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의 눈으로 본 '의료 민영화'

장기현

| 2018-12-25 10:48:45

전우용 교수 "영리병원 허가는 의료 민영화의 초석 될 것"
"의료 민영화는 의료 양극화 넘어 의료 신분제를 만들 것"
"달리기 시작한 열차 속도 빨라지기 전에 멈추게 만들어야"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지난 5일 기자회견을 열고 녹지국제병원의 '조건부 개설'을 허가한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정치권은 물론, 의료계와 시민단체에서도 찬성과 반대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 21일 오후 경기 성남시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전우용 교수가 UPI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역사학자 전우용(56) 교수는 지난 6일 페이스북에 원 지사에 대해 '영리병원 설립이 의료 민영화의 초석을 놓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어리석고, 알면서도 저질렀다면 교활한 것'이라며 정면으로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지난 21일 그가 교수로 있는 경기 성남시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만났다.

 

전 교수는 이 글에서 '의료 민영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이를 보면, 영리병원이 설립되면 내국인 환자를 받지 않는 건 위헌이라는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다. 이어 영리병원만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건강보험료를 강제 징수하는 건 위헌이라는 소송도 승소한다.

이렇게 건강보험 의무가입제가 폐지되면 고액 납부자들은 민영보험으로 이동하고, 국민건강보험은 서민과 영세민의 보험으로 전락한다. 민영 보험사들은 메이저 병원들과 특약을 맺고 유능한 인력을 싹쓸이한다. 이렇게 메이저 병원과 공공 의료기관은 점점 격차가 벌어지고, 결국 '의료 신분제 사회'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근대사를 다룬 '우리 역사는 깊다' 시리즈와 한국 의료사를 담은 '현대인의 탄생' 등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SNS로 소통하는 지식인이다.

- 역사학자로서 의료 민영화 문제를 거론한 이유는?

'한국 의료사'를 연구하면서 의료 민영화를 추진하던 사람들을 옆에서 지켜본 적이 있다. 이때 현대 의료의 핵심인 '의료전달체계'로서의 국민건강보험과 이를 둘러싼 한국 의료계의 문제점을 알게 됐다. 현행 국민건강보험이 어떻게 탄생했고 정착했으며, 누가 불만이 있는지에 대한 개략적인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의료 민영화의 첫 단계가 '영리병원 설립'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제주도의 결정을 보고 관련 글을 올리게 됐다.

- 국민건강보험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현행 제도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크게 재벌, 부자, 일부 의사 이렇게 세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재벌은 고령화 시대에 '유병장수'하는 노인들을 돈벌이 대상으로 삼지 못하게 막는 이 제도에 불만이 많다. 특히 '병원-제약-보험'의 라인을 구축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내려는 재벌기업에 국민건강보험은 큰 걸림돌이다. 부자들은 건강보험료에 부유세 성격이 있고, 보험료를 내는 만큼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해 불만을 가진다. 마지막으로 일부 의사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 의사들이 시장 원리에 따른 적절한 보수를 받지 못한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 의료 민영화의 역사를 간단히 짚는다면?

본격적인 의료 민영화는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됐다. 인천 청라지구에 존스홉킨스병원 분원을 들여오려는 시도가 있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외국 병원 유치를 유도하기 위해 건강보험에서 예외가 되는 특수병원을 만들려고 한 것이다. 제주도도 이전에 싼얼병원을 영리병원으로 유치하기 위해 노력한 바 있다. 이들은 결과적으로 무산됐지만, 이번에 원희룡 지사가 허가한 제1호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을 시작으로 의료 민영화의 기반이 다져졌다.

- 원희룡 지사가 허가한 제1호 영리병원 '녹지국제병원'이 상징하는 바는?

일단 영리병원이라는 용어 자체에 문제가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특수병원'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 원희룡 지사는 내국인의 이용을 금지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 의사들에게는 어떤 환자도 치료를 거부하면 안 된다는, 법률보다 상위에 존재하는 원칙이 있다. 만약에 내국인이 응급으로 병원에 들어온 상황을 가정했을 때, 다른 병원으로 보낼 수 없고 그리해서도 안 된다. 이렇게 내국인 허용, 건강보험 의무가입제·당연지정제 폐지 등 의료 민영화로 가는 빗장이 하나씩 풀리게 될 것이다.

 

▲ "원희룡 지사는 내국인의 이용을 금지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 [문재원 기자]

- 의료 민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생명의 질이 빈부격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재벌, 부자, 일부 의사들이 의료서비스로 큰돈을 버는 사이, 서민들은 아파도 병원에 못 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것이 '의료 양극화'다. 또한 민간보험은 가입자의 수입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보험과 마찬가지로 원하는 서비스와 과거 병력 여부 등으로 가입을 제한할 수 있다. 실제로 돈이 없고 아픈 사람들은 보험 가입조차 힘들어진다. 이를 바탕으로 민간보험에 가입된 사람들은 특권층 행세를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의료 신분제' 사회로 나아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 현행 건강보험이 사회주의적인 제도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많이 가진 자에게서 많이 걷고, 적게 가진 자에게서 적게 걷어 평등하게 나눠준다는 점에서 사회주의적 요소가 포함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회주의적'이라는 이유로 국민 대다수를 위한 제도가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사회주의적이든 자본주의적이든, 국민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는가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 제주도가 공론조사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어떻게 보는가?

무슨 권리로 도민의 결정을 뒤집는다는 말인가. 대다수가 반대하는데도 이렇게 추진하는 것은 원래 하려고 했다고 밖에 이해할 수 없고, 공론조사위원회가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87년 항쟁으로 힘들게 얻은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근본적으로 깨뜨려버린 것이다. 현행 의료보험제도는 단순히 선물이 아니라 민주화의 산물이다. 이번 제주도의 결정은 반민주적이라고 본다.

- 그래서 의료민영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져 이후의 과정들을 막기가 힘들어졌다. 방법은 지금 당장 취소하는 것뿐이다. 녹지국제병원에 1000억원을 주고서라도 제주도가 허가한 사항들을 되돌려야 한다. 쉬운 결정은 아니겠지만, 앞으로 전개될 단계 중에서는 가장 성공 가능성이 높은 시기가 지금이라고 본다. 열차는 달리기 시작했다. 속도가 빨라지기 전에 멈추게 만들어야 한다.

 

KPI뉴스 / 장기현 기자 jk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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