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균의 금융경제 읽기] 트럼프가 촉발한 혼돈속에서도 무역낙관론을 말하는 이유

류순열 기자

ryoosy@kpinews.kr | 2026-04-11 22:56:57

닉슨의 '현실 타협' vs 트럼프의 '영원한 적대'...역사서 배우는 무역의 미래
'슈퍼 악당' 등장에도 멈추지 않는 '교환의 본성'과 '민생 극복'의 필연성

스스로 관세맨 슈퍼 영웅이라 칭하며 세계 무역을 뒤흔들고 연이어 중동 전쟁을 일으켜 글로벌 경제를 혼돈으로 몰아감은 물론 미국의 위상도 위태롭게 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슈퍼 악당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악당의 서사와도 같았던 트럼프의 관세정책에는 올 2월 미 연방대법원이 위헌 판결을 내렸다. 국제비상경제권한법(International Emergency Economic Powers Act of 1977, IEEPA)에 의거해 트럼프가 수십 개국에 관세를 부과한 것은 대통령의 권한 남용이라고 판결했다. 대통령이 이러한 권한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의회의 명확한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결정적인 법적 패배와 함께 제동이 걸린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1930년대 보호무역주의로의 전면적인 퇴보였다기보다는 같은 공화당 출신의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이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 시행했던 보호무역주의 정책과의 유사성을 떠올리게 한다.

 

닉슨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은 철강과 섬유에 대한 교역대상국들의 이른바 자발적인 수출 제한이 핵심이었다. 닉슨도 트럼프처럼 동맹 관계를 지렛대로 삼았다. 예컨대 일본이 수출 제한 할당량에 동의하지 않으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점령해 온 오키나와섬의 일본 반환을 지연시키겠다고 위협했다.

 

1971년 닉슨은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와 금 보유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른바 닉슨 쇼크를 단행했다.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수입품에 대해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이 조치는 당시 일본과 서독 등 주요 교역국들이 자국 통화 가치를 절상하도록 압박하기 위한 협상용 무기였다. 이와 함께 달러의 금 태환 정지를 선언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된 고정환율제 기반의 브레튼우즈 체제를 해체했다. 공교롭게도 닉슨은 트럼프가 사용한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 1977)의 전신인 적성국교역법(Trading With the Enemy Act of 1917, TWEA)을 사용했다. 닉슨이 사용한 적성국교역법(TWEA, 1917)의 광범위한 권한 남용을 막고 대통령의 비상 경제 권한을 의회의 통제하에 두기 위해 제정된 법이 바로 국제비상경제권한법이다.

 

1973년 석유수출국기구 회원국들의 석유 수출 금지 조치에 따른 1차 오일 쇼크에 대처해야 했던 닉슨처럼 트럼프는 그 자신이 초래했지만 2025년 관세 전쟁에 이어 최근 중동 전쟁에 따른 유가 상승 등 인플레이션 압력에 처해 있다. 닉슨의 공격적인 보호무역주의 정책은 높은 인플레이션 압력에 직면하며 곧 동력을 잃었다.

 

트럼프의 처지 또한 마찬가지다. 2월 연방대법원 위헌 판결 이전에도 미국의 대내외 경제 및 금융 상황은 무리한 관세정책에 기인한 문제들을 노정하고 있었다. 무역에 대해 비슷한 태도로 접근했던 닉슨과 트럼프 두 명의 공화당 대통령은 공통적으로 무역 전쟁을 벌이는 데 있어서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혔다.

 

▲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편 미국 대통령 닉슨(오른쪽)과 트럼프. 그러나 둘은 달랐다. 트럼프와 달리 닉슨은 현실을 인정하고 자유무역으로 선회했다. [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

 

그럼에도 닉슨과 트럼프의 확실한 차이점이 있다. 닉슨은 곧 현실적 한계를 인정하고 무역 자유화로 방향을 선회했다. 의회를 설득하여 1974년 무역법(Trade Act of 1974)을 통과시켰고 이 법은 행정부에 보다 자유로운 협상 권한을 부여했다. 이를 통해 미국은 1973년부터 시작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하의 새로운 세계 무역 협상 라운드에 참여할 수 있었다.

 

반면 트럼프는 다자주의(multilateralism)에 대한 혐오감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3월에도 세계무역기구(WTO)를 맹렬히 비판하며 글로벌 규칙에 따라 운영되는 개방형 무역으로 전환하기보다는 양자 협상을 통해 무역을 관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50년 전인 1970년대의 닉슨이 무역 자유화로 선회한 반면 2020년대의 트럼프는 자유 무역에 대해 끊임없는 적대감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일부 역사가들이 닉슨 시절을 향수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할 법하다. 트럼프의 파괴적인 보호무역주의와 비교할 때는 닉슨 시절이 다자간 무역 개방의 황금시대처럼 여겨지는 측면마저 있을 터이다.

 

그러면 닉슨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유례없는 슈퍼 악당이라 할 트럼프가 재임하는 중에는 무역 낙관론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슈퍼 악당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역 낙관론이 타당할 것이라고 본다. 우선 현실적 한계에 부딪힌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은 적어도 2026년과 2027년의 무역 상황이 2025년보다는 평온하고 안정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닉슨 시절 1973년과 1974년의 무역 상황이 1970년이나 1971년보다 훨씬 더 평온했던 것과도 일응 비견될 수 있다. 다만 현실 한계에 직면했던 닉슨이 무역 자유화로 정책을 선회한 대목은 향후 트럼프에게 재현되기는 어려울 개연성이 적지 않다. 그래서 근원적인 해법의 단초는 트럼프가 아니며 다른 원동력에서 나오게 됨을 읽는 금융경제 통찰력이 우리에게 긴요하다.

 

그동안 트럼프의 자의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무역정책은 세계 경제에 심대한 어려움을 야기해 왔으나 미국에 대한 1930년대식 관세 보복 등의 악순환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WTO의 룰과 규범을 공격적으로 거부하는 트럼프의 행태를 세계가 무분별하게 모방하는 결과로도 이어지지 않았다. 이는 세계 무역의 25%를 차지하는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75%의 세계가 시장의 시스템을 살리고 무역을 계속하기로 결정한 데 크게 힘입은 것이다. 애덤 스미스가 1776년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에서 말했듯이 세계 무역을 이끄는 교환의 본성(propensity to exchange), 즉 시장의 원리가 여전히 인간 본성에 의해 우리 시대에도 발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관세는 2025년 하반기 이후 실효 관세율이 10%를 넘나들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정점에 달했다. 기업들과 각국은 이제 무역 경로를 신속하게 변경하는 데 보다 익숙해지고 있다. 트럼프의 무모한 관세 정책 이후에도 세계 무역량이 계속 증가한 데서도 이는 잘 드러난다. 중동 전쟁으로 인한 최근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또한 이와 유사한 구조 재편을 형성할 가능성이 있다. 글로벌 공급망 취약성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해결책은 민첩한 무역 모델과 다변화된 무역 파트너십을 만드는 데 있다. 이 점에서 최근 맥킨지가 발표한 글로벌 무역 보고서는 시사적이다. 2025년 중 지정학적으로 멀리 떨어진(geopolitically distant) 무역 파트너 간 무역은 줄어든 반면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geographically distant) 무역 파트너 간 무역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무역의 정치경제학이다.

 

무역에 대한 낙관론의 또 다른 이유는 민생 난국 극복을 위한 경제정책적 필수성이다. 지금 많은 세계시민들은 생활 형편 곤경과 생활물가 상승이라는 심각한 민생의 문제에 직면해 있으며 이는 중동 사태로 한층 더 악화되는 중이다. 각국은 이 문제를 해결할 재정적 여력이 충분치 않다. 재정 지출을 최소화하며 민생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 바로 무역이다. 무역이 늘어나면 국민소득이 증가하고 물가 수준은 하락한다는 것을 여러 연구가 말해준다. 영국이 스칸디나비아 수준의 무역 집중도를 갖게 된다면 GDP는 최대 20%까지 증가하고 물가는 최대 10%까지 하락하는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영국이 유럽연합(EU)과의 무역 관계 재설정을 서두르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세계화의 종말을 우려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오히려 지금의 난국은 무역의 중요성과 필수성을 새삼 집중 조명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슈퍼 악당 트럼프가 유발한 2026년 중동 전쟁이 그가 또한 유발했던 2025년 관세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능가할 것인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석유, 가스 및 필수 제품 수출에 대한 걸프 지역의 사실상 봉쇄가 세계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보다 더 큰 피해를 초래할 것인가. 그 답은 여전히 무역 낙관론에 있다. 무역 낙관론의 핵심적인 관점은 우리 시대에도 발현되는 애덤 스미스의 교환 본성, 무역 모델 및 무역 파트너십 구조 재편, 그리고 민생 난국 극복을 위한 무역의 경제정책적 필수성이다. ▲ 조홍균 객원논설위원

 

 

△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 1989년 한국은행 입행 △ 1990년 조사제1부 조사역 △ 1999~2012년 정책기획국 과장 차장 팀장 △ 2016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파견국장 △ 2017년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 2018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2022년 경제연구원 부원장 △ 저서: 우리 시대의 금융경제 읽기(박영사, 2025년) △ 2025년~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법무대학원 교수,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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