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속지주의 폐지"…원정출산족 비상
남경식
| 2018-11-12 10:00:08
'차병원' 해외의료사업 타격 불가피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속지주의(屬地主義)' 폐지 의사를 밝히자 미국행 원정출산족들과 관련 종사자들 사이에 비상에 걸렸다. 이로 인해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국면이 전개될 전망이다. 속지주의는 해당 국가의 영토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트럼프 대통령의 속지주의 폐지 발언이 나오자 원정출산족 대상의 브로커 조직들은 '특수'를 노린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사실상 이를 방치, 수수방관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 대상의 해외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온 국내 최대 의료기업 차병원그룹에게도 예기치 못한 난항이 닥칠 것이란 예상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어떤 사람이 입국해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가 미국의 혜택을 모두 누리는 시민이 되는 국가다"며 "말도 안 되는 일이며, 이제는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대해 "행정명령으로도 출생시민권을 폐지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취임 이후 줄곧 반이민 정책을 강행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수십억달러 비용을 들게 하며, 미국 시민에게 불공평한 출생시민권은 어떻게든 없앨 것이다"고 재차 목소리를 높였다. 출생시민권 폐지는 2016년 대선 때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다.
미국 출생시민권 폐지 논란에 역으로 '공포마케팅'
이렇듯 미국의 '속지주의'에 따른 시민권 제도는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처지에 놓여있지만, 원정출산 알선브로커들은 오히려 자사 서비스를 이용하면 더 안전할 것이라며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A업체는 블로그에 트럼프 대통령의 원정출산 발언 게시물까지 올리며 원정출산 문의자들을 안심시켰다. A업체는 "공화당 유권자를 결집시키고 득표를 얻기 위한 정치쇼"라면서도 "각종 간접적 제재 조치가 더 많아질 수 있다"며 자사의 컨설팅을 받을 것을 권유했다. 기자와의 전화 상담에서 A업체 관계자는 "이미 미국에서 원정 출산을 막기 위해 입국 심사를 강화하고, 산후조리원에서 강제로 추방하는 등 행정조치가 진행중이다"면서 "저희 고객 중에는 단 한 분도 입국 심사에서 문제가 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즉 자사의 컨설팅과 서비스를 이용하면 '안전하게' 원정출산이 가능하다는 점을 부각시켜 현재의 고객 불안감을 영업에 적극 활용하는 모양새였다.
실제로 미국에서 원정출산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올 1월 미국 국토안보부(AHS)는 캘리포니아 지역의 원정출산 전용 아파트 20여곳을 급습한 바 있다. 미국 이민법도 관광비자로 입국해 원정출산을 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단속이 강화되자 미국땅에서 원정출산으로 태어난 아기는 2007년 39만명에서 2016년 25만명으로 36% 감소했다.
하지만 브로커들은 원정출산 알선을 위해 이러한 사실관계마저 왜곡했다. 미국에서 활동중인 B업체 관계자는 "입국 심사가 까다롭다는 이야기는 모두 팩트가 아닌 카더라통신"이라고 말했다. 또 "현실적으로 법안이 발의돼 통과되기까지는 최소 몇 년이 걸려 현재로서는 전혀 문제가 없다"면서 "내년 3월까지 예약한 산모들도 예정대로 미국에 올 예정이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법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임신과 출산을 서둘러 준비하라"며 부추겼다.
정부 부처, 서로 책임 미루며 수수방관
이처럼 불확실한 국제 정세 속에서 원정출산 알선업체들이 성행중인 이유는 정부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2014년 당시 보건복지부 문형표 장관은 원정출산업체의 유인과 알선에 대한 규제책을 곧 마련하겠다고 밝혔으나, 현재까지 대책은 발표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측은 "해외 원정출산 알선 관련 업무는 맡고 있지 않으며 법무부 소관"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법무부 역시 "원정출산으로 태어난 아이의 국적에 대해서만 관여할 뿐, 원정출산 자체는 관할 업무가 아니다"는 입장이다. 여전히 원정출산족들 대상의 음성적 영업은 성업중이지만 정부 부처들은 '소관업무가 아니다'며 떠넘기기식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편 미국에서 속지주의가 폐지된다면 차병원그룹의 미국 사업이 난관에 부딪힐 가능성도 제기된다. 1999년 뉴욕 불임센터, 2002년 LA 불임센터 설립에 이어 2004년 LA 할리우드 장로병원을 인수한 차병원그룹은 올해 초 4억달러를 투자해 LA 병원의 대규모 확장 공사에 나섰다. 차병원그룹이 2009년 미국에서 거둬들인 진료 매출은 1조3000억원으로 국내 매출 5000억원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은 바 있다.
특히 미국은 병원에서 출산하는 시스템이 한국과 달라 LA 교민들은 물론 원정출산족도 LA 차병원을 선호한다. LA지역에서 산부인과 전문의로 유명한 K원장도 차병원과 연계해 분만을 진행할 정도다. 이런 수요때문인지 LA 차병원은 출산실은 11개, 신생아집중치료실을 19개로 늘리고, 제왕절개 수술실도 3개를 신설중이다.
의료업계 관계자는 "만약 속지주의가 폐지되면 원정출산족들의 수요도 없어질 것이므로, 이들 대상의 수요를 노린 사업관계자들의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차병원 관계자는 "원정출산족을 위한 서비스는 따로 없다"며 "현지인 고객들이 많아 속지주의가 폐지되더라도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KPI뉴스 / 남경식 기자 ngs@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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