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 법안'에 담긴 시대 상징성…21대 첫 법안 '사회적 가치'

장기현

jkh@kpinews.kr | 2020-06-01 16:26:07

17대 국회, 한나라당서 시작된 '1호 법안' 사수 경쟁
18대 '종부세법'·19대 '경제민주화' 등 경제 법안 위주
20·21대 연달아 민주당 몫…밤샘 경쟁 가열에 '눈총'
법안 처리에 관심 기울여야…"발의보다 통과가 중요"

국회 개원 때마다 '1호 법안'을 차지하기 위한 국회의원들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의원실 보좌진이 법안을 접수하는 국회 의안과 앞에서 밤을 지새우는 모습은 어느새 국회의 개원 직전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달 30일 개원한 21대 국회에서도 어김없이 '1호 법안' 사수를 위해 4박 5일 동안 보좌진이 번갈아 '불침번'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이 1일 국회 사무처 의안과에서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안'을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제출하고 있다. [뉴시스]

보좌진의 노고로 21대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경기 파주을)이 '1호 법안'의 주인공이 됐다. 개별 의원들의 '1호 법안' 뿐만 아니라 각 정당의 공식 '1호 법안'도 경쟁도 뜨겁다. 당의 정체성과 향후 방향성을 드러내는 홍보 수단으로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국회가 시작될 때마다 관심과 논란의 중심에 섰던, 역대 '1호 법안'들로 시대상을 살펴봤다.

'전쟁의 서막' 17대 국회서 시작된 '1호 법안' 경쟁

이번 국회에서 '1호 법안'으로 제출된 '사회적 가치법'의 의안 번호는 '2100001'이다. 앞 두 자리 '21'은 21대 국회를 의미하고, 맨 뒤의 '1'은 첫 번째라는 뜻이다. 이 '1'을 확보하기 위해 의원실 보좌진이 의안과 앞에서 대기하는 시간은 역대 국회를 지날수록 늘어나고 있다. 18대 국회 11시간, 19대 국회 68시간, 20대 국회는 74시간을 거쳐 21대 국회에서는 100시간 가까이 기다렸다.

시작은 17대 국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1호 법안'은 한나라당(미래통합당의 전신) 이인기 의원이 개원 이틀 뒤인 2004년 6월 1일 발의한 '식품위생법 개정안'이다. 이 법안은 음식점들이 수입 쇠고기를 한우로 둔갑 시켜 판매하는 행태를 차단하기 위해 일반 음식점에서 판매하는 수입 식육에 원산지 표시를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당시 언론들은 '임기 개시 이틀 만에 법안을 제출했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울러 "과거의 '정쟁 국회'에서 탈피해 '정책 국회'로 거듭나야 한다는 국민 여론을 국회의원들이 적극 수렴하려는 신호로 해석된다"고 치켜세웠다. 이후 '1호 법안'은 여야를 막론하고 홍보 수단으로 적극 활용되기 시작했다.

보수정권 10년 시작…'종부세법'부터 '비정규직 보호법'까지

18대 국회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3개월 뒤인 2008년 5월 임기가 시작됐다. 참여정부의 상징인 종합부동산세를 손보는 법안이 '1호 법안'으로 접수됐다. 당시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은 1세대 1주택 소유자를 종부세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담은 '종합부동산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개원 당일인 5월 30일 제출했다. 본격적인 '1호 법안' 경쟁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실 직원이 지난달 29일 국회 사무처 의안과 앞에서 21대 국회의 '1호 법안' 제출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뉴시스]

당시 이 의원은 '18대 국회 1호 법안'의 주인공이 되지 못할 뻔했다. 전날 오후 9시 40분부터 의안과 사무실 옆 간이의자에서 밤을 새운 무소속 이인기 의원 보좌진과 이혜훈 의원 보좌진이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기 때문이다. 이혜훈 의원 보좌진은 당일 오전 1시 30분 도착해 의안실 문고리를 붙잡고 아침까지 버텼다. 결국 의안과 직원들이 제안한 제비뽑기로 이 의원의 법안이 가장 먼저 의안과 문턱을 넘었다.

의안 번호 '1900001'의 주인공은 당시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김정록 전 의원이었다. 김 의원은 장애인의 개인별 맞춤형 복지 시스템을 마련하는 내용의 '발달장애인 지원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김 의원 보좌진은 사흘 전인 27일부터 의안과 앞을 3교대로 지키면서 '1호 법안'을 사수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각 정당의 공식 '1호 법안'은 따로 있었다. 새누리당은 당시 이한구 원내대표가 발의한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법 개정안'을 공식 '1호 법안'으로 내세웠다. 이 법안은 비정규직 차별을 개선하는 내용이 담겼다. 민주당의 '1호 법안'은 한명숙 전 대표가 발의한 '고등교육재정 교부금법 제정안'으로, 내국세의 일정 부분을 고등교육재정교부금으로 확보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2012년 무렵 정치권을 휩쓸었던 '경제민주화' 바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민주당 반격' 20대부터 '1호 법안' 사수…21대는 박광온 의원

20대 국회의 '1호 법안'인 의안 번호 '2000001'의 주인공은 경기 파주을을 지역구로 둔 민주당 박정 의원이었다. 박 의원은 '통일경제파주특별자치시의 설치 및 파주평화경제특별구역의 조성·운영과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을 제안했다. 이 법안은 개성공업지구에 대칭되는 남북경제협력형 특구인 파주공단을 파주 북부 일원에 조성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결국 상임위 계류 후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1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민주당 박광온 의원이 제안한 '1호 법안'은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안'이다. 이 법안은 공공부문부터 사회적 가치 실현을 핵심 운영원리로 삼고, 체계적 실행을 선도해 향후 민간부문으로 확산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2014년 당시 의원이던 문재인 대통령이 대표 발의했지만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고, 2017년 박 의원이 다시 발의했으나 역시 폐기된 법안이다. 두 민주당 의원의 '1호 법안' 처리 실적은 아직 '0'건이다.

21대 국회 4년의 의정활동 '가늠자'가 될 각 정당의 공식 '1호 법안'도 주목된다. 민주당의 1호 법안은 '일하는 국회법'으로 임시회 매달 1일 소집, 상임위와 소위 정례화 등이 주요 내용이다. 통합당은 코로나19 사태로 피해 입은 의료기관과 사업자, 대학생 학비 문제 해결 등을 담은 '코로나19 위기 탈출을 위한 민생지원 패키지법'을 1호 법안으로 정했고, 이날 제출을 마쳤다.

'발의보다 통과' 법안 처리에 관심 기울여야…"노력은 인정"

법안 발의가 빠르다고 해서 본회의 처리가 빨라지는 것은 아니다. 김정록 전 의원이 발의했던 19대 국회 '1호 법안'은 발의한 지 2년이 지난 2014년 4월에야 대안이 반영되는 형태로 통과됐다. 박정 의원이 발의한 20대 국회의 '1호 법안'도 상임위인 외교통일위원회에 계류됐다가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박광온 의원의 21대 국회 '1호 법안'도 이미 여러 차례 발의된 이른바 '중고 법안'으로, 결국 통과에 이르지는 못했다.

▲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과 새누리당 배덕광 의원 보좌관들이 제20대 국회 개원을 하루 앞둔 2016년 4월 29일 국회 의안과 앞에서 '1호 법안'을 제출하기 위해 밤샘 대기를 하고 있다. [뉴시스]

21대 국회는 1호 법안의 처리 실적과 통과 과정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시대정신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엄경영 전 보좌관은 "법안은 발의보다 통과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1호 법안' 발의 자체보다 실제 통과로 이어져 유권자의 삶에 영향을 미쳐야 국회의원 개인의 입법능력이나 의정활동을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엄 전 보좌관은 '1호 법안' 사수를 위한 노력은 인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박 의원의 경우 20대에서 발의했던 법안이라 내용 준비가 부실하지 않을 것이고, 사회적 가치라는 주제도 시대적 흐름에 일치하는 면이 있다"면서 "'보여주기식'으로도 열심히 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안 하는 것보단 하는 게 낫다"고 평가했다. 어쨌든 입법을 향한 21대 국회의 경쟁은 시작됐다.

KPI뉴스 / 장기현 기자 jk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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