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고달픈 역사 딛고 섬이 된 선유봉
UPI뉴스
| 2019-04-02 15:13:46
겸재 정선의 ‘선유봉’을 보면 선유봉 아래 몇몇 집들이 있고 말을 탄 선비 일행이 모래밭을 건너고 있다. 선유봉은 그 당시 경기도 김포군 양동면 양화리(楊花里)에 속한 높이 40m의 산이었다. 선유봉 동·서·남쪽으로는 10만 평이나 되는 넓은 모래밭이 있어서 양화·양평리 쪽으로 걸어 다녔고, 서쪽으로는 작은 양화나루가 있어서 한강 건너편 큰 양화나루로 배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정선의 ‘양화환도(楊花喚渡): 양화나루에서 배를 부르다’에는 선유봉 아래 양화나루에서 강 건너 마포 양화진으로 건너려는 선비 일행이 손짓으로 사공을 부르는 장면이 담겨 있다.
그 당시 선비가 사공을 부르던 곳이 어딜까 상상하며 하늘다리를 건넜다. 선유도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합정역에서 버스를 타고 선유도 정문 앞에서 출발하는 길도 있고, 당산역이나 선유도역에서 내려 걸어가는 길도 있다. 당산역에서 내려서 선유도역, 양평로22길로 연결되는 코스를 선택했다. 선유도로 이어진 양평로22길에는 카페와 음식점들이 많이 들어서 있었다. 그 길에서 이어진 골목에는 아직 몇몇 공장들이 남아 있었다. 한때 양평동에는 해태제과, 롯데칠성과 같은 큰 공장과 작은 자동차수리 공장이 있었다.
올림픽도로와 한강시민공원을 발아래 두고 하늘다리를 지나 선유교로 들어섰다. 밤에 양화대교나 성산대교를 지날 때 무지개를 연상시키는 불빛이 선유교이다. 다리 앞에는 서울시와 프랑스 2000년 위원회가 공동 기념사업으로 건설한 보행자 전용 다리라는 안내문이 있다. 데크를 따라 걷는데 바로 앞에서 연두색 버드나무 가지가 흔들린다. 찬 바람을 이기고 이제 막 돋아난 연두를 보면 새삼 경이롭고 아름답다. 버드나무에 홀린 듯 걷다 보니 선유도 전망대 앞이다. 한강 건너 풍경이 선명하다. 망원정, 안산 더 멀리 북한산까지 뚜렷하다. 햇볕은 따스하고 공기까지 이렇게 맑다니, 산책하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다.
일제 강점기 한강에 둑을 쌓고 여의도 비행장으로 가는 도로를 놓기 위해 선유봉을 채석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해방 후에는 미군이 인천으로 가는 길을 만들기 위해 선유봉의 돌을 캤다. 1962년 지금의 양화대교를 건설하면서 겨우 남아 있던 선유봉은 사라지고 말았다. 1968년 시작한 한강 개발 때 선유봉 주변에 시멘트 옹벽을 치고, 강북 강변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선유봉 아래 모래를 퍼갔다. ‘신선이 놀았던’ 아름다운 선유봉이 섬이 되어버린 것이다.
선유도 산책은 섬 외곽을 도는 길과 섬 안쪽 길 중 어느 쪽으로 먼저 갈지 선택해야 한다. 외곽으로 도는 길은 바람의 언덕, 환경물놀이터, 온실, 선유정, 카페테리아 등으로 이어진다. 외곽 코스보다 낮은 지형에 만들어져 있는 안쪽 코스는 선유도 이야기, 녹색기둥의 정원, 수생식물원, 시간의 정원 같은 테마로 꾸며져 있다. 외곽을 먼저 둘러보고 안쪽 코스를 둘러볼 작정으로 ‘바람의 언덕’ 쪽으로 걸었다. 휴일 정오, 나들이 나온 가족들과 연인들, 사진을 찍으러 나온 사람들로 선유도는 붐볐다.
꽃이 핀 나무에 먼저 눈길이 갔다. 매화와 산수유가 단연 돋보인다. 양지바른 곳의 개나리도 한 무더기 피었다. 나뭇가지가 유난히 검고 짙어서 무슨 나무인가 다가가 매달린 표식을 보니 살구나무였다. 살구나무는 곧 꽃잎이 터질 듯 꽃망울이 부풀어 있다. 그 뿐인가 발 아래엔 민들레와 제비꽃이 낮게 피어 있다.
주차장이 내려다보이는 특이한 구조의 관리사무소 건물을 보면 선유도의 역사를 다시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선유봉이 사라진 선유도에 정수장이 지어진 것이 1978년이다. 늘어난 서울시민들의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선유정수장은 남양주시에 큰 규모의 강북정수장이 만들어진 2000년까지 사용되었다. 기존 시설을 최대로 이용한 친환경 공원, 선유도 공원으로 재탄생한 것이 2002년이다. 아름다웠던 선유봉이 돌과 모래 채취장으로 변하고 섬이 되었다가 정수장으로 그리고 재생의 과정을 거쳐 공원으로 탄생한 이야기에는 암울한 역사와 우리의 바람이 함께 담겨 있다.
선유도를 돌아보면서 과거에 송수펌프실, 변전소, 약품저장탱크, 침전실, 여과지 등으로 사용되었던 시설들이 수질정화원, 놀이마당, 원형극장, 환경교실, 편의시설 등으로 변신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약품저장 탱크를 타고 올라간 담쟁이, 콘크리트 기둥을 감싸고 있는 줄사철을 보면서 폐허를 딛고 다시 변신하려는 선유도의 몸부림을 엿볼 수 있었다.
이미 곁에 와 있었던 봄을 선유도에 와서 확인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잠깐 의자에 앉으니 따스했다. 사람들이 봄을 기다리는 것은 단지 겨울이 추웠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봄에는 햇볕 아래 앉아도 그늘에 앉아도 좋다. 적당히 따스하고, 적당히 시원하다. 이렇게 좋은 봄은 머무는 게 아니라 흘러간다고 했던가.
강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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