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비웠으니, 비었으니, 다시 새로 채울 수 있을는지요"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5-01-17 16:45:05
악공 손녀 내세워 연암의 섬세한 내면 생생히 살려내
기록 훼손하지 않고 시적 문체로 공들여 그려낸 서사
"불의하고 무도한 시대 향해 던지는 차돌맹이 같은 삶"
'어느 날부턴가 '웅장하고도 고독한' 한 사내가 홀로그램처럼 눈앞에서, 머릿속에서 형상화되어 갔다. 연모의 정이 깊어진 것일 텐데, 결국 사심을 이기지 못했다.'
'변명'의 작가 정길연이 연암 박지원(1737~1805)을 붙들고 장편소설 '연암, 별사'(파람북)를 펴내면서 서두에 붙인 말이다. 여인을 등장시켜 연암의 섬세한 내면을 살려내는 연애소설이자, 그의 글과 행적을 통해 작금의 '무도한 시대'를 돌아보게 하는 8년 걸린 노작이다.
연암은 말년에 4년 2개월 함양 안의 현감으로 지냈다. 이곳에서 민초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행정의 양상과 관리들을 대하는 방식, 고독한 내면 들을 최대한 기록을 살려 연암의 입으로 말하게 한다. 이와 함께 이은용이라는 여성을 등장시켜 이들이 번갈아 건네는 이야기로 펼쳐진다.
일찍이 남편을 잃고 악사 할아버지와 사는 은용이 연암을 연모하는 화자로 등장한다. 은용의 이야기는 연암이라는 구체적인 대상을 넘어서서 '인연'과 '사랑'과 '운명'으로 사유를 확장하는 시적이고 정교한 문장들로 꾸려진다. 연암을 일인칭으로 내세운 각 장에는 그의 시, 소설, 산문, 편지와 척독(尺牘), 부친의 행장을 기록한 아들의 책에서 인용하거나 재구성한 내용을 유려하게 녹여낸다.
-이 소설을 착안하게 된 배경은?
"연암을 워낙 좋아하고 사모한다. 흔히들 주목하는 연암의 웅장한 면 말고 그의 내면적인 우울과 고독, 통찰력을 주목했다. 그는 직관이 빠르고 통찰력이 뛰어나 진퇴에 있어서 허물을 적게 하는 방식을 잘 안다. 허물을 적게 하는 결벽증 같은 거, 세인들의 평판보다 자신의 어떤 행보가 자기 스스로에게 욕되지 않게 하려는 굉장히 까다로운 그 점을 좋아했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가?
"연암의 활달한 기질이나 유머와 해학, 기행 같은 것에 포커스를 맞춰 소비하는 방식에 화가 났다. 내 나름대로 이해한 연암을 한 번 써보자는 게 시작이었고, 그 구상의 단초는 연암 아들의 아버지 행장 '과정록'에 나오는 딱 한 줄에서 시작됐다. 연암이 안의현에 내려가서 그곳 음악 수준이 너무 낮아 장악원 출신 악공 하나를 불러다 맡겼다는 내용이다. 거기에서 악공의 손녀로 은용이라는 여인이 만들어졌고, 이 여인의 시각으로 연암을 바라보는 내용을 전개했다."
은용이라는 여성의 이야기는 작가가 지어낸 허구이지만, 연암이 말하는 대목들은 될 수 있는 한 픽션은 최대한 자제하고 기록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로 전개했다. 그는 "역사소설이라는 것이 상상의 범위를 너무 넓혀 왜곡하는 것이 싫어서 그동안 현대 배경 소설만 써온 측면이 있다"면서 "연암이라는 사람의 향기 같은 것, 이 사람이 지니고 있는 잘 드러나지 않는 개성을 통해 실학적인 사고뿐 아니라 휴머니스트로서의 기질을 밝혀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벗을 잃고는 소리 내어 울어도 허물이 되지 않았다. 큰누이를 잃었을 때도 두뭇개에서 상여 싣고 떠나는 배를 전송하며 통곡했으되, 아무도 그릇되다 날 나무라지 않았다. 아내를 잃고는 더운 울음 삼킬 뿐 차마 드러내지 못했다. 봉두난발 가슴 치며 하늘을 원망하지 못했다. 그렇게 배웠다. 시詩 스무여 수 지어 홀로 애도하고, 산방 앞 흐르는 물에 세초洗草했다. 슬픔은 남은 자의 몫인즉, 남은 자의 슬픔을 뉘에게 보이랴.'
연암이 안의 현감 발령을 받고 한양을 떠나기 전날 밤 한 대목 '전야'(前夜)의 초두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가 안의에서 스치듯 만나는, '별서(別墅)의 아이'.
'봄눈인가요, 봄비인가요. 빗방울에 눈 알갱이 섞여 오락가락하더니 오후 들어 가랑비로 변하였습니다. 끊일 듯 끊일 듯 이어지는 애곡哀哭처럼 빗발은 가늘고도 검질겨요. 골골마다 안개 피어올라 멀리 검은 산들이 사라지는군요. 동구의 솟대 사라지고, 누대와 대숲이 사라지는군요. 젖은 바람 한두 키질에 늦틔운 매화 꽃잎 일시에 몸 날려 흙탕물로 뛰어듭니다. 꽃들의 자결이에요. 빈 뜰에 어둠이 내려앉고, 마을 집집에 별빛 같은 불빛이 돋습니다.'
-시적인 문체와 정교한 문장의 울림이 큰 강점이다. 조각하듯 문장 세공에 공을 들인 배경은?
"이게 원래 제 문체인데 현대물, 그중에서도 건조한 이야기를 쓸 때는 오히려 방해가 된 측면이 있다. 다루는 이야기는 건조한데 이상하게 시인 기질은 없으면서 시적인 문체로 나아가니 늘 부딪쳐서 고민을 많이했다. 이번 소설은 남성적인 기질은 연암에 빙의했고, 은용은 제 문체를 활용하기가 좋았다. 제 몸에 맞는 옷을 찾아 입은 셈이다."
-연암도 연암이지만, 조선 시대 과부라는 열악한 위상의 은용이라는 여성의 정서에 몰입되는 측면이 있다.
"연암이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는 그 시대 환경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대체로 아내를 대하는 방식이나 상처한 후 재가하지 않고 첩도 들이지 않았으며 홀로 밥도 잘 짓고 고추장도 직접 담글 정도로, 그 시대 보통 남성들이 지니고 있는 패턴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인다. 연암은 서얼이나 하층민들과의 교유도 개의치 않았는데 머슴이나 노복들에게도 글재주가 보이면 가르치고 '함양열녀박씨전'을 통해 수절을 강요하는 그 시대 분위기를 질타하기도 했다. 은용이라는 여인을 통해 그 환경을 드러내면서 연암의 한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다."
정길연은 "이 불의하고 무도한 시대에 한 권의 책이 차돌처럼 단단한 종주먹일 수는 없을진대, 그럼에도 민망함과 부끄러움을 무릅쓴다"면서 "금권(金權)을 극히 미워한 연암의 정신이 이 혼란한 세태에 통렬한 지표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앞머리 작가의 말에 밝혔다. 소설에는 창고에 쌓인 쌀을 돈으로 바꾸어 합법적으로 착복하라는 주변의 권유를 뿌리치는 일화도 흥미롭게 녹아 있다.
소설은 연암이 안의를 떠나면서 은용의 상징 같은 매화 화분을 돌려주면서 부디 '자중자애' 하라는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은용과 연암의 교차되는 긴 서사 끝에는 떠난 연암을 생각하던 은용이 문득 말라 비틀어진 매화 화분을 뒤집어 놓고 '초분' 같은 그것을 태우는, 다비를 치르는 것 같은 장면으로 마지막을 향해 나아간다. 연암이 매화 화분과 함께 보낸 '무연재(無緣齋)', 인연 없는 집이라는 당호(堂號)는 그녀를 지켜주기를 바라는 사천왕상 같은 연암의 선물이지만, 모든 인연에 버거워하고 상처받았던 연암의 마음이 투사된 결과이기도 하다.
'대개 생각은 다 망상이요, 인연은 다 악연이다. 생각하는 데서 인연이 맺어지고, 인연이 맺어지면 사귀게 되고, 사귀면 친해지고, 친하면 정이 붙고, 정이 붙으면 마침내 이것이 원업冤業이 되는 것이다. 죽음이 참혹하고 공교로우면 평생 서로 즐거워한 것은 얼마 되지 않은데 마침내 재앙과 사망으로 인해 혹독한 고통이 뼈를 찔러댄다. 이것이 어찌 망상과 악연이 합쳐져서 원업이 된 게 아니겠는가.' _애사哀辭
-연암이나 여인 둘 다 인연의 부질없음, 상처에 대해 공감한다. '무연'이 중요한 모티브로 작동하는 배경은?
"연암의 글에 모든 인연은 망상이요 원업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무릇 생각하는데서 인연이 맺어지고 인연이 맺어지면 정이 들고 정이 들면 그리움과 슬픔에 갇히게 되니 모든 인연은 다 악연이고 말고'라고 쓴 배경이다. 제가 사랑 이야기를 이렇게 쓰는구나 싶었다. '인연 없는 집'이라는 당호를 가진 여인의 마지막을 잘 풀어주고 싶었다. '인연이란 맺는 데만 있지 않고 잘 풀어야 잘 맺는 것'이라고 쓴 이유다."
정길연은 "연암과 미지의 여인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말을 통해 스치고 얽히고 엇갈리는데, 연암의 서사는 문헌 자료로 밝혀진 사실관계를 가능한 한 훼손하지 않도록 노력했다"면서 "그것이 불후의 존재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600쪽 가까운 분량이 여운 깊은 서사시처럼 읽힌다.
은용은 연암이 공작새가 되어 미지의 세상으로 날아간 연후 그가 주고 간 서책과 편지를 물 속에 펼치고, 연암이 죽은 친구를 보내면서 산방 앞 흐르는 물에 세초(洗草)했던 것처럼 그를 보내는 의식을 치른다. 속울음 같은 여인의 말.
'음양의 인연만 인연이겠는지요. 옷깃 스친 인연이 이 강모래처럼 쌓이고 쌓여 저마다 환희와 슬픔과 회한을 빚었겠지요. 그러니 무연재, 인연 없는 집이란 세상에서 가장 큰 거짓말이 아닐는지요. 저 글씨들처럼 이전의 저를 지우려 합니다. 비웠으니, 비었으니, 다시금 새로이 채우며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지요. 그리하려고요. 모쪼록 그리하려고요.'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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