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아픔과 미식의 도시, 군산

김병윤

| 2019-03-06 15:02:29

일제 수탈의 흔적 곳곳에
맛집 찾아 떠나는 '낭만의 미각여행' 인기

아프다. 아파도 너무 아프다. 가슴이 시리도록 아프다. 군산에 발을 내디디면 아픔이 와 닿는다. 일본식 집을 보니 가슴이 미어진다. 옛 정취가 낭만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조상들의 아픔이 가슴을 때린다. 악독한 일본인들의 억압을 어찌 지내왔을까. 얼마나 시달렸을까.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얼마나 추위에 떨었을까. 나라 잃은 설움을 어찌 견뎌 냈을까.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자연스레 고개를 숙이게 된다. 우리의 풍요로운 삶을 뒤돌아보게 한다. 치욕의 역사를 극복하기 위한 역사의 현장이다. 군산은 그런 도시이다.

 

▲ 군산의 근대문화거리 전경 [군산시 제공]


군산은 1899년 5월 1일 마산 등과 함께 개항했다. 근대화가 됐다. 일본인들이 들어왔다. 집을 짓고 자리를 잡았다. 지금도 일본식 가옥 170여 채가 온전히 보존돼 있다. 수탈이 시작됐다. 일본인들은 군산 인근의 옥토를 빼앗았다. 대규모 농장을 운영했다. 1930년대에 절정을 이뤘다. 일본인이 운영한 15만 평 이상의 농장이 23개나 됐다. 지금도 일본 지주들의 후손들이 조용히 왔다 간다. 자기들 조상의 옛 땅을 말없이 둘러보고 간다. 섬뜩하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가는 걸까. 속내를 보이지 않는 일본인이다. 아베의 우경화 정책이 오버랩된다.

 

여하튼 질 좋은 쌀은 어김없이 일본행 화물선에 실렸다. 힘 없는 조선인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일본인들의 착취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수확한 곡물의 소작료를 75%까지 요구했다. 농민들은 소작료 납부를 거부했다. 일본 경찰은 농민회 간부를 감금했다. 500여 농민들은 분개했다. 힘을 합쳐 일어섰다. 징을 울리며 주재소를 습격했다. 주재소를 완전히 부쉈다. 농민회 간부들도 구출했다. 사상 초유의 농민 저항운동이다. 이른바 옥구농민항일항쟁이다.


일본의 악랄한 수탈은 치밀하게 진행됐다. 금융기관과 세관을 세웠다. 18은행 군산지점이 들어섰다. 본점은 나가사키에 있었다. 목적은 크게 두 가지였다. 쌀 반출과 토지 강매를 주요 업무로 했다.

 

1911년 조선은행도 설립했다. 기존의 한국은행을 빼앗았다. 한국은행은 1909년 구 대한제국 때 세워졌다. 이런 은행을 빼앗아 조선은행으로 개명했다. 그리고는 총독부 직영은행으로 운영했다.

 

1908년에는 군산 세관 본관도 완공했다. 군산 세관은 외국 물품이 들어올 때 관세를 부과했다. 우리 쌀이 군산 세관을 통해 일본으로 나가게 했다. 이 모든 것이 선조들의 피와 땀을 쥐어짜기 위해서였다. 일제의 만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우리의 정신을 빼앗으려 했다. 한국인의 혼을 말살시키려 했다.

 

1909년 일본 불교 조동종의 군산포교소가 들어섰다. 1913년에는 일본식 사찰 금강사를 건립했다. 한국의 유일한 일본식 사찰이다. 금강사는 단순한 일본식 사찰이 아니다. 금강사에는 일본 천황을 칭송하는 범종도 있다. 일제는 불교를 통해 한국인의 혼을 짓밟으려한 것이다. 금강사는 1970년 대한불교 조계종에 편입됐다. 사찰명도 동국사로 바뀌었다. 동국사는 해동대한민국의 뜻을 갖고 있다. 김남기 스님이 지었다. 

 

▲ 일제시대 한국인의 혼을 짓밟으려 세운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 [군산시 제공]

 

군산은 두 얼굴의 도시이다. 일제의 아픔이 있고 낭만도 있다. 아픔 속에서만 살 수는 없다. 아픔은 극복하면 된다. 우리의 부단한 노력으로. 아픔을 뒤로 하고 낭만에 빠져보자. 추억의 완행열차를 타고 떠나보자.

 

군산은 미각의 도시이다. 예로부터 곡창지대로 유명하다. 질 좋은 쌀이 생산된다. 해산물도 많이 나온다. 먹거리가 풍부하다. 인심도 좋다. 당연히 식문화가 발달했다. 군산의 식문화는 일제 강점기에 전환점을 맞는다. 일본사람들이 빵을 갖고 들어왔다. 시마네현 출신의 제빵사가 출운옥이라는 빵집을 세웠다. 양과자와 빵을 만들어 팔았다. 사람들은 달콤한 맛에 빠져들었다. 새로운 음식의 도입이다. 군산이 지금도 제과업으로 유명한 이유다.

 

군산에는 일제 강점기에 1500여 명의 중국인도 함께 살았다. 다양한 중국 음식을 선보였다. 짜장면도 선보였다. 면 음식 역시 군산의 자랑거리이다.

 

군산은 탕 종류가 발달했다. 해산물이 풍부해서다. 아귀와 복어를 주재료로 한다. 어민들이 1950~1960년대에 푸대접한 생선이 있다. 아귀다. 이런 아귀가 군산에서 미식으로 탈바꿈했다. 군산의 한 요리사가 아귀탕을 개발했다. 아귀탕은 국민 해장국이 됐다. 군산에는 아귀와 복어집이 많이 있다.

 

군산의 특산물이 또 있다. 울외장아찌다. 우리에게는 생소하다. 울외는 박과 오이, 참외를 두루 닮았다. 군산과 정읍에서 주로 생산된다. 울외장아찌는 술지게미에 담가 숙성시킨다. 술지게미는 청주를 생산하고 남은 찌꺼기를 사용한다. 모든 음식과 궁합이 좋다. 밑반찬으로 사랑받는다. 여름철 입맛 돋우는 데 제 격이다. 개운하고 단맛이 난다. 백제 시대부터 임금님 밥상에 올랐다. 군산에서는 이처럼 다양한 음식을 맛 볼 수 있다. 한·중·일 세 나라의 음식이 제각각 맛을 뽐내고 있다. 


군산에는 추억의 장소도 많다. 너무도 잘 알려진 유명장소이다. 경암동 철길마을. 2008년 6월 30일까지 운행했다. 지금은 폐쇄됐다. 기차 대신 인파로 북적인다. 젊은 연인들의 환한 미소. 옛 추억의 교복을 입은 중년 여인들의 웃음소리. 모자를 비뚤어지게 쓴 중년 남자들의 우스꽝스런 모습. 모두가 정겹다. 2014년 황정민, 한혜진 주연의 ‘남자가 사랑할 때’로 유명해졌다.

 

영화 촬영지로 군산을 널리 알린 명소가 또 있다. 초원사진관이다. 1998년 개봉된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이다.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가슴 시린 사랑으로 눈물샘을 자극했다. 지금도 초원사진관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옛 추억을 살리려고.

 

군산에는 이밖에도 유명 영화 촬영지가 관광객을 맞는다. ‘변호인’의 군산내항. ‘타짜’의 신흥동 일본식 가옥. ‘말죽거리 잔혹사’의 영국빵집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군산은 이처럼 아픔과 맛과 예술이 공존하는 도시이다. 근대와 현대가 어우러져 있다. 군산은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과거를 잊지 말라고. 광복 후 우리의 어르신들은 이렇게 말했다. “미국놈 믿지 마라. 소련놈에게 속지 마라. 일본놈 일어선다.” 어르신들의 말씀에 경각심을 느끼게 된다. 현실이 그렇게 가는 듯하다.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자각하면 된다. 준비하면 된다. 조상들의 아픔을 현장에서 느끼고 싶은가. 미래를 대비하고 싶은가. 떠나라. 군산으로.

 

KPI뉴스 / 김병윤 기자 bykim7161@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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