의 전과내역, 건강보험공단의 진료 관련 기록, 국민연금관리공단의 개인소득 자료 등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내에는 정부기관의 전산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정보조회용 단말기가 따로 설치돼 있다. 국정원은 업무상 열람이 필요하면 부서장의 허락을 얻어 정보조회 담당자들에게 정보 열람을 의뢰하도록 돼 있다.
'국정원의 이명박 뒷조사' 사건은 2007년 대선의 분수령
다만, 행정전산망에 접속하려면 ID와 패스워드를 입력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든 열람 신청자의 기록은 남는다는 것이다. 이명박 후보 친·인척의 부동산 내역을 열람한 고씨가 자체 감찰조사에서 적발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국정원의 이명박 뒷조사' 사건은 한나라당 경선 구도 자체를 '박근혜의 이명박 검증'에서 '노무현의 이명박 죽이기' 이슈로 변화시킨 분수령이었다.
당시 한나라당 경선에선 박근혜 후보측이 선점한 '이명박 검증'이 최대 이슈였고, 이는 경선 내내 이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실제로 이 후보는 그해 8월 경선 투표 당시 박근혜 후보에게 선거인단 투표에선 졌으나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한 경선 여론조사에서 앞서 겨우 승리했다.
경선 투표 한달 전에 터진 국정원 부패척결TF의 이명박 처남 부동산 열람 사건을 계기로 이명박 후보측은 대선구도를 '박근혜 대 이명박'에서 '노무현 대 이명박'으로 분산시키는 전략을 구사해 효과를 거둔 것이다.
2004년 1월에 설치된 반부패관계기관협의회는 그해 2월부터 2007년 4월까지 총 9차례 회의가 열렸으나, 이처럼 정치적·법적 논란의 대상이 됨으로써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유명무실해졌다.
'반부패' 관장한 조국 수석과 반부패비서관은 재판중
문 대통령은 2017년 7월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조국 민정수석에게 방산비리 근절책 마련을 지시했다. 그러면서 "부정부패 척결과 방산비리 근절은 새 정부를 탄생시킨 국민의 간절한 여망"이라며 "과거 참여정부에서 설치·운영한 대통령 주재 반부패관계기관협의회를 복원해 국가 차원의 반부패 정책을 추진해 나가고자 한다"고 천명했다.
문재인 정부는 당초에 대선공약인 '적폐청산특별조사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하려 했으나, 야당의 반발 등을 감안해 자신이 민정수석 당시 설치한 반부패관계기관협의회를 복원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그해 9월 대통령훈령을 일부 개정해 '반부패관계기관협의회'를 '반부패정책협의회'로 변경 설치한 것이다.
하지만 2019년 '반부패정책협의회'를 관장하는 조국 민정수석을 법무장관으로 지명하면서 자녀의 불법특혜 및 청와대 특감반 비위 논란 등으로 이른바 '조국 사태'가 불거진 가운데 조국 전 장관은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또한 검찰 출신의 박형철 초대 반부패비서관도 울산시장 선거 관련 이른바 '청와대 하명(下命) 수사' 혐의로 기소돼 재판 중이다.
결국 조국 장관이 사퇴하자 문 대통령은 '조국 사태'로 국민 갈등을 유발한 것에 대해 거듭 유감을 표명하면서 '공정사회 실현'을 정부의 핵심 가치로 내세우기에 이르렀다. 청와대는 지난 1월 대통령훈령을 다시 일부 개정해 '반부패정책협의회'를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로 변경했다.
하지만 반부패정책을 관장하는 민정수석과 반부패비서관이 감찰 무마와 하명수사 혐의로 재판을 받는 마당에, 국정원장이 반부패 회의에 참석하는 한 '제2의 이명박 후보 개인정보 열람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K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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