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시인의 꽃밭에는 오늘도 문지기가 없다"
조용호 문학전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19-12-13 08:54:40
"시인들이 너무 경직돼 빗장까지 채운다"
시는 '러브레터', 시인은 감정의 '서비스맨'
"저는 한국말 하는 것에 감사하고, 한글을 아는 것에도 감사하고, 한글로 시를 쓰는 것에도 감사합니다. 50년 시인 생활 하면서 여러 출판사에서 딱지를 많이 맞았어요. 분해서 열심히 시를 썼습니다. 출판 거부를 당한 것 때문에 꾸준히 냈어요. 열심히 쓰고 걸어온 저 자신에게 악수를 청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나태주(74) 시인이 등단 50주년 기념시집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열림원)를 펴내고 12일 공주에서 올라와 서울 세종문화회관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그는 이날 시종 낮은 자세로 자신의 시업에 대해 말했다. 태도는 그러했으나 자신이 걸어온 시작의 길에 대해서는 자부심이 강했다. 시인은 '대단한 예술가' 자리에서 내려와 '서비스맨'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나 시인은 19살 때부터 교사생활을 시작해 43년 간 초등학교 교사로 살았고,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돼 문단에 나왔다. 내년이면 등단 50년째를 맞는 시력에 비하면 비교적 늦게 대중에게 알려진 편이다. 2012년 '광화문글판'에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는 '풀꽃'이 등재되면서 사이버 공간을 중심으로 그의 시들이 널리 회자됐다. 이후 인터넷에서 각광받은 그의 시들을 모은 '꽃을 보듯 너를 본다'가 2015년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나태주'라는 이름은 문학판을 떠나 대중의 아이콘으로 부각됐다.
"밤새도록 댓잎에 별빛 어리듯/ 그슬린 등피에는 네 얼굴이 어리고/ 밤 깊어 대숲에는 후득이다 가는 밤 소나기 소리/ 그러고도 간신이 사운대다 가는 밤바람 소리// 어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 어젯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 자고 나니 눈두덩엔 메마른 눈물자국/ 문을 여니 산골엔 실비단 안개"('대숲 아래서')
나태주는 16살 때 한 여자를 그리워하며 울면서 저 시를 써서 신춘문예에 응모해 시인이 되었다. 한 여자에게 버림받아 시인이 되고 또 한 여자에게 용납돼 남편이 되었지만, 그를 지금까지 지배해온 정서는 여전히 그 연애감정이다. 그는 '처음엔 한 사람을 위해 썼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을 위해서 쓰는' 러브레터가 바로 시라고 말한다.
"누군가 연모하는 대상을 향해 시를 쓸 때 보다 절절해집니다. 연애편지는 예쁘고 정성스럽고 겸손하게 쓰잖아요? 사랑하고 아끼고 그리워하는 예쁜 마음이죠. 시는 연애편지이고, 시인은 서비스맨이라는 생각입니다. 세상 사람들 힘들고 고달픈 마음 쓰다듬어주는 감정의 서비스맨. 이 일을 하는 것이 제가 세상에 남아 있는 이유입니다."
그는 1년이면 전국 200여 강연장을 돌아다닌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중학생들과 만나는 일이 기껍다고 했는데, 그 시기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하기 때문에 옆에 앉혀놓고 얘기도 들어주고 격려도 하고 시를 들려주는 봉사와 노력이야말로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많은 시인들이 헌신하고 봉사하는 '서비스맨'으로 나서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 강연을 마치고 돌아와서 많게는 그곳 학생 500명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서 자신의 시집을 보내준 적도 있다.
"제 시를 보고 '그것도 시냐'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 있지만 중학생들이 좋아해요. 아이들에게 시의 마음을 심어줘야 해요. 중학생에게 시를 주자, 그게 제 꿈입니다. 시인은 대단한 예술가처럼 굴어서도 안 되고, 내가 제일이라고 교만해서도 안 돼요. 사람들 가까이 다가가서 축복을 주고 응원을 하는 게 필요해요. 조금만 더 가서 이 고비를 넘어가면 된다, 내가 옆에 있다, 같이 가자, 이런 태도가 필요하죠."
그는 "시인의 꽃밭에는 오늘도 문지기가 없다"는 문학평론가 정실비의 이번 시집 해설을 인용하며 "시인들이 너무 경직돼서 문간에 빗장을 채우고 문지기까지 세워놓는 건 곤란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많은 사람들이 꽃밭처럼 편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인생은 고행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여기서 '고행'이란 말/ '여행'이란 말로 한번 바꾸어보자// 인생은 여행이다!/ 더구나 사랑하는 너와 함께라면/ 인생은 얼마나 가슴 벅찬 하루하루일 것이며/ 아기자기 즐겁고 아름다운 발길일 거냐"('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
그가 이번에 펴낸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는 42번째 펴낸 신작시집인 셈이다. 처음에 시작은 30편만 싣고 나머지는 이전 작품들 중에서 뽑기로 했는데, 등단 50주년에 맞춰 50편으로 늘렸다가 급기야 신작만 100편을 수록했다. 나머지는 자신이 뽑은 이전 작품들과 독자들이 좋아하는 시편들이다.
2004년 공주 장기초등학교 교장실에서 그에게 시가 언제 찾아드냐고 물었을 때 그는 "잠 잘 때도, 화장실에 있을 때도, 출근길에도 때를 가리지 않고 온다"면서 "요즘은 가뜩이나 허전하고 매사에 자신이 없어져서 시에 휘둘리기가 힘들다"고 했다. 시에는 막강한 힘이 있어서 시인이 시를 휘어잡을 수 없고, 시인은 그저 시에 휘어잡힌 사람이요, 시의 그릇일 뿐이라는 말이었다. 이후 시에 '휘둘리던' 그는 급성췌장염에 걸려 5개월 동안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다 생환했다. 다시 시가 시도 때도 없이 찾아들기 시작했고, 그 시는 이제 자신을 휘두르는 존재가 아니라, "그냥 줍는 것이다// 길거리나 사람들 사이에/ 버려진 채 빛나는/ 마음의 보석들"('시')이다.
"예전엔 방 안에 들어앉아/ 골똘히 생각하며 시를 썼는데/ 이제는 움직이며 시 쓰기// 자전거 타고 가다가 멈춰서/ 천천히 길을 걸으며/ 버스 타고 가거나 기차 타고 가면서// 시의 행간에 바람의 숨소리가 끼어들고/ 구름의 미소가 스며들고/ 나무의 출렁임이 기웃거린다// 시가 훨씬 세상과 가까워졌다고/ 사람들하고도 친해졌다고"('움직이며 시 쓰기')
그는 "강연 여행. 날마다 강연 여행. 아니 소풍. 아내가 강연하러 가는 나를 위해 간식까지 마련해주었으니 강연 여행이 아니고 무언가. 강연 소풍이 아니고 무언가."('강연 출근')라고 쓰거니와, 이렇게 오가는 틈새에서 쉼없이 휴대폰에 시를 쓴다고 했다. 그는 이날 간담회장에서도 오는 동안 썼다는 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그렇게 쓴 시들은 고치지 않고 그냥 둔다고 했다. 그는 아들 딸에게 절대 자신의 작품에 손대지 말라고 유언까지 했다.
"아들아 딸아, 지구라는 별에서 너희들/ 애비로 만난 행운을 감사한다/ 애비의 삶 깊고 가느른 강물이었다/ (……)/ 나의 작품은 내가 숨이 있을 때도 나의 소유가 아니고/ 내가 지상에서 사라진 뒤에도 나의 것이 아니다/ 저희들까지 어울려 잘 살아가도록 내버려두거라/ 민들레 홀씨가 되어 날아가든 느티나무가 되든 종소리가 되어/ 사라지고 말든 내버려두거라"('유언시-아들 딸에게')
그는 글을 쓸 때 '작가·문장·독자의 마음',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작가의 마음'만 가지고 쓸 게 아니라, 독자에게 자신의 한쪽을 내어주어 '나도 그렇다'고 공감하는 독자의 마음을 배려해야 한다고 이날 강조했다. 나태주가 쉬운 시, 공감하는 시를 설파한다고 해서 그의 시가 중학생 눈높이에만 머무는 건 물론 아니다. 부부의 침실을 엿보는 이런 '따스한 관능'은 어떤가.
"겨우겨우 두 마리 짐승이 되다// 마주 누워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거꾸로 누워 맨발바닥을 주물러 주기도 하고/ 잠을 잘 때도 마주잡은 손 쉬이 놓지 못한다// 겨우겨우 짐승이 사람보다 윗질인 것을/ 알게 되다."('부부.1')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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