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문명의 신비로운 세계 만나다

UPI뉴스

| 2019-05-01 08:00:13

[남인복의 타박타박 지구촌]
멕시코 오아하카, 몬테 알반, 팔렌케, 칸쿤

우리는 일상에 지쳤을 때 여행을 꿈꾸곤 한다. 그냥 떨치고 나서면 다 괜찮아질 것 같아서다. 그러나 세상 일이 마음 먹었다고 다 할 수 있던가.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를 만들어 여러 곳을 다녔다. 쉽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그마한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여행지에 대한 기억을 펼쳐놓으려 한다. 새삼스런 설렘에 나 자신 다시 길 위로 나설지도 모르겠다.


▲ 오아하카의 몬테 알반 전경 [셔터스톡]


멕시코는 마치 ‘늪’ 같다. 거대 도시 멕시코시티를 뒤로하면 점차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물론 국토가 그만큼 넓기 때문이겠지만 장시간 밤 버스를 타고 다음날 내리면 전혀 다른 풍광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다음에는 또 어떤 모습이 맞아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이제 방향을 남쪽으로 잡아보자. 아스테카 문명을 벗어난 지역엔 한때 번성했던 또 다른 문명의 유적지가 신비로운 과거로 우리를 이끌고 간다. 오아하카, 몬테 알반, 팔렌케 등을 거쳐 유카탄반도로 나아가면 마침내 칸쿤에서 카리브해를 만난다.

오아하카…원주민 대통령 후아레스의 고향


태평양 연안에 있는 오악사카 주의 중심도시 오아하카(Oaxaca)는 1529년 에스파냐 인들이 건설한 곳이다. 종교 건축물인 산토도밍고, 산프란시스코 성당 등과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 저택 등 식민지 시대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어 당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특히 16세기 후반에 세워진 산토도밍고 성당은 높이 35m 종루 2개와 바로크 양식의 파사드가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으며 황금으로 꾸며진 호화로운 내부는 누구나 감탄하게끔 만든다. 


또한 이곳은 멕시코 정치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유일한 원주민 대통령으로 멕시코에서 가장 존경받는 정치인인 베니토 후아레스(Benito Juárez, 1806~1872)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그는 개혁정책을 이끌어 오늘날 멕시코의 초석을 닦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데, 도시의 정식 명칭도 그의 이름을 따서 오아하카 데 후아레스(Oaxaca de Juárez)로 부르고 있다. 


이곳에서는 시장을 많이 찾는다. 후아레스 시장에서는 메뚜기, 선인장, 식용 벌레와 각종 고추와 치즈 등 모든 식재료를 구할 수 있다. 특히 공처럼 돌돌 말아둔 케소(Queso, 치즈)는 짜지 않아서 간식으로 많이 사먹는데, 그냥 선반에 두부처럼 올려놓은 것을 보면 선뜻 손이 나가진 않는다. 또 혁명기념일을 딴 11월 20일 시장은 고기를 직접 구워주는 곳이다. 원하는 만큼 고기와 야채를 따로 산 뒤에 가져다주면 불에 구워서 옥수수가루로 부친 토르티야와 함께 내준다. 주민들과 함께 얽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또 하나 유명한 것은 전통 술 메스칼(Mezcal)이다. 흔히 멕시코를 대표하는 술로 테킬라를 들지만 메스칼도 용설란의 일종인 피냐(Piña)로 만든 것으로 그에 못지않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이곳이 대표 산지여서 직접 양조장을 찾아가 맛보는 기회도 가질 수 있다.

몬테 알반…사포텍 족의 피라미드 유적지


도시에서 남서쪽으로 10km쯤 떨어져 있는 몬테 알반(Monte Albán)은 사포텍(Zapotec) 족이 세운 피라미드 유적지로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곳의 피라미드들은 테오티우아칸과 중앙고원의 아스테카 문명, 남쪽의 마야 문명 영향을 받은 것으로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이전에 올멕(Olmec) 문화를 배경으로 사포텍(Zapotec) 족이 주로 제례를 거행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유적으로는 공놀이 경기장(Juego de Pelota), 중앙광장, 신전들, 무덤들과 상형문자를 새긴 비문 등이 있는데 이 지역만의 독창적인 양식을 간직하고 있다. 기원전 800년 무렵부터 1500년 이상의 기간 동안 여러 단계로 나누어 축조되었는데, 넓은 공간에 지어진 테오티우아칸과는 달리 지형의 특성을 살려서 계단식 관람석과 산책로 등을 새롭게 만들어냈다. 서기 800년 무렵 믹스텍(Mixtec) 족의 위협을 받으면서 도시는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했고, 1500년대 에스파냐 인들이 들어오기 전까지 믹스텍 족이 주로 왕족들의 매장지로 사용했다. 지금까지 100개 이상의 분묘가 발견된 사실에서 알 수 있다.

팔렌케…마야 문명 황금기 때 세운 신전 도시


이제 마야 문명의 유적지인 팔렌케(Palenque)로 발길을 옮겨보자. 마야 문명은 중앙아메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서기 300년부터 900년까지를 황금기로 꼽는데, 남아 있는 유적은 대부분 이 시기의 것들이다.


팔렌케는 대표적인 신전 도시로 습도가 높은 정글 지대의 한가운데 있다. 7세기 말 파칼 왕 때 전성기를 이루다가 820년 무렵 갑자기 사라져 버렸는데, 상형문자가 새겨진 비문이 있는 신전, 십자가 신전, 태양의 신전 등이 마야의 비밀을 간직한 채 자리하고 있다. 오랫동안 정글에 파묻혀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다가 1949년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해 1960년대부터 관광객을 맞고 있다.


▲ 팔렌케 유적 중 왕이 거주한 궁전


대표적인 볼거리는 왕이 살았던 거대한 피라미드 궁전으로 가로 92m, 세로 73m의 크기에 정원도 4개가 있다. 또 부근에 있는 4층 석탑은 꼭대기 층에서 천문 관측용 시설이 발견되어 천문대로 추정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유적을 보고 난 뒤 숲속을 산책하고 계곡에서 물놀이도 할 수 있어 더위를 피할 수 있다. 미솔-아(Misol-Ha)라는 폭포는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떨어지는 물줄기가 서늘한 기운을 전해주고 폭포 뒤로 걷는 길도 나쁘지 않다. 또 다른 곳에 있는 아구아 아술(Agua Azul, 파란 물)은 산속 계곡을 흐르는 물이 드물게 옥빛을 띠고 있어 한 번쯤 발을 담가보고 싶게끔 유혹한다. 


▲ 미솔-아 폭포.


잠시 거쳐 가는 산크리스토발 데 라스카사스는 치아파스 주 산악지대 계곡 아래 있는 도시로 지역이 그런 만큼 광산 개발 사업이 활발하다. 현재 멕시코에서 원주민 비율이 가장 높고 경제적으로는 가난한 편이라고 한다. 그러나 식민지 시절에 만든 계획 도시답게 유럽식의 좁은 자갈길, 스페인식 지붕들, 꽃들을 내놓은 발코니, 가톨릭 성당 등이 곳곳에 예쁘게 자리하고 있어 한나절 거닐면서 이국의 정취를 느끼기에 좋다. 특히 과달루페 성당이 있는 계단길이 유명한데, 양옆으로 가게와 음식점이 많고 알록달록하게 색칠한 집들이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또한 인근에 있는 차물라(Chamula) 마을에서는 마야 고유 신앙과 가톨릭을 융합시킨 종교 의식을 볼 수 있다. 산후안 성당으로 들어서자 살아 있는 닭을 안고 와서 촛불을 켜고 마치 무당이 굿을 하듯 의식을 치르고 있는데 사진 촬영을 철저히 금하고 있어 휴대폰을 꺼내 들기만 해도 당장 사람이 달려와 험상궂은 표정을 짓는다.

칸쿤…카리브해 마주한 완벽한 복합 휴양지


▲ 칸쿤 백사장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마야어로 뱀을 뜻하는 칸쿤(Cancún)은 산호섬으로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적한 어촌이었다. 그 뒤 멕시코 정부의 개발 계획에 따라 깨끗한 해변에 초현대식 호텔이 들어서고, 식당과 쇼핑시설도 갖춰 완벽한 복합 휴양지로 탈바꿈했다. 스노클링, 다이빙 등 수상스포츠를 할 수 있고 아쿠아리움 등 테마파크도 있어 취향대로 즐길 수 있다.


그래도 바다 자체가 최고의 자랑이다. 흰모래가 반짝이는 해변에서 에메랄드빛 바닷물을 거슬러 파도가 하얀 물거품을 드러내며 다가오는 카리브해를 마주하고 거닐다 보면 그야말로 모든 시름이 사라지고 마음은 한껏 여유로워진다. 최근 들어 미국인들이 은퇴한 뒤 가장 살고 싶은 곳으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한국에서도 신혼여행지로 많이 찾고 있다는 사실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이다. 어두워진 뒤에는 거리에 즐비한 식당과 술집들을 찾으면 되고, 세계 최대 디스코 클럽 코코봉고는 활기 넘치는 젊은이들이 들르는 곳이다. 

 
멕시코의 곳곳을 다니는 동안 낯선 이름을 많이 듣게 된다. 언제 어떻게 생겼고 어떤 뜻을 갖고 있는지 충분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어느 시인의 말처럼 우리가 그 이름을 부름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닐까. 이제 사라진 문명들에 조금은 친밀해진 기분이 들기에….

 

글·사진 남인복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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