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분열과 갈등? 한국 민주주의 폄하하지 말라"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0-01-03 10:55:53
대담=조용호 문학전문기자
한국 현대사의 역정과 굴곡을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에 담아내 민족의 각성과 새로운 의지를 일깨워낸 소설가 조정래(77). 누적 판매부수 1500만부를 넘긴 그가 21세기 들어 세 번째 맞는 10년의 서두에 진단하는 한국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한국사회의 '개조'를 위해 줄기차게 쓰고 발언해온 작가가 제시하는 해법은 무엇일까.
올해 등단 50주년을 맞은 그는 낙관하지는 않았지만, 희망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는 "한국사회를 개조하려고 '천년의 질문'을 썼지만 대중이 동의하지 않으면 이 불행은 천년을 갈 것"이라면서도 "우리 민족은 굉장히 높은 자질을 가지고 있으니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멀리 내다보자"고 말했다. 작금 한국 사회의 갈등과 분열에 대해서는 "지난 시기 독재정권들이 각인시킨 이분법적 시각의 심리적 세뇌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민주적 과정일 뿐"이라고 말했다.
ㅡ21세기 들어 벌써 세 번째 10년이 시작됐다. 지금 한국사회는 어떤 길목에 서 있는가.
"세 가지 심각한 문제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첫째는 내부적인 문제로, 유엔에서 경고했을 정도로 빈부 격차가 심한 부익부빈익빈의 위험사회라는 점이다. 두 번째는 내부와 외부 문제가 겹친 사안으로, 우리 민족 통일에 직결되면서도 결국 인류의 위기를 초래할 북한의 핵 문제인데 해결될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세 번째는 외부적인 요인으로, 영원히 자기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일본이라는 이웃나라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서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이웃 국가인데도 증오하는 관계가 청산되지 못했다. 우리가 신년에도 헤쳐 나가야 할 지속적인 문제들이다."
ㅡ모두 어려운 문제들이다. 어떤 자세로 해결해 나가야 하나.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이라는 비극을 안고 있다. 분단 상태이기 때문에 참아야 한다는 구호 아래 온갖 모순들이 확대 재생산 되어 온 것이다. 이 당대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나는 당대의 작가로서, '천년의 질문'을 썼다. 이 시대 작가의 마지막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개혁이나 혁신이 아닌, '개조'라고 말하겠다. 국가 사회의 마스터플랜으로 제시하려 했던 것이 '천년의 질문'이다. 내가 절망하는 것은 이걸 쓰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자료, 책 수백 권, 경제 사회 문화 분야 인터뷰 수십 명, 취재노트 백 권이 넘도록 준비해서 쓴 건데 대중이 책을 안 읽는 시대가 됐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한국문학이 종합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 경우는 드물었지만 '천년의 질문'은 30만부 넘게 판매된 초대형 베스트셀러였다. 작금 독서 환경에서 이 정도면 여전히 영향력은 유지되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그렇지만 작가는 "이 정도로는 한국 사회를 개조할 수 없다"면서 "대중이 동의 안 해서 생기는 불행은 이런 추세라면 천년을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 나라 민주주의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이라는 말이다.
ㅡ우리가 극복해야 할 불행이라면 여러 측면이 있을 텐데, 우선 내부적으로 진영 논리, 혹은 편 가르기가 극심해 나라가 두 쪽 날 것 같다고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남을 욕하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다. 박정희 전두환 군부독재 30여 년 동안 지긋지긋했지만 그때 논리에 세뇌당해 있다. 진영논리, 다툰다, 분열돼 있다는 시각이 그것이다. 민주국가는 51:49로 의견이 갈리는 법이다. 그래야 건강하다. 대통령선거에서 40만~50만 표 차이로 이기는 게 당연하다. 반대 의견을 서로 비판하는 것은 아름다운 윤리다. 이걸 비난하는 것은 분단의식을 고착시켜 이용해 먹었던 관점의 연장선인 것이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논리를 서로 개진하고 건설적으로 화합해 나아가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건강한 민주주의를 향해 가고 있는 과정이다. 왜 이 과정을 자꾸 분열이라 말하는가. 아주 위험한 것이다."
ㅡ서로 비판하고 대립하는 게 민주주의의 한 과정이긴 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는 너무 양분돼 있는 것 같다. 중간지대가 보이지 않는다.
"치열한 문제가 있을 때는 중간지대가 없다. '태백산맥'에서도 중도적 입장의 김범우가 설 자리가 있었는가? 중도파였던 여운형 김구 다 죽여버렸다. 그게 역사고 현실이다. 치열한 문제 앞에서는 두 가지 길밖에 없다. 싸워서 이긴 다음에 또 새로운 문제가 나올 때 중도니 좌우를 따지는 거다. 김대중 노태우 때 남북 관계는 총질 직전까지 갔다가 화해를 유지했다. 이명박 정권에 가서 이를 다 깨부쉈다. 북한은 원수 나라가 아니다. 우리가 동의해서 함께 유엔에 가입한 1민족 2국가 중 하나인데 왜 그걸 인정 안하려고 하는가. 국제사회가 인정해서 유엔에서 박수치고 동시에 가입했다. 왜 그 역사적인 엄연한 사실을 잊어버리나. 북한은 우리의 속국도 지배자도 아니라 독립된 국가이다. 다만 우리와 정치체제가 다를 뿐인데, 그 국가의 원수들끼리 정상회담에서 협약한 걸 단숨에 깨버렸던 거다."
ㅡ일각에서는 한국 사회에 원론적 의미의 보수나 진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한국 사회의 현실을 따로 들여다보는 기준이 필요한가.
"그건 서양에서 수학한 이들의 편의주의다. 상대적 비교와 현실을 무시해버린 것이다. 서양에서는 400년 넘게 실험을 거쳐서 시행착오를 통해 만들어진 개념들이다. 우리는 지금 해방된 국가에서 산 지 70년밖에 안 됐고, 분단돼 있다. 지금부터 바꿔야 한다. 우리는 GDP가 3만 불 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도 비정규직 많고 복지가 이렇게 안 된 나라, 자살률 1위, 노인빈곤 1위, 출산율 꼴찌인 이렇게 문제 많은 나라 봤는가. 재벌을 무조건 옹호해주고, 정치자금 받고, 국민 삶 관심 없는 정치 보수주의자들과 분단을 악용한 이들이 다 이렇게 만든 것이다. 내가 '천년의 질문'에서 쓴 것보다 검찰은 훨씬 더 나쁘다. 어떻게 재판에 9명의 검사가 나가서 판사를 협박할 수 있는가."
ㅡ일본 우경화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실사구시 정신으로 민족주의만 앞세워서는 안된다는 시각도 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지금까지 실용적 이익을 많이 취해 온 거다. 그래서 경제발전 이만큼 된 것이지, 우리 경제 발전사를 보면 일본에서 원조 받고 기술 베끼고 하청받고 이렇게 실용적으로 지난 50년 세월 지나왔다. 이제야말로 독립을 해야 될 때다. 일본이 수출 규제한 품목들 우리가 벌써 만들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일본에 대해서는 더 단호하게 민족주의를 보여줘야 한다. 민족주의가 왜 나쁜가? 민족주의를 싫어하는 건 강대국들이 약소국들이 민족주의로 뭉치면 무서운 저항력을 발휘하니까 그런 것이다. 히틀러의 민족주의는 나쁘다. 유럽 전역을 황폐하게 만들었고, 유태인 600만 명을 죽인 배타적이고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민족주의다. 우리 약소국의 민족주의는 다르다. 방어적 공생적 화해적인 민족주의다. 다르게 봐야 한다."
ㅡ정치권의 이전투구식 싸움에 넌더리를 내는 국민이 많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정치인들은 대체로 진정성이 전혀 없다. 자기 이익만 생각하고 국민 이익은 안중에 없다. 국민은 권력을 잡기 위한 수단이고 발판일 뿐, 선거만 지나면 다 잊어버린다. 여야 막론하고 모든 정치하는 자들은 다 그런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걸 견제하고 막는 건 국민인데, 국민이 무관심하면 안 된다. 정치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무관심한 사람들만큼 편안한 존재가 없고, 뭉쳐서 떠드는 이들만큼 불안한 대상이 없다. 정치가 제일 무서워하는 건 뭉쳐서 소리 지르는 것이다. 1700만 명 넘는 사람들이 일어나서 소리 지르니까 박근혜가 탄핵됐다. 그게 국민의 힘이다. 사회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이다. 술자리에서 떠들지만 말고, 술 마실 돈으로 플래카드 하나라도 걸고 소리를 질러야 한다."
조정래는 '천년의 질문'에서 플라톤의 말을 인용해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자기 인생에 무책임한 것"이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한 기자가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자기 인생에도 '무관심'한 것이라고 전달하자 다른 매체들도 그대로 인용하더라고 개탄했다. 그는 "무관심과 무책임은 완전히 다르다"면서 "책임은 자기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의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민주주의라는 미명 하에 정치하는 자들이 국민이 소망하는 행복한 국가를 만들어주리라 신뢰했지만, 그것을 수천 년에 걸쳐 끝없이 배반해 온 게 권력자들"이라며 "한 국민이 10∼20개 시민단체를 소액이라도 후원해서 권력자들을 감시하는 '평화상비군' 1000만 명 시대를 열자"고 주장해왔다.
ㅡ시민들이 각성해 일구어내는 '평화 상비군'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했는데, 여의치 않은 것 같다. 희망은 있는가.
"나는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자질을 굉장히 높이 생각한다. 이목구비 반듯하고 체형 똑바르고 지능지수도 아시아권에서 제일 높다. 체육 음악 골프 모든 분야에서 최고다. 드라마는 남미 중동 중국 동남아를 석권했다. 국민의 권력을 위임 받아 악질적으로 이용해먹은 뿌리를 뽑아야 한다. 이 뿌리를 뽑으려면 그동안 걸린 시간의 두 배가 소요된다는 게 사회심리학자들 견해다. 우리는 이제 시작이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통일도 서두르면 탈난다. 우리 때는 끝났고 우리 아들 때도 끝났다. 나는 통일은 내 당대에 가능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손자 대에나 통일이 되면 그때 펴내라고 손자에게 유언하는 책을 따로 집필할 예정으로, 해방공간 5년의 비사들을 모아놓았다. 김정은도 마음껏 해먹으라고 해라. 그들도 사라지고 나면 통일은 자연스럽게 다가올 것이지만, 그동안 전쟁은 나지 말아야 하고 핵은 없애야 한다. 서로 동상이몽만 꿀 게 아니라 유엔 본부에 밥상을 차리고 193개 국이 동시에 보증을 서게 해서 해결해야 한다. 3대3으로 대립하는 6자회담으로는 안 된다. 전 세계가 보증해야 한다. 핵은 전 인류의 문제 아닌가. 작가의 상상력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작가의 상상은 세상을 바꿨다. 조지 오웰이 '동물농장'에서 이미 사회주의는 몰락한다고 경고하지 않았는가."
◆소설가 조정래는...
조정래는 지난해 두 번째 탈장 수술을 받았다. 하루 13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바람에 보통 탈장과는 달리 복압을 견디지 못한 경우였다고 한다. 의사는 세 번째 탈장이 되면 방법이 없다고 경고했는데 조정래는 "작가의 의지를 이길 건 없다"며 "하루에 2시간씩 집필해서 1년 반이면 3권을 완성할 수 있다"고 호기롭게 말했다.
그는 올해 등단 50주년을 맞아 번거로운 기념 행사는 일체 하지 않을 예정이지만,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은 다시 꼼꼼히 살펴 개정판을 낼 예정이라고 했다. 아내 김초혜 시인이 먼저 읽으면서 체크한 부분을 자신이 넘겨받아 검토하는 방식이다. 노년의 부부가 오래도록 협업하는 아름다운 장관이다.
'태백산맥 문학관'이 문학관으로서는 유례가 없이 매년 흑자를 기록, 지난해에는 보성군과 협의해 중견작가들이 생계 걱정 없이 당분간이라도 집필에 전념할 수 있도록 상금 1억 원을 내건 '조정래문학상'을 신설하기도 했다. 역사와 현실 문제를 떠나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다음 장편은 50주년 기념 개정판들을 마무리한 뒤 집필에 착수할 예정이다.
정리=이민재 기자, 사진=정병혁 기자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