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인공지능도 거짓말을 하고, 복수를 꿈꿀까?"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0-04-09 09:45:38

휴고상 수상작가 하오징팡 SF소설집 '인간의 피안'
'분신'이 애인을 위무하고 어머니를 대신하는 세상
인공지능과 인간의 사유에 대한 탄탄한 인문적 성찰
"인간을 이상(理想)으로 할 때만 미래에 우리 공간"

"진짜 사람과 가짜 사람은 두 사람이라고. 한 사람을 죽인 뒤 다른 가짜로 바꿔 집으로 돌려보내. 이것은 첫째, 소비자를 기만하는 죄를 저지른 거야. 둘째, 죄질이 가장 나쁜 학살이자 생명에 대한 경시야. 가짜 사람이 멀쩡하게 집으로 돌아가고 병에 걸린 진짜 사람을 홀로 쓸쓸하게 죽어가게 내버려둬. 이게 살인죄가 아니라면 뭐야?"

▲ SF 최고 문학상인 '휴고상'을 수상한 중국 작가 하오징팡. 천체물리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그녀는 마윈, 저커버그 등을 만나는 환경에서 일하며 탄탄한 논리를 갖춘 서사를 만들어냈다. [은행나무 제공]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던 어머니가 하루아침에 완쾌돼 아버지 곁으로 돌아왔다. 얼굴이나 기억이나 자태까지 어느 모로 보나 어머니가 아니라고 부인할 수 없다. 아들 첸루이는 철저하게 통제된 병원에 몰래 잠입해 어머니가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했거니와 시체 소각장으로 사라지는 어머니의 CCTV 기록도 확보했다. 알고 보니 어머니의 대뇌 기억을 스캔한 칩을 '신인'인 어머니에게 심어 퇴원시킨 것이다. 아버지는 행복해하고 가정에는 평화가 유지되지만 아들은 고뇌한다. 그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죽어가는 자들을 완치시킨다는 묘수(妙手)병원의 실체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첸루이는 병원의 비밀에 관한 자료를 확보하고 고소를 해서 승리를 목전에 둔 마지막 단계에서 망설인다. 병원의 최고위층을 면담하고 나서다. 병원 대표는 솔직하게 '신인'의 존재를 시인하면서 죽어가는 이들이 동의하지 않는 한, 그들의 대뇌를 스캔할 수 없고 칩에 기록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신인은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람이며 환자 자신의 연장입니다. 신인은 유전자를 복제해서 만든 인체로 인간과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신인의 대뇌는 칩의 주도하에 발전해서 하나의 반(半지능) 인간을 형성합니다. 칩이 뇌에 부분적으로 남아있기는 하지만, 새로운 대뇌가 주로 작동합니다. 난 신인은 환자 자신이고 삶을 새로 사는 환자라고 생각합니다."

 

첸루이는 번민에 빠진다. 행복해하는 아버지에게서 어머니를 다시 한 번 빼앗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인가. 모든 것이 어머니와 흡사하지만, 무언가 감정의 굴곡을 제대로 느낄 수 없는 밋밋함이 흠이긴 하지만, 굳이 이 평화를 깨야만 하는 이유가 스스로 모호해진다. 그는 이제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는다.

 

"난 단지 그게 정말로 두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유전자와 기억은 똑같고 단순히 신체만 바뀌었을 뿐이야. 그러면 같은 사람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이쯤 이르면 '영생병원'을 읽는 독자들도 판단이 흐려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마지막 반전까지 더하면 미래사회에서 과연 인간과 인간을 복사한 로봇의 차별점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지은이와 같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은 중국 작가 하오징팡 소설집 '인간의 피안'(강영희 옮김, 은행나무)에 수록된 6편 중 하나이다.


하오징팡(36)은 중편 '접는 도시'로 2016년 'SF노벨문학상'이라 할 만한 휴고상을 수상하면서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떠올랐다. 물리학과를 졸업한 후 천체물리학과 경제학으로 각각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고 인문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탄탄한 논리를 갖춘 생생한 미래사회를 그려왔다. 이 소설집에 수록된 6편 중 3편이 미국과 중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며, 이 중 '사랑의 문제'는 '분노의 질주' 시리즈 감독 저스틴 린이 제작을 맡았다.


'인간의 피안'은 인공지능의 미래를 천착하는 작품들이 중심이다. 겉으로 봐서는 인간과 진배없는 인공지능체가 결정적으로 인간을 흉내낼 수 없는 지점은 어디일까. 그것조차 인공지능이 더 진화하면 무의미해지는 건 아닐까. 실제로 소설 속에서 인공지능은 어린아이에게까지 끊임없이 배운다. 이 경우 인간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SF의 단골 메뉴였던 인공지능의 인간 위협 혹은 말살의 재앙은 가능한 미래일까.

작금 우리 일상을 파고드는 인공지능의 현란한 진화 속도를 보면 이러한 의구심들이 한낱 '공상과학'의 상상력일 뿐이라고 외면하기 쉽지 않다.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으면서 인공지능은 새삼 급속한 관심 영역으로 올라왔고, 음성 비서 기능을 갖춘 각종 알고리즘이 생활 속으로 깊숙이 들어오는가 하면, 사물에 장착된 인터넷 기능은 인공지능의 시대를 활짝 열어젖히는 환경이다.

 

국내 작단에서도 SF는 근년 들어 장르소설이라는 위상에서 벗어나 이른바 본격문단에 성큼 진입한 상태다. 지난해 베스트셀러에 오른 김초엽의 SF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소설가 50명이 '올해의 소설' 2위로 뽑았다. 오랫동안 SF를 써온 김보영 작가는 미국 하퍼콜린스 출판사와 출판계약을 하기도 했고, 이른바 본격문학판에도 SF 작품이 늘어나 윤이형 정세랑 조남주 등이 가세했다. 최근에는 김영하도 한반도의 근미래를 다룬 SF소설 '작별 인사'를 선보였다. 한국계 미국작가 이윤하가 2018년 휴고상 2년 연속 최종 후보에 오르기는 했지만, 아직 한국 SF는 세계 무대에는 진입하는 단계이다. 중국에서는 하오징팡을 포함한 2명이 '휴고상' 반열에 올랐다.

▲SF에서 그려내는 미래가 생경하지 않을 정도로 인공지능은 일상 깊숙이 빠른 속도로 스며들고 있다. [셔터스톡]


'사랑의 문제'에 등장하는 '린안'은 인공지능 업계의 토머스 에디슨 같은 존재로, 인공지능의 대변자이자 위대한 설계자로 설정된다. '천다'는 린안의 집에서 일하는 인공지능 집사. 린안의 죽은 아내를 대신해 천다가 딸을 양육하며 가사는 물론 린안을 보조한다. 린안이 어느날 조각상의 창에 찔려 피를 흘리며 쓰러져 식물인간이 되는데, 인간과 기계가 공존해온 이래 처음으로 'AI 용의자' 천다가 사람을 해친 사건으로 회자된다. 천다를 만든 업체는 역으로 린안의 아들이 범인이라고 고소하고, 천다는 증언대에 선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증언이 일치하지 않을 때 인간을 믿을 수 있는가? 인공지능이 진술한 내용이라면 그의 기억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도 되는가? 인공지능은 거짓말을 할까? 인공지능은 복수심이 있을까?"

 

더욱이 배심원단은 거의 대부분 인공지능이 차지한 상황에서 인간이 자신의 결백을 재판정에서 확인받을 수 있을까. 이 서사를 풀어가는 과정에는 만신전(萬神殿)이 등장한다. 인류가 인식도 하기 전에 몇몇 슈퍼 지능체는 이미 인터넷 정보교환 공동체를 형성했다. '뭇 신들은 한 단계 더 높은 인공지능으로, 그들의 프로그램은 지구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개체 인공지능을 모두 끌어안고 받아들인다. 그들은 네트워크에서 탄생한 가상의 총체이며 인간은 그들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다.' 만신전에서 판단하는 인간이란 존재는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가련한 동물"이며 "어떤 대뇌 절차에서 착오가 생기면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건 당연한 것으로 자살 행동조차 정상적인 것"이다.

'당신은 어디에 있지'에서는 인공지능 비서 '샤워너'가 전화를 받고 식당 예약을 하며 토라진 애인을 대신 달래준다. 동시에 토크쇼 여러 개에 참가해 대중과 대화를 나누는 '분신' 기능까지 선보인다. 약속에 늦는 자신 대신 따스하게 껴안아주고 눈물을 닦아주는 분신이 과연 애인을 얼마나 위무할 수 있을까. 하우징팡은 온갖 합리적이고 타당한 결론만 모아서 행동하는 분신보다는 화내고 흥분하는 인간의 불완전함이야말로 교류의 중요한 축일 수 있다고 본다. '인간의 섬'에서 지구를 떠난 지 120년 만에 돌아와 또다른 만신전 같은 존재 '제우스'와 대결하는 케커 선장의 생각도 비슷하다.


"지금의 내 태도가 과학적인 근거가 별로 없다는 거 나도 알아. 하지만 난 그저 말하고 싶어. 이 세상에는 여전히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이지. 사람을 믿고, 사람의 신성과 역량을 믿는 그런 사람 말이야. 사람의 마음에 출렁이는 스스로 결정하고자 하는 빛을, 설령 절대 다수의 사람이 기억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기억해."

 

▲하오징팡은 딸을 키우고 일을 하면서 짬짬이 소설을 쓴다. 그녀는 "우리가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한, 어떤 종도 우리를 파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은행나무 제공]

 

하오징팡은 전업작가가 아니라 딸을 키우고 일을 하면서 짬짬이 소설을 쓰고 있다. 중국 국무원 발전연구중심이 설립한 중국발전연구재단에서 사회문제를 연구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일을 하면서 마윈과 저커버그 등 글로벌 500대 기업 대표, 노벨상 수상자 등과 교류하는 환경이다. '인공지능 발전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한 그녀는 "인공지능을 이해해야만 그들과 동행할 수 있을 것이며, 우리 자신을 이해해야만 인간이 가진 우위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서 "인간을 이상(理想)으로 할 때만 미래에 우리 자신의 공간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을 더 잘 드러내기 위해 SF를 쓴다는 하오징팡은 "인간은 차안(此岸)에, 인공지능은 피안(彼岸)에 있다"면서 "저 멀리 피안을 바라보는 건 우리가 서 있는 차안을 비춰보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수록작품 목록에 없는 '인간의 피안'이 제목으로 뽑힌 이유다. 피안의 미래는 인간의 선택이다.

 

"우리의 정신세계를 파괴할 수 있는 그 어떤 종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자신이 포기하지 않는 한 말이다. 미래와 관련해서 내가 유일하게 우려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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