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의원 발의 법안만 벌써 150건…무슨 내용 담겼나
남궁소정
ngsj@kpinews.kr | 2020-06-05 13:20:12
재탕·무더기 발의·비용 추계 부실 '수두룩'
제21대 국회 업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닷새 만에 법안 발의가 100건을 훌쩍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원 구성 협상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과거 어느 국회보다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는 양상이다. '일하는 국회'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의욕만 앞선 '보여주기식 경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가 공식적인 업무를 시작한 1일부터 5일 오후 2시 기준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률안 건수는 모두 150건으로 집계됐다. 20대 국회에서 첫 일주일간 발의된 법안은 99건이었고, 19대 국회에선 56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국회의원들의 입법활동이 눈에 띄게 늘었다.
문제는 법안의 양보다 질이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지난 국회 때 폐기된 법안을 '재탕' '삼탕'해 발의하거나 '건수 부풀리기'를 위한 무더기 발의, 아울러 정밀한 재정추계가 빠진 그야말로 '입법 속도전'에 매몰된 법안들이 적지 않았다.
미래통합당 조경태(부산 사하을) 의원이 대표 발의한 '부산해양특별시 설치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은 "부산에 특혜를 주는 민원성 법안 아니냐"는 지적과 동시에 지난 17대 국회 때 나온 법안과 내용 면에서 큰 차이가 없는 '재탕 법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법은 부산광역시를 부산해양특별시로 하고 부산광역시가 국제적 해양중심도시로 재도약하는 데 필요한 지원을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05년 유기준 의원이 대표 발의한 '부산해양특별자치시 설치 및 발전 등에 관한 특별법안'과 내용에 큰 차이가 없다. 명칭만 '해양특별자치시'에서 '해양특별시'로 바뀌었을 뿐이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이 발의한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한 기본법 제정안'(사회적가치법)도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사회적 공론화의 첫발을 뗐다. 다만, 이 법안은 2014년 당시 의원이던 문 대통령이 대표 발의했지만 자동 폐기됐고, 2017년 박 의원이 다시 발의했으나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민주당 박정 의원은 마을기업육성지원법, 평화경제특별구역 지정법 등 6개 법안을 1일 '무더기 발의'했고, 민주당 윤관석 의원도 주택법 개정안 등 5건을 발의했다. 같은 당 안에서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잇따라 발의되기도 했다. 같은 당 신현영·정춘숙 의원이 1일 각각 발의한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법률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직·간접적인 예산이 소요된다. 따라서 국민의 세금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법률안의 입안 단계부터 국가가 부담해야 할 재정 소요 역시 자세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현행 국회법은 법 시행으로 비용 발생이 예상되는 경우,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의안 비용에 대한 추계 자료를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국회예산정책처로부터 받은 '비용추계서'를 통해 의원들은 의안을 시행하는 데 어느 정도 재정이 소요되는지 보여줘야 한다.
의안 발의 시점에 비용추계서를 첨부하지 못한 경우 '비용추계 요구서'를 제출해야 한다. 국회예산정책처에 의안 비용 추계를 요구했다는 증명서다. 이 경우 추후 해당 의안의 위원회 심사 전까지 비용추계서를 제출해야 한다.
다만 비용이 들지 않는 법안은 예외다. 국회 관계자는 "가령 1년을 3년으로 바꾸거나, 벌금을 200만 원에서 300만 원으로 처벌 조항을 바꾸는 등 비용이 들어갈 필요가 없는 법안은 비용 추계가 붙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50개 법안 가운데 비용이 들어가는 법안 중 비용추계서를 첨부한 것은 단 2건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비용추계 요구서를 제출함으로써 국회법을 지켰다. 하지만 급박한 입법이 아닌데도 정확한 추계 없이 발의된 법안이 적지 않아 의원들이 '실적 쌓기'를 위한 입법 속도전에 매몰됐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KPI뉴스 / 남궁소정 기자 ngsj@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