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누가 국가를 괴물로 만드는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5-02-21 15:56:48

계엄사태 직전 국내 소개된 폴 린치 소설 '예언자의 노래'
한국이 간발의 차이로 모면한 비극을 예견하듯 전개하는
작가의 조국 아일랜드의 '비상대권 체제'를 가상한 서사
"'종말'은 시대와 지역 불문, 신화 아닌 반복되는 현실"

어느날 문득 낯선 사람들이 들이닥쳐 가장을 끌고 가면서 평온한 일상이 풍비박산 날 수가 있다. 영화나 국제뉴스에 나오는 장면이 자신에게 닥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2023년 부커상을 수상한 아일랜드 작가 폴 린치의 장편 '예언자의 노래'(허진 옮김·은행나무)는 세상 어딘가에서는 항상 일어나는 '종말'의 재앙을 먼 곳의 남의 일로만 여기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소설이다.  

 

▲ '예언자의 노래'로 2023년 부커상을 수상한 폴 린치는 "나는 이 소설이 디스토피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이 책의 사건들은 지금 전 세계 어딘가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은행나무 제공]

 

지난해 11월 이 책이 국내에 소개될 때만 해도 대한민국은 아직 비상계엄 사태의 혼란에 빠져들기 전이었다. 이른바 '노상원 수첩'에 나오는 500여 명에 이르는 '수거' 계획은 경악과 공포 그 자체다. 간발의 차이로 비극은 막았지만, 실제로 진행됐다면 이곳에 펼쳐졌을 재앙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폴 린치는 자신의 조국 아일랜드가 '비상대권' 체제로 추락하는 사태를 가정하고, 세밀하고 촘촘하게 그 과정을 기록해낸다.

미생물학자인 아일리시는 4남매를 키우는 주부이기도 하다. 교원노조 일을 하는 남편이 어느날 체포되어 끌려간 뒤 소식이 없는 상태에서 치매에 걸린 홀아버지까지 살피며 암흑 속을 헤쳐나가는 이야기가 기둥이다. 남편의 생사는 알 길이 없는 상태에서 17세인 장남 마크에게 징집 영장 소식이 들려온다. 아직 어린 아들이 징발돼 시민들을 탄압하는 병사로 나서야 하는 꼴이다.

마크는 집을 나가 '반군'에 합류한 뒤 남편처럼 소식이 끊어진다. 이제 남은 아이들은 장녀 '몰리'와 열세살짜리 아들 '베일리', 아직 요람에 있는 젖먹이 '벤' 등 세 명이다. 베일리가 내전의 폭격 와중에 파편을 머리에 맞는다. 이 파편을 제거할 병원은 반군의 경계 너머 정부군 치하에 있다. 어렵사리 그곳까지 찾아가지만, 돌아온 것은 청소년마저 무자비한 고문을 통해 살해하는 극악한 결과뿐이다. 아들을 찾아 헤매다 병원 청소부의 조언을 받아들여 시체 안치소로 간 아일리시는 절규한다.

'내 아들이 아니에요, 내 아들이 아니에요, 내 아들이 아니에요, 내 아들이 아니에요, 눈앞에 고요히 부서진 베일리의 얼굴이 보인다, 피부에서 표백제 냄새가 난다, 그녀의 안에서 구부러져 있던 것이 부서지고 그녀의 몸에서 비참한 울부짖음이 새어 나온다, …내 아름다운 아이, 그들이 너한테 무슨 짓을 한 거니? 멍으로 뒤덮인 피부, 사라지고 부러진 치아, 그녀가 지퍼를 내려 뜯긴 손톱과 발톱을 본다, 무릎 앞쪽에 생긴 드릴 구멍과 몸통을 덮은 담배로 지진 자국, 그녀는 베일리의 손을 잡고 입 맞춘다'

 

 

소설은 내내 행갈이를 하지 않은 채, 쉼표로 문장을 이어가며 마침표는 드물게 사용해 독자들을 한 호흡으로 격하게 서사 속으로 끌어들이는 전술을 사용한다. 아일리시는 고통이 없는 '어둠' 속으로 아들을 따라서 완전히 들어가고 싶지만, 그녀는 어둠 속으로 나갈 수는 없다. 아일리시는 배가 되어 남은 아이들을 태우고 어둠에서 멀어져야 한다. 선택지는 없다.

치매 아버지마저 실종 상태에 이르자 아일리시는 남은 아이들을 데리고 탈출 행렬에 합류한다. 캐나다에 사는 동생이 밖에서 돕는다. 폴 린치는 이 과정을 소설 후반부에 상당 부분 할애하거니와, 시리아 난민들에 무심한 유럽 사람들을 보면서 이러한 사태가 단지 '뉴스'가 아니라 언제든 자신들의 일이 될 수 있음을 '공감' 할 수 있도록 이 소설을 착상하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남편은 물론 오빠와 사촌, 사촌의 아내까지 모두 실종됐다고 밝힌 한 여인은 자유라는 건 애초에 없었고, 생각해 보니 그동안 자유라고 생각했던 것은 오직 노력의 결실이었던 같다고 말한다. 폴 린치가 이 소설에서 하고 싶은 말은 말미의 문장들에 함축돼 있다.

'예언자들의 노래는 그 어느 때나 항상 반복되던 똑같은 노래임을 깨닫는다, 칼의 도래, 불에 삼켜지는 세상, 정오에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태양, 어둠에 잠긴 세상, 곧 눈에 보이지 않도록 쫓겨날 사악함에 대해서 예언자가 길길이 날뛸 때 그의 입을 통해 드러나는 신의 분노, 예언자가 노래하는 것은 세상의 종말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과 앞으로 일어날 일과 어떤 사람에게는 일어났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은 일의 종말이다, 세상은 어느 곳에서는 늘 끝나고 또 끝나지만 다른 곳에서는 끝나지 않는다, 세상의 종말은 늘 특정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그는 "세상의 종말이 당신 나라에 찾아가고 당신 동네를 방문하고 당신 집의 문을 두드리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이 머나먼 경고, 짤막한 뉴스, 전설이 되어버린 사건들의 메아리일 뿐"이라고 덧붙인다. 그는 이 소설 서두에 전도서 1장 9절을 문패로 걸어두었다. '이미 있던 것이 훗날에 다시 있을 것이며 이미 일어났던 일이 훗날에 다시 일어날 것이다. 이 세상에 새것이란 없다.'

 

선진 민주공화국 시민임을 자부하고 있다가 하루아침에 반세기 전 계엄 상태로 추락할 뻔 했던 작금의 한국 독자들에게는 새삼 뼈아프게 다가올 '예언자의 노래'인 셈이다. 소설 속에서 비상대권을 발동한 '국민연합'은 비밀경찰을 동원해 눈엣가시들을 '수거'하는 한편 선전전을 펼친다. 잠시 정신이 돌아온 치매 아버지가 뼈 있는 말을 던진다.

'국민연합은 너와 내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을 바꾸려 하고 있어, 그걸 흙탕물로 만들고 싶어 해, 만약 A를 B라고 하면,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하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 그 말을 하고 또 하면 사람들은 그걸 진실로 받아들여- 물론 이건 오래된 생각이야, 새로울 건 없지, 하지만 넌 책에서가 아니라 네가 직접 살아가는 시대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걸 지켜보고 있어.'

 

▲ 폴 린치는 바다를 건너야 하는 '아이리시'를 두고  "여기 남는 것은 이 어둠 속에 남는 것이지만 그녀는 아이들이 계속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썼다. [ChatGPT] 

 

체포되기 전 아일리시의 남편은 '국민연합은 자기들이 법 위에 존재하는 줄 알아, 비상대권법이 권력을 장악하려는 수작이란 건 누구나 알아, 교사가 규탄하지 않으면 우리의 헌법적 권리를 위해서 들고 일어날 사람이 달리 어디 있겠어?'라고 말한다. 소설에서는 작금의 대한민국처럼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는 어둠 속으로 '수거'되고 만다. '시위대는 몇천 명으로 줄어들었지만 종교 행사에 참여하는 열렬한 신자들처럼 종이봉투로 불 켜진 초를 감싸고 말없이 거리에 앉아 있고, 공안 부대는 물대포와 곤봉을 들고 대기 중' 같은 대목은, 폴 린치가 한국의 촛불시위를 참고했을 법 하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한국이 간발의 차이로 모면한 비극은 소설에서 이어진다.

'한밤중에 시위대와 충돌했대, 그녀가 말한다, 수천 명이 체포됐어, 전부 버스에 태웠대— 그녀는 마크에게 연락하려 하지만 전화기가 계속 꺼져 있다. 그들은 이른 새벽에 공안 부대가 섬광탄과 최루가스, 곤봉으로 시위대를 진압하는 영상을 본다, 시위자들이 비와 나트륨등 불빛 속에서 저항하는 와중에 실탄이 발사되고, 뉴스는 수천 명이 칼리지그린에서 도망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버스로 끌려간다, 한 남자가 거리에 납작 엎드려 있다가 경찰 두 명에게 팔을 붙잡혀 질질 끌려가는데 아일리시가 보니 신발이 한 짝밖에 없다.'

장남 마크의 연인 서멘사는 어찌할 줄 모르는 목소리로 말한다. 자신들의 부모는 TV에 나오는 시위대를 테러리스트일 뿐이라고 그랬다고,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 소리쳤다고. 그녀는 "아빠는 바보 같은 음모론자"라며 "엄마는 그냥 아빠 의견을 따라가는 것 같다"고 울먹인다. 

 

폴 린치는 "독재는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다가오다가 한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면서 "이 작품은 정치적 소설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슬픔을 다룬 메타픽션적 작품"이라고 말한다. 국가를 '괴물'로 만들지 않을 책임은 모두의 것이다. 아일리시의 탄식.

'국가는 우리를 내버려둬야 해요, 마이클, 괴물처럼 한 가정에 들어와서 아버지를 움켜쥐고 삼키다니, 하물며 아이들한테 이걸 어떻게 설명해요, 자기들이 살고 있는 국가가 괴물이 되었다고 말이에요.'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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