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당의 단매] 통합당의 미래는 김형오에 달렸다
김당
dangk@kpinews.kr | 2020-02-17 16:58:00
김형오 공관위원장이 진단한 '자유한국당의 7가지 죄목'
최소기준 충족 못하면 '정치판 칠거지악'으로 퇴출될 수도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을 낳고, 국민의당은 바른정당과 합방해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을 낳고, 바른미래당은 새로운보수당과 다시 국민의당을 낳고, 민주평화당은 대안신당을 낳고, 민주평화당과 대안신당은 다시 바른미래당과 합방해 민주통합당을 낳고, 새로운보수당과 전진당은 자유한국당과 합방해 미래통합당을 낳았다. 시방 느그들 뭐하는겨?"
한 목사가 SNS에 4·15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이합집산을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빗대어 표현한 글이다. 17일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의 합당 추인 반대로 민주통합당(가칭)은 아직 '상상임신' 단계이다. 하지만 정당사에 이렇게 노골적인 이합집산과 동종교배 합당은 없었다. 정당을 오래 출입한 정치부 기자들조차 누가 누구의 자식인지 헷갈릴 정도다.
총선에서 기호 3번(제3당)을 받아 당선되고, 정당보조금을 한 푼이라도 더 많이 챙기기 위한 이합집산이다. 게다가 소수정당에 유리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으로 사상 초유의 정당 풍년이다. 미래한국당이라는 위성정당까지 등장했다. 아무튼 총선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민주통합당(가칭) 또는 바른미래당, 정의당, 국민의당이 경쟁하는 '5당 또는 6당 구도'로 치러질 전망이다.
'마이너스의 손' 안철수가 비집고 들어갈 '중도'의 공간이 있을까?
흔히 선거는 인물보다 구도의 대결이라고 한다. 단순다수제와 일부 비례대표를 혼용하는 우리 선거는 오랜 기간 '민주 대 반민주' 구도였다. 지역으로는 '영남 대 호남'의 대결구도였다.
정당도 오랜 기간 양당 또는 1대1 구도였다. 하나의 선거구에서 1표라도 많이 득표한 후보 한 명만 당선되는 소선거구·단순다수제 선거구제도 양당 구도를 강화했다. 선거전략은 구태의연했고 인물은 식상했다.
지난 2016년 20대 총선은 식상한 양당구도에 처음 균열을 냈다. 지역구 253석과 비례대표 47석을 합친 300석 가운데 정당별 의석수(괄호안은 비례대표)는 △더불어민주당 123(13) △새누리당 122(17) △국민의당 38(13) △정의당 6(4) △무소속 11 순이었다.
국민의당이 제3당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안철수라는 새인물의 등장, 양당구도에 식상한 유권자의 비례대표 정당투표, 민주당의 텃밭이었던 호남의 분열 등의 변수 때문이었다. 총선 후 1년도 안되어 불어닥친 박근혜 탄핵도 양당구도의 균열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렇다면 양당구도의 균열로 한국의 정당정치는 진보했을까? 답은 '박근혜 탄핵' 빼곤 '아니올시다'이다. 철옹성 같은 양당구도에 균열을 일으킨 국민의당이 수 차례 분열을 거쳐 형해화된 것만 봐도 그렇다. 20대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안철수는 지금 21대 총선에서 변변한 문패조차 정하지 못하다가 '도로 국민의당'으로 돌아왔다. 신장개업이 아니라 구장개업이다. 국민이 준 38석을 다 까먹은 '마이너스의 손' 안철수가 비집고 들어갈 '중도'의 공간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래통합당은 '도로 새누리당' 세력의 과거통합당?
그러면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탄핵의 직격탄을 맞은 새누리당은 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분화했으나 선거를 앞두고 중도층을 흡수하기 위해 다시 합쳐 미래통합당(약칭 통합당)으로 몸집을 불렸다. "돌고 돌아 도로 새누리당"이니 "미래 아닌 과거 통합당"이니 하는 비아냥이 나오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투표용지에 오를 정당명은 늘어났으나, 지역구 선거는 민주당(129석)과 통합당(113석)의 양자 대결구도로 치러질 전망이다. 특히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피 말리는 박빙의 승부가 예상된다. 그만큼 중도층과 무당파의 표심을 잡기 위한 정당쇄신과 공천이 승부를 가릴 전망이다.
통합당의 공천을 총괄하는 공관위원장은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다. 5선(14~18대) 의원을 지낸 김 위원장은 17대 국회에서 새누리당 전산인 한나라당의 원내대표, 18대 국회에서 전반기 국회의장을 지냈다. 하지만 4년 전에 새누리당의 공천 파동을 지켜보며 '다시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라는 생각으로 당을 떠났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4년 전 20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은 이른바 '비박'과 '친박' 세력 간의 헤게모니 싸움이 드셌다. 당대표 선거에서 비주류인 김무성이 승리하고 원내대표 선거에서도 비주류인 유승민이 이겨 청와대의 장악력이 느슨해졌다. 박 대통령과 친박계는 위기의식을 가졌다.
특히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박근혜 대통령의 정책을 정면 비판한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해 박 대통령은 적대적 감정을 가졌다. 그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유승민 의원의 부친인 유수호 전 의원이 사망했을 때 대통령은 상가(喪家)에 조화를 보내지 않았다. 정치 도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유 의원 지구당사무실에 붙은 박 대통령 사진을 떼라는 지시가 정무수석실에 떨어졌다. 말이 안되는 억지였다. 유 의원과 가까운 신동철 정무비서관이 머뭇거리자 현기환 정무수석은 "니 할매 성격 모르나? 할매가 지금 난리났다"고 들들 볶았다. '할매'는 박 대통령을 지칭한 은어였다. 신 비서관은 하는 수 없이 당 사무처 직원을 시켜 대통령 사진은 새누리당 재산이니 돌려달라고 했다.
박근혜 '할매'의 유승민 타깃 '살생부'와 '친전 연설문'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에 친박계 이한구 의원을 앉혔다. 공관위는 원내 인사 5인, 원외 6인으로 공천심사위를 구성했는데 11명 중 2/3가 넘는 8명이 친박계로 분류되었다. 이한구 공관위원장은 박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넘겨받은 명단으로 '진박 공천'을 시작했다. 명분은 새로운 인물의 등용이었다. 명분을 뒷받침할 자료는 선거여론조사였다. 청와대 업무추진비로는 부족해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끌어다 쓴 것도 이 때문이었다. 물론 정책 관련 여론조사로 허위증빙을 했다.
신동철 비서관의 박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 법정증언에 따르면, 정무수석실이 여론조사를 해 그 결과와 경선 및 선거전략, 친박 인물 현황 및 대통령의 지지인물 자료를 공관위원장에게 수시로 전달했다. 심지어 공천경선 여론조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와 그 결과를 어떻게 반영하면 친박에 유리한지에 대한 자료까지 넘겼다. 현기환 수석이 시내 플라자호텔에서 이한구 위원장을 만나다가 들킬 뻔한 일도 있었다.
청와대는 친박 후보를 티 안나게 지원하기 위해 '친박 실세'가 선거사무소를 방문하도록 했다. 친박 성향의 경선 후보들끼리 경쟁이 심한 곳은 '친박 실세'가 '진박 감별사'로 동원되었다. 경쟁력 있는 비박 후보가 친박 의원에게 도전장을 내민 곳은 복수의 예비 후보를 만들어 친박계 현역에게 유리하도록 했다. 경선이 곧 당선인 대구에선 유승민과 유승민계 3인이 살생부에 올랐다.
박 대통령은 유승민 지역구인 대구 동구을에 끝까지 대항마를 내세우라고 지시했다. 이에 정무수석실은 여론조사를 통해 이재만 대구 동구청장을 경선 대항마로 내세웠다. '할매'는 이재만 후보가 연설을 잘 못한다며 직접 연설문을 보내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할매가 보낸 연설문은 최서원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언어로 다듬어' 썼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선거의 여왕'이 친전 연설문까지 내려보내도 대항마의 지지율이 반등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경선하면 유승민이 후보가 될 것이 뻔했다. 그러자 공천관리위가 마지막 공천 발표 때 대구 동구을 선거구를 이재만 구청장을 단수 공천하는 것으로 발표해 버렸다. 하지만 김무성 대표는 도장을 찍지 않고 지방으로 가버렸다. 이른바 '옥새파동'이었다. 새누리당은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연예물로 셀프 패러디해 '무성이 옥새 들고 나르샤'라는 홍보 영상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김형오 위원장이 진단한 '한국당의 7개 죄목'
새누리당 공천 파동은 뒤끝 작열한 할매의 분노조절 장애와 오만이 부른 참사였다. 20대 총선은 '1여 3야'의 4당 구도였다. 당시 총선 60일 전에 공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 정당 지지도는 새누리당 42%, 민주당 20%, 국민의당 10%, 정의당 2%였다. 야당 지지도를 다 합쳐도 여당보다 10%포인트가 낮았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 직무평가도 긍정(43%)과 부정(46%)이 오차범위 내였다.
누구나 여당의 압승을 예상했으나 결과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그 반대였다. 결과적으로 4년 전 '할매'와 친박 세력의 공천 개입과 오만함이 새누리당의 분열과 대통령 탄핵을 초래했다. 자업자득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21대 총선을 60일 앞둔 최근 한국갤럽 여론조사 정당 지지도(민주당 37%, 한국당 21% 등)는 시사하는 바 크다.
김형오 위원장은 한국당이 참패한 지난 지방선거 직후에 열린 '대한민국의 보수: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살릴 것인가?' 세미나의 발제자로 나서 한국당이 "전국정당은커녕 전통적인 텃밭마저 뿌리째 흔들리며 지역정당으로 전락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새로운 인물을 키우지 못한 죄 △권력의 사유화에 침묵한 죄 △계파이익 챙기느라 국민 전체 이익을 돌보지 않은 죄 △집권여당에 제대로 싸우지도 대응하지도 대안 제시도 못한 죄 △막말과 품격 없는 행동으로 국민을 짜증나게 한 죄 △반성하지 않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죄 △희망과 비전을 등한시한 죄 등 7개 죄목으로 한국당이 민심의 심판을 받았다고 진단했다.
선거에서 구도 다음은 인물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공관위원장을 수락할 때 "보수니 진보니 하는 케케묵은 이분법을 초월해 지역과 계파와 계층과 진영을 전부 극복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의 무언의 압박 탓인지, 중진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김성태·박인숙 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한 데 이어, 영남지역 최다선인 정갑윤(5선) 의원과 유기준(4선) 의원도 불출마에 동참했다.
중진들이 물러난 자리를 '물갈이' 할 정치 신인들의 영입도 가속화되고 있다. 통합당은 조성은(32) 브랜드뉴파티 대표, 천하람(34) 젊은보수 대표, 김재섭(33) 같이오름 창당위원장 등 '젊은피'를 영입했다. 4년 전 국민의당에서 공천관리위원, 비상대책위원 등을 지낸 조 대표는 당원 5300여 명을 확보해 지난 9일 중앙당 창당대회를 마쳤다.
김형오 위원장이 2년 전에 열거한 '한국당의 7개 죄목'은 미래통합당이 '도로 새누리당'과 '과거통합당'을 벗어날 최소한의 공천 기준선이다. 김형오 위원장이 이 최소한의 공천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통합당은 '정치판의 칠거지악'으로 퇴출당할지도 모른다. 지금 미래통합당에 '할매'는 없지만 '황배'(황교안 대표 추종세력)는 있다. 4년 전 할매의 간섭을 뿌리치지 못했듯이, 이번 공천에서 '황배'의 간섭을 뿌리치지 못하면 통합당의 미래도 담보할 수 없을 것이다.
K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