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는 '무지의 장막'…돈과 시간 들여 교육해야"
김지원
kjw@kpinews.kr | 2020-06-23 12:05:08
"사업주 처벌 강화는 엉뚱한 처방"
"돈 들여서 안전예방 교육 철저히"
"위험한 일엔 전문기업 투입해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산업재해 사망률 1위. 매일 3명의 노동자가 산업현장에서 죽어가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이에 문재인 정부가 칼을 빼 들었다.
문 대통령은 '산업재해 절반으로 줄이기'를 주요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그 결과 2019년 산재 사고 사망자는 855명으로 2018년에 비해 116명(11.9%) 줄었다. 산재 사고 사망자 통계를 시작한 1999년 이후 가장 많이 줄어든 규모다.
그런데도 이천시 물류센터 화재 참사 등 크고 작은 산재는 여전히 발생하는 실정이다. 반복되는 산재를 줄일 방법은 없을까.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 교수는 제22대 한국노동경제학회 회장을 지내는 등 노동 분야 전문가다.
"무지의 장막이다. 엉뚱한 처방을 하고 있다."
김 교수는 '산재'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우리가 산재에 대한 두 가지 잘못된 믿음(myth)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산재는 사업주를 처벌하면 될 문제다', '산재는 비정규직과 관련한 문제다'라는 두 가지가 잘못된 믿음이라는 것. 김 교수와의 인터뷰는 이런 '잘못된 믿음'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그렇다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올 4월 근로자 38명이 숨진 이천시 물류센터 화재 참사가 발생했다. 반복되는 산재 사고로 정부가 산재를 일으킨 기업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 등을 추진하고 있다. 어떻게 보나?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 두 가지가 다 있다. 긍정적 효과는 산재 사고에 대한 경각심이 커진다는 점이다. 사업주 입장에서 책임감이 매우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그 부분은 순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부정적 효과는 법이 너무 무겁다는 점이다. 처벌 위주인 게 문제다. 경영에 리스크가 커져 기업의 경영, 투자, 생산 활동이 둔화할 수 있다. 현재 해외로 많은 기업이 떠나고 있는데 최악의 경우 그런 작용까지 일으킬 수 있다.
-그렇다면 EU 등 타국은 산재 사고 발생 시 어떻게 대처하나?
다른 나라와 우리나라의 큰 차이 중 하나는 처벌을 기업한테 하느냐, 사업주한테 하느냐다. 다른 나라의 경우 사업주가 아닌 기업이 손해배상을 하는 등 기업에 책임을 물린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책임담당자가 처벌을 받는다. 사업주로서는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경영 리스크가 너무 크다. 물론 산재 사고는 막아야 하지만 자꾸 사업주, 사람한테 처벌을 준다는 점이 잘못됐다.
-그럼 지금 나온 정책은 조금은 방향이 잘못된 것 아닌가
그렇다. 엉뚱한 처방을 하고 있다. 산재 사고는 수치스러운 거다. 우리나라는 경제력과 소득에 비해 산재 사고가 줄지 않는다. 근본적인 문제를 고치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산재 사고는 작업자, 사업주의 안전에 대한 의식이 굉장히 중요하다. 작업 전 충분한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에겐 그런 게 없다. 사후적으로 '당신, 사고 나면 혼내줄 거야' 이런 식의 정책을 편다. 산재를 예방하는 노력은 부족하다. 반면 산재 사고가 적은 국가들은 사전예방에 초점을 맞춘다. 산재 방지를 위해 직업훈련 등 자격요건이 강화돼있다. 지속해서 재교육을 한다.
-타국과 다른 점이 또 있나
다른 점 또 하나는 전문기업의 유무다. 산재 사고가 적은 국가들은 위험한 일을 전문기업들이 한다. 철거? 전문기업들이 하는 거다. 아무나 손을 대지 못한다. 특수한 분업을 한다. 해당 기업들만 그 일을 하는데 우리는 그게 잘 안 되고 있다. 사실 산업안전은 전문기업들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전문기업을 별로 못 키웠다. 모든 게 사업주 처벌 중심이고,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은 없다.
-그럼 '2인 1조라는 안전규칙을 지키지 않아서 사고가 발생했다'라는 이야기들도 근본적인 원인 지적은 아닌가
맞다.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다. 2인 1조든 3인 1조든 안전의식이나 안전에 필요한 교육을 받지 않으면 마찬가지다. 본질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몇 년 사이 산재 사고를 전부 다 비정규직 문제로 탓했다. 비정규직 때문에 사고가 났다고 말했다. 사실은 그게 아니다. 비정규직이 왜 사고가 났느냐 하면 정규직이 하기 싫은 일이다 보니 비정규직을 써서다. 정규직이 피하는 일이다 보니 비정규직자에게 돌아가고, 비정규직은 단순히 인건비 때문에 그 일을 한다.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거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문제가 아닌데 아주 큰 착각을 하고 있다.
-근본 처방법은 무엇인가
의식의 문제다. 단순히 제도의 문제도 아니라고 본다. 사업자의 투자, 작업자의 안전의식, 정부의 지원 등 모든 게 필요하다. 먼저 국민이 깨어있어야 한다. 사업주가 다 떠안는 느낌으로 가는 건 불가능하다. '정부가 법만 만들면 해결된다' 이것도 아니다. 정부가 법을 안 만들어서 안전사고가 난 게 아니다. 사업주 처벌이 가벼워서도 아니다. 교육, 작업 등이 다 마련돼있어야 한다.
안전한 사회를 위해 비용을 더 들일 각오를 해야 한다. 전문적인 인력과 숙련도가 요구되는 일인데 처음 해보는 사람더러 하라고 하면 되겠나. 전문성을 양성해야 한다. 전문적인 일이라는 인식이 약하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사고가 난다. 이게 의식의 문제라는 거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건설현장에 쓴다. 미국은 건설현장 근로자 고용 요건이 까다롭다. 건설현장같이 위험한 곳은 전문인력, 경력이 상당한 사람들만 간다. 사업주가 투자해야 한다. 예를 들어 건설현장에 투입되는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반드시 6개월의 교육을 이수할 것 등 투입 전에 이런 부분이 필요하다.
-영세, 중소기업은 투자가 어렵지 않겠나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외국인 노동자가 건설현장에 들어가면 당연히 대비해야 한다. 교육을 시켜야 한다. 영세기업이나 중소기업에서는 비용이 부담된다. 초기 비용을 정부가 부담하면 된다. 또 중소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전문기업이 되면 된다. 예를 들어 독일이나 미국 같은 곳은 산업안전에 관련해 작은 회사지만 전문성이 있다. 왜 산재 사고가 나는지 이런 부분들을 연구하고 전문성을 갖춘다. 우리는 그런 연구가 부족하다. 정석으로 가야 한다. 정부가 그런 부분에 대해서 기준을 정하고, 전문기업들이 사람을 키우는 등의 선순환으로 가야 한다.
-우리나라에 전문인력이 없는 이유는 뭘까
다른 나라 같은 경우 급여가 세다. 우리나라는 위험한 업무인데도 급여는 똑같다. 위험하고 어려운 직무에 대해선 그만큼 보상을 해줘야 한다. '보상임금'이 필요하다. 위험한 업무에 대한 보상이 없으니 전문성이 쌓일 수가 없는 거다. 보상시스템이 없다는 게 문제다. 인센티브가 없지 않나. 옛날 제도를 그대로 쓰고 있다. 위험이나 난이도에 대한 보상을 해주는 보상임금이 필요하다. 그래야 우수한 사람이 간다. 다른 나라는 그만큼 월급을 많이 받는다.
-건설업이나 제조업처럼 외부사고는 눈에 띈다. 그런데 질병 산재 사망자 수가 훨씬 많다. 이런 부분은 어떻게 해야 하나
똑같은 산업안전 사고다. 폭발한다든가 하는 건 뉴스가 확 되는데 한 사람씩 소리 없이 쓰러져 가서 우리가 잘 모를 뿐이다. 유해물질이라는 점에서 똑같은 문제다. 유해물질 다루는 것도 전문성이 필요한 거다. 전문가, 전문기업에 맡겨야 한다. 당연히 교육 이수와 반복도 필요하다. 또 좀 더 적극적으로 산재의 범위를 넓히고 인정해주는 등 시스템을 강하게 잘 짜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리를 하자면
깨달을 때가 왔다. 현재 산업 안전 쪽 법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지고 강화되고 있어도 초점이 엉뚱한 데가 있다. 정작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는 게 문제다. 정부마저도 산재 문제에 대해 여론을 따라가는 게 문제다. 그 여론이라는 게 주로 노동조합이 요구하는, '비정규직을 못 쓰게 해달라, 사업주를 처벌해달라'는 내용이다. 그 문제는 증상이다. 증상을 따라가면 원인 치료를 할 수가 없다. 화끈하게 바꿀 용기, 결심의 문제다.
한국의 산업안전 사고는 문화, 제도 등 복합적인 이유에서 발생한다. 사회 전체를 위해서라도 산업안전을 위한 초기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공짜가 어디 있나. 돈도 더 내야 하고 시간도 더 걸리나 불가피한 거다. 그게 선진국이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서울특별시노사정위원회 위원장, 제22대 한국노동경제학회 회장,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 등을 지낸 노동 전문가다. <페어 소사이어티>, <김태기의 대한민국 돌파구>,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의 진실> 등의 책을 썼다.
KPI뉴스 / 김지원 기자 kjw@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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