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복의 타박타박 지구촌] 가장 높은 곳의 호수 ‘티티카카’에 서다
UPI뉴스
| 2019-07-26 20:27:18
우리는 일상에 지쳤을 때 여행을 꿈꾸곤 한다. 그냥 떨치고 나서면 다 괜찮아질 것 같아서다. 그러나 세상 일이 마음 먹었다고 다 할 수 있던가.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를 만들어 여러 곳을 다녔다. 쉽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그마한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여행지에 대한 기억을 펼쳐놓으려 한다. 새삼스런 설렘에 나 자신 다시 길 위로 나설지도 모르겠다.
현대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페루의 마추픽추는 어쨌든 사람의 손길이 닿은 곳이다. 이제 우리는 그런 불가사의에 못지않은, 자연이 온전히 그대로 만들어낸 또 다른 경이로움과 만나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담수호, 바로 해발 3800m에 자리한 티티카카 호수다. 히말라야산맥에는 6000m가 넘는 곳에 호수가 있다고 하지만 이곳은 대형 상선이 다닐 수 있는 교통로가 되기도 하고, 사람이 사는 섬도 여럿 있어 우리의 일상에 훨씬 가까이 와 있는 친숙한 자연 그 자체라고 하겠다.
잉카 창시자의 전설 전해지는 신성한 곳
안데스 산맥 중앙, 알티플라노 고원에 있는 티티카카 호수는 서쪽의 페루와 동쪽에 있는 볼리비아의 국경을 이루고 있다. 페루 쪽에는 최남단 도시 푸노(Puno)가 있고, 볼리비아 쪽에는 코파카바나(Copacabana)가 있다. 얘기가 잠시 벗어나지만 볼리비아는 19세기 말 칠레와 벌인 전쟁에서 패한 뒤 바닷가 영토를 잃고 내륙국이 되기 전까지 이 호수에 해군기지를 가지고 있었다. 티티카카 호수는 전체 면적 8150㎢에 평균 수심은 107m다. 페루가 60%, 볼리비아가 40%를 차지하고 있다. 호수의 건너편은 보이지 않을 만큼 넓어 바다같이 보이는데, 최대 길이 190km, 최대 폭은 64km에 이른다. 얼마나 넓은지 굳이 따지자면 대략 제주도의 4배 정도로 보면 된다. 호수는 주변 다섯 개 강물과 빗물, 빙하가 녹은 물이 흘러들어 채워진다.
‘티티카카’라는 말은 ‘티티’는 퓨마, ‘카카’는 바위를 가리키므로 ‘퓨마의 바위’라는 뜻이다. 호수는 잉카 시대 때부터 신성한 곳으로 숭배되어 왔다. 잉카의 창시자인 제1대 왕 만코 카팍(Manco Cápac)이 태양의 섬에서 태양신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기 때문이다. 호수에 있는 섬에서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송어(Trucha)가 많이 잡혀 이곳의 대표 요리로 유명하다. 푸노 역시 고산도시다. 쿠스코와 마추픽추를 들르는 동안 고산병으로 고생했던 사람들의 고통은 계속된다. 거리 곳곳에 약국이 눈에 많이 띄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듯했다. 도심은 아르마스 광장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대성당도 있으나 그다지 크지 않고 거리도 화려한 편은 아니다. 식사와 함께 민속공연을 펼치는 극장식 식당에는 관광객이 그런대로 많이 몰린다. 티티카카 호수로 데려다줄 배는 이곳 선착장에서 출발한다.
호수에 있는 여러 섬 중에서 갈대로 만든 우로스섬과 타킬레섬을 하루에 둘러본다. 배가 움직이자 호수를 뒤덮은 하늘이 갑자기 눈앞으로 달려든다. 정말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아 움찔 놀랐다. 한편으로 고개를 들면 하늘에 펼쳐진 구름이 머리 바로 위에 있어 손을 뻗으면 만져질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조금은 답답한 느낌도 든다. 왠지 하늘이 내리누르는 듯하면서 배를 끌고 어딘가로 억지로 데려가는 것 같다. 물살도 버티려는 듯 한결 둔하게 느껴진다. 멀리 보이는 호수 주변 높은 산들의 위세에 질린 듯 사방은 의외로 조용하다. 보통 배가 달리면 엔진 소리가 거칠게 들리는데, 낮은 기압 탓인지 소리도 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새들이 날지 않는다. 까마득한 호수 한가운데 잠시 쉬어갈 부표 같은 작은 땅도 없다. 힘들어 날지 못하는 것일까. 끼룩거리는 소리가 없어 조용했던가 싶다. 다만 하늘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리듯 춤추는 구름의 변화무쌍한 움직임은 왠지 낯설어 더욱 매혹적이다. 흔들리는 뱃전에서 하늘을 머리에 이고 수평선 너머 알지 못할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묘한 느낌에 마음도 잠시 설렌다.
우로스…갈대로 엮어서 만든 ‘떠 있는 섬’
우로스섬(Isla de los Uros)은 흔히 ‘떠 있는 섬’이라고 부른다. 이곳에서 자라는 ‘토토라(totora)’라는 갈대를 겹쳐 쌓아 만든 크고 작은 섬이 40~60개 모여 있다. 탄탄한 땅이 아니기에 처음 섬에 내려 발을 디뎌 보니 바닥이 물컹거려 마치 짚을 밟고 다니는 것 같다. 자칫 섬이 가라앉지나 않을지 잠깐 걱정도 했지만 갈대를 수백 겹 겹쳐 만들었기 때문에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 우로스족인 주민들은 갈대로 집과 배도 만들고, 갈대 순은 먹기도 한다. 집은 갈대의 뿌리 부분을 크게 잘라 먼저 물 위에 띄우고 그 위에 갈대 줄기를 번갈아 덮어서 만든다. 물에 빠진 부분의 갈대는 썩기 때문에 계속 갈아줘야 하는데, 우기에는 일주일에 한 번, 건기에는 한 달에 한 번씩 갈대를 새로 덮어준다고 한다.
관광객을 태운 배가 들어가자 섬 주민들이 전통 의상을 차려입고 손님을 맞으러 나온다. 대표자가 나서 갈대를 잘라 섬을 만드는 과정도 보여주고 엮어서 집을 만드는 방법도 알려준다. 섬마다 가족들이 함께 사는데, 다 함께 나서 민속공연을 펼친다. 전통 악기를 연주하고 민요를 부르는데 당연히 알아들을 수는 없다. 게다가 정해진 순서에 따라 표정 없는 얼굴로 앵무새처럼 입만 달싹이는 모습은 바깥사람의 눈에는 왠지 모르게 가여운 느낌도 들었다. 공연을 마친 뒤에는 갈대를 엮어서 만든 전통 양식의 배를 타라고 권하기도 하고, 직접 만든 공예품을 내놓기도 한다. 관광 수입이 살림살이에 큰 보탬이 되니 최선을 다해 방문객을 즐겁게 해주려고 애쓰고 뭔가 사주기를 간곡하게 부탁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상업화했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과정이다. 그러나 그들도 푸노에 따로 집이 있어 관광객이 떠나면 육지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런 얘기를 듣다 보면 흔들리는 섬처럼 그들의 삶도 쉽게 안정을 찾긴 어려울 것 같다. 뛰어난 풍광에 빼앗겼던 마음이 조금은 무람해지기도 했다.
타킬레섬…직물 공예는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
우로스섬을 떠나 타킬레섬(Isla de Taquile)까지는 배로 한 시간 이상 더 달려야 한다. 하늘은 더욱 낮아지는 듯하고 그 색깔은 더욱 짙어진다. 더욱이 타킬레섬은 배에서 내려 30분 정도 비탈을 올라가야 한다. 호수보다 더 높은 곳, 해발 4000m에 오르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숨도 조금 더 가빠져 걸음은 더욱 늦춰진다. 여기선 모든 것을 천천히 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여유를 가질 수밖에 없다. 호수를 내려다보자 잔잔한 수면에 내려앉은 하늘의 색깔이 비쳐 물빛은 더욱 오묘하다. 주변의 산에 거의 겹쳐질 듯 좁은 틈만 남기고 펼쳐진 구름은 더욱 낮아져 마치 수면으로 들어갈 듯 묵직한 무게감마저 느끼게 한다.
이곳에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를 거쳐 20세기까지 교도소가 있었다고 한다. 언덕을 오르니 널찍한 중앙 광장이 나오고 다시 그 뒤로 집들이 모여 있다. 중앙 광장에 서 있는 세계 주요 도시까지의 거리와 방향을 나타낸 표지판이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타킬레섬의 특산품은 직물 공예인데, 여자는 실을 잣고, 남자는 뜨개질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05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특히 남자는 모자의 무늬와 색깔로 기혼과 미혼을 구별한다고 한다. 결혼하지 않은 총각은 아래쪽 빨간색 무늬에 위쪽은 흰색인 모자를 쓰고, 유부남은 전체가 빨간색 무늬로 된 것을 쓴다. 남자가 결혼할 때가 되면 자기가 직접 빨간 무늬의 모자를 뜨개질해서 준비해야 한단다. 이곳에서 미리 주문한 점심 식사를 하게 되는데, 주로 송어와 닭 요리를 먹게 된다.
대도시 리마에서 출발해 세계적인 수수께끼라고 하는 나스카라인의 거대 그림들을 보고, 사막의 모래언덕을 거쳐 잉카의 영광을 간직한 쿠스코와 마추픽추를 살펴본 뒤 마침내 티티카카 호수에 이르렀다. 이처럼 페루가 선사한 다양한 자연환경은 여행의 즐거움을 제대로 누릴 수 있게 해줌으로써 다음 여정에 망설임 없이 나서게 했다.
글·사진 남인복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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