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이인문의 역작‘강산무진도’등 9건도 보물 지정 문화재청은 18세기 조선에서 제작된 천체 관측 기구인 ‘혼개통헌의’를 비롯해, ‘이인문 필 강산무진도’,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 ‘고창 선운사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 등 고려~조선 시대 회화와 불교문화재, 전적, 초기 철기 시대 거푸집과 청동거울, 통일신라 시대 도기 등 총 10건을 보물로 지정했다.
세로 238cm, 가로 279cm의 대규모 화면에 천장보살과 지지보살, 지장보살 등 세 보살의 모임을 묘사한 그림으로서, 월륜, 치흠, 우평 등 18세기 경상북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화승들이 제작에 참여했다. 천장보살을 중심으로 높은 수미단 위에 앉은 세 보살과 각각의 인물들이 질서 정연하면서도 짜임새 있게 배치한 것으로 보아 이들 화승의 수준 높은 기량을 가늠할 수 있다.
이 삼장보살도의 도상은 1661년에 간행된 ‘천지명양수륙재의범음산보집’이라는 경전에 근거한 것으로, 천장보살이 중생들을 구제하는 부처인 약사여래처럼 약호를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약호를 든 천장보살의 모습은 같은 시기 다른 지역 불화에서는 좀처럼 확인되지 않고 경상북도 지역에서만 집중적으로 그려졌으므로 18세기 삼장보살도의 새로운 도상을 창출했다는 점에서 미술사적인 가치가 크다.
현재 16세기 이전에 제작된 삼장보살도의 대부분은 일본 등 해외에 전해지고 있고, 17~18세기 초에 제작된 ‘안동 석탑사 삼장보살도’나 ‘대구 파계사 삼장보살도’ 조차 도난으로 그 소재가 불분명하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는 18세기 전반 연대를 가진 삼장보살도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
또한, 유려하면서도 세련된 필치와 안정된 구도, 적색과 녹색이 중심이 된 조화로운 색감 등에서 조선 후기 불화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1년 후에 조성된 ‘상주 남장사 삼장보살도’와 함께 18세기 전반 경상북도 지역 삼장보살도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보물 제2026호 ‘김천 직지사 괘불도’는 1803년에 제작된 괘불로, 현재까지 알려진 19세기 괘불 중 시기가 가장 빠르고 규모도 가장 크다. 머리에 보관을 쓴 보살형 본존이 양손으로 연꽃을 받쳐 들고 정면을 향해 당당하게 서 있는 독존 형식의 괘불도이다. 괘불 하단에 쓰인 화기를 통해 직지사를 중심으로 경북 권역에서 활동한 제한을 비롯해 위전, 탄잠, 부첨, 신화 등 총 13명의 화승이 제작에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단독의 보살형 본존을 중심으로 화면 위에는 10위의 시방제불과 5위의 보살상을 배치한 간단한 구성이다. 앞 시기 괘불에서 보인 중량감 넘치는 형태에서 가늘고 날씬한 형상으로 변모한 점, 섬세하고 유려한 형태미의 구사보다는 굵고 대담한 선묘가 돋보여 시대적 전환기에 제작된 불화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약간 어두운 적색과 녹색의 대비로 18세기보다는 시각적으로 다소 엄숙한 느낌을 주며, 일부 권속에 국한되어 쓰이던 입체적인 음영법이 본존까지 확대되는 등 시대에 따라 달라진 표현기법도 확인된다. 높이 12m 이상 되는 대형 불화임에도 불구하고 도상의 배치, 상·하축의 조형성, 입체감 있는 표현 등 여러 면에서 19세기 불화를 대표할 만큼 우수하다고 평가되는 작품이다.
참고로,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와 ‘김천 직지사 괘불도’는 문화재청이 전국 사찰 소장 불교문화재의 현황파악과 정밀기록화를 위해 진행 중인 '불교문화재 일제조사'와 ‘대형불화 정밀조사’ 사업을 통해 가치가 새롭게 발굴된 작품들이다.
보물 제2027호 ‘도은선생시집 권1~2’는 고려 말 문인 도은 이숭인의 문집 5권 가운데 권1~2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금속활자로 간행한 것이다. 1406년 태종은 이숭인에게 이조판서를 추증하고, ‘문충’이라는 시호를 내린 후 그의 문집을 간행하라고 명을 내렸다. 이에 변계량이 편집하고 권근이 서문을 지어 간행한 것이 ‘도은선생시집’이다.
권근이 서문을 쓴 연도가 1406년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조선 개국 이래 최초의 금속활자인 계미자가 주조된 1403년에서 오래되지 않은 시기에 인출된 것으로 보이며, 계미자본 인출 시 주로 주석의 글자로 사용된 계미자 중자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책의 맨 앞은 없어져 권근이 쓴 서문의 말미 4행만 남아있고, 본문 역시 주석 없이 원문만 있는 권1~2만 수록되어 있어 완전한 모습을 갖추지는 못했다. 하지만, 현존본이 극히 적은 귀중한 사례라는 점, 조선 개국 이래 가장 먼저 인출된 계미자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 고려와 조선 전환기의 금속활자 인쇄술을 연구할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보물로 지정해 연구하고 보존할 가치가 높다.
보물 제2028호 ‘도기 연유인화문 항아리 일괄’은 통일신라 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대호와 소호 총 2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호와 소호는 제작 당시 외호와 내호의 용도를 염두에 두고 제작했는지는 불분명하나 유사한 형태와 문양, 제작기법을 보여주고 있어 같은 공방과 장인에 의해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입자가 미세한 점토를 활용해 구워냈고 유약은 산화납과 산화동을 섞어 녹색을 띠도록 만든 녹유계 연유다. 구연부와 몸체 전반에 걸쳐 종류가 다른 인화문을 찍었으며 문양대를 분할해서 시각적인 다양함을 추구했다.
뼈항아리 계열의 통일신라 연유도기 항아리 중 가장 크고 문양소재가 화려하며, 통일신라 시대 연유도기의 제작과정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비록 구연부와 바닥굽 등 일부 파손으로 인해 후대에 보수를 거쳤으나 동시기 도기와 비교할 때 조형적·기술적 측면에서 독보적이며, 예술적 가치와 희소성 측면에서도 8세기 통일신라 도기를 대표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보물 제2029호 ‘이인문 필 강산무진도’는 18세기 후반~19세기 초 궁중화원으로 이름을 떨친 이인문이 그린 것으로 총 길이 8.5m에 달하는 긴 두루마리 형식이다.
이 그림은 이인문의 그림 중 처음 보물 지정이 예고된 작품으로, 조선 말기 학자 추사 김정희가 소장했던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유행한 전통적 화제인 ‘강산무진’을 주제로 끝없이 이어지는 대자연의 경관을 형상화했다.
웅장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서 그린 것으로, 광활하고 넓은 구도에서 시작하다가 우뚝 솟아오른 절벽이 나타난 전반부와 험준한 산세가 중첩되어 광활하게 그려진 중반부, 그리고 다시 잔잔한 풍경으로 연결되는 3단계 구성은 심사정의 ‘촉잔도’와 많은 유사성을 보여준다.
‘강산무진도’는 산수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촉잔도’ 보다 풍속적 요소를 현실감 있게 결합시켰고 표현에 있어서도 붉은색과 연두색을 많이 사용해 화사한 분위기를 극대화한 점, 산의 생김새를 더욱더 또렷하게 묘사해 박진감을 더해준다는 점에서 이인문의 개성이 잘 반영되어 있다.
이처럼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는 한국회화사에서 보기 드문 장권의 산수화로서 전문 직업 화가로서 그의 높은 기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광활한 산수 표현과 정교하고 뛰어난 세부 묘사가 일관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조선 시대 회화의 대표작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보물 제2030호 ‘신편유취대동시림 권9~11, 31~39’는 총 70권 중 권9~11 및 권31~30에 해당하는 책으로, 1542년 경에 쓰인 금속활자인 ‘병자자’로 간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판본이다. 이 판본은 16세기 우리나라 시문집 간행의 과정을 살펴보는데 중요한 서책이다.
‘신편유취대동시림’은 조선 중종 연간의 문신인 유희령이 고대로부터 당시까지의 우리나라 문인들의 시를 모은 70권의 시선집이다. 기존에 간행된 시문집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시기적으로는 고대로부터 당대까지 왕실, 여성, 승려, 귀화인 등의 작품을 망라했다.
현재까지 동일 판본이 확인되지 않은 유일본이자 1516년에 중국 명나라 때 간행된 자치통감을 바탕으로 해 주자도감에서 새로 주조한 ‘병자자’로 인출한 서책이라는 점, 조선 전기 금속활자의 발전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자료이다.
보물 제2031호 ‘고창 선운사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은 고려 말~조선 초에 유행한 두건을 쓴 지장보살좌상이다. 온화한 표정과 불룩한 입술, 양쪽에서 드리워져서 여의두 형태로 마무리 진 띠 장식, 둥근 보주를 든 모습 그리고 치마를 묶은 띠 매듭 등은 고려 말기 조각 양식을 충실하게 반영했다.
이 지장보살좌상은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비례와 띠로 묶어 주름잡은 섬세한 두건의 표현 등이 조형적으로 우수할 뿐만 아니라, 보주를 든 두건 지장의 정확한 도상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여말 선초의 지장 신앙과 지장도상 연구에 귀중한 사례다. 이 시기 금동과 목조로 제작된 지장보살상은 몇 점이 전하고 있으나, 석조로 제작된 지장보살 중 보존상태가 거의 완벽한 사례는 참당암 지장보살좌상이 거의 유일하다.
대좌의 경우 보살상과 함께 조성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상·중·하대를 완전하게 갖추고 있고 가늘고 긴 형태, 여의두문이 새겨진 안상 등에서 고려 시대의 특징이 뚜렷하므로 함께 보물로 지정해 보존·관리할 가치가 있다.
보물 제2032호 ‘혼개통헌의’는 해시계와 별시계를 하나의 원판형 의기에 통합해 표현한 천문 관측 도구로,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알려진 제작 사례이다.
중국을 통해 전래된 서양의 천문시계인 아스트롤라베를 실학자 유금이 조선식으로 해석해 1787년에 만든 과학 기구로서, 이 유물은 1930년대 일본인 토기야가 대구에서 구입해 일본으로 반출했으나, 2007년 고 전상운 교수의 노력으로 국내에 환수된 문화재다.
‘혼개통헌의’는 별의 위치와 시간을 확인하는 원반형의 모체판과 별의 관측지점을 알려주는 여러 모양의 침을 가진 T자 모양의 ‘성좌판’으로 구성됐다.. 모체판 앞뒷면에 걸쳐 ‘건륭 정미년에 약암 윤선생을 위해 만들다’라는 명문과 더불어 ‘유씨금’이라는 인장이 새겨져 있어 유금이 약암이라는 호를 쓴 윤선생을 위해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밖에 밤 시간에 특정한 별을 관찰하는 ‘규형’, 별의 고도를 확인하는 ‘정시척’도 함께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는 모체판과 성좌판만 남아 있다.
모체판은 앞면 중심에 하늘의 북극을 상징하는 구멍에 핀으로 성좌판을 끼워 회전하도록 만들어졌다. 외곽을 24등분해 맨 위에 시계방향으로 시각을 새겼고 바깥쪽부터 남회귀선, 적도, 북회귀선의 동심원, 위쪽에 지평좌표원을 새겼다. 성좌판은 하늘의 북극과 황도 상의 춘분점과 동지점을 연결하는 T자형으로, 축과 황도를 나타내는 황도원을 한판으로 제작했으며, 특정별과 대조할 수 있도록 돌출시킨 지성침이 11개가 있다. 뒷면의 윗부분에는 ‘북극출지 38도’란 위도를 새겼으며 이는 곧 서울의 위도 36.5도에 해당한다.
모체판과 성좌판에는 북극성, 직녀자리, 견우자리, 처녀자리, 천칭자리, 뱀주인자리,안드로메다, 오리온, 페가수스 등 계절별 주요 별자리가 표시되었으며, 그밖에 알파드, 프로시온 등 우리나라 하늘에서 주로 관측되는 별자리 사이에 있는 작은 별들의 위치도 표시했을 정도로 섬세하게 제작됐다.. 이는 유금의 ‘혼개통헌의’가 중국 혼개통헌도설의 영향을 받았으나 그가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조선식 천문시계를 만들었음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혼개통헌의’는 서양의 관측기기인 아스트롤라베를 받아들여 동아시아에서 제작된 유일무이한 천문 도구이자 서양 천문학과 기하학을 이해하고 소화한 조선 지식인들의 창의적인 성과를 보여주는 실례다. 또한, 제작 원리와 정밀도에 있어서도 18세기 조선의 수학과 천문학 수준을 알려주는 우리나라의 소중한 과학 문화재로서 보물로 지정해 그 가치를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보물 제2033호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 거푸집 일괄’은 2003년 갈동 1호 토광묘에서 출토된 거푸집 2점으로, 한 점은 한쪽 면에만 세형동검의 거푸집을 새겼고, 다른 한 점은 동검과 동과가 각각 양면에 새겨져 있다. 초기 철기 시대 호남 지역의 청동기 제작 문화를 알려주는 유물로서, 고분의 편년과 거푸집에 새겨진 세형동검의 형식 등으로 볼 때, 기원전 2세기경에 실제로 사용된 후 무덤에 매장된 청동기 제작용 거푸집이다.
이 석제 거푸집은 실제로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으며, 같이 나온 유물들로 보아 출토 정황이 명확해 매우 드문 고대 청동기 생산 관련 유물로서 매우 귀중한 문화재다. 거푸집의 상태, 새겨진 세형동검과 동과의 형태 등이 매우 자세하고 조각 솜씨가 탁월하다는 점에서도 주목되는 작품이다.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청동기∼초기 철기 시대에 해당하는 거푸집들이 발견된 사례는 10여 건이지만 대부분 출토지가 불분명하다.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 거푸집’은 출토 지점과 출토 정황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례라는 점에서 자료의 진실성과 중요성이 다른 거푸집들과 비교하기 어렵다. 또한,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해 당시 사회의 청동기 주조기술을 보여주는 데도 탁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보물 제2034호 ‘완주 갈동 출토 정문경 일괄’은 초기 철기 시대인 기원전 2세기경에 사용된 2점의 청동제 거울로서, 정식 발굴조사에 의해 출토된 보기 드문 사례다. 2007년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반교리에 자리한 갈동 5호와 7호 토광묘에서 각각 한 점씩 출토됐다..
한반도에서 지금까지 출토된 정문경은 약 60점이며, 그 중 ‘전 논산 정문경’은 국보 제141호 정문경으로 지정되어 있고, 화순 대곡리에서 나온 정문경은 함께 출토된 팔주령, 쌍주령 등과 함께 국보 제143호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로 지정되어 있다. 완주 갈동 5호 토광묘와 7호 토광묘에서 출토된 정문경 2점은 국보 정문경이나 화순 대곡리에서 나온 정문경보다 늦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문양이 매우 정교한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초기 철기 시대의 늦은 시기를 대표할 수 있는 정문경으로 판단되며, 우리나라 청동기 제작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물로 평가된다.
이처럼 완주 갈동 출토 정문경 2점은 출토지점과 출토정황이 명확할 뿐 아니라 완형에 가깝고 뒷면에 새겨진 문양도 매우 세밀하고 아름다워 우리나라 초기 철기 시대 청동기 주조기술을 이해하는데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문화재청은 해당 지방자치단체, 소유자 등과 적극적으로 협조해 이번에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문화재가 체계적으로 보존·활용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