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행복 찾아 절대자에 다가가다
UPI뉴스
| 2019-04-24 10:30:07
멕시코 테오티우아칸, 과달루페 성지
우리는 일상에 지쳤을 때 여행을 꿈꾸곤 한다. 그냥 떨치고 나서면 다 괜찮아질 것 같아서다. 그러나 세상 일이 마음 먹었다고 다 할 수 있던가.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를 만들어 여러 곳을 다녔다. 쉽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그마한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여행지에 대한 기억을 펼쳐놓으려 한다. 새삼스런 설렘에 나 자신 다시 길 위로 나설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강하다. 지구상에 등장한 모든 개체 중에서 문물과 제도를 만들고 자체 문화를 번성시키며 가장 강력한 존재로 세상을 이끌어 가고 있지 않은가. 다른 한편으로 인간은 약하다. 항상 절대적 존재를 찾아 기대려 한다. 현재의 재난이나 불행에 마음 졸이며, 더 많은 것을 원하고, 더 나은 내일을 맞을 수 있도록 축복을 바라는 약한 집단이기도 하다. 멕시코시티 인근에 있는 두 곳, 테오티우아칸(Teotiuacan)과 과달루페 성지(La Villa de Guadalupe)에서 과연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나름의 잣대로 견주어 보자.
테오티우아칸…최대 피라미드 유적지
멕시코시티에서 40km 떨어진 외곽에 있는 테오티우아칸은 아스테카 문명 이전에 원주민들이 세운 곳으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피라미드가 발견된 유적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신대륙 발견 당시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번성했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지난 1987년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전설에 따르면 이곳은 신들의 도시이자 인간이 신이 되는 장소로 전해진다. 흔히 이집트에만 있는 것으로 아는 피라미드가 아메리카 대륙 한가운데 대규모로 의연하게 서 있어 사람들의 선입견을 바꿔 놓고 있다.
테오티우아칸의 피라미드들은 기원전 300년 무렵부터 지어지기 시작했다. 기원전 150년 무렵에는 태양의 피라미드가 세워졌고, 기원전 500년 무렵에는 달의 피라미드가 건설되었다고 한다. 뒷날 이 유적을 발견한 아즈텍족들은 그 규모에 놀라 신들의 도시라는 전설을 믿었고, 태양과 달의 신화를 탄생시킨 무대로 여겼다.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은 대부분 국립 인류학박물관의 테오티우아칸 실에 옮겨져 있다.
유적지는 정방형으로 퍼져 있는데 한눈에도 상당한 크기임을 알 수 있다. 가운데 동쪽에 자리한 태양의 피라미드(Piramide del Sol)는 세계에서 셋째로 큰 것으로 밑변 가로 225m, 세로 222m, 높이 65m로 측정된다. 이름처럼 태양신에게 바쳐진 신전으로 250여 개 계단을 오르면 정상에 선다. 최근에는 발견 당시와 달리 비의 신 '틀락록(Tlaloc)'을 섬겼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정상에서는 전체 유적지뿐 아니라 주변의 광활한 땅을 조망할 수 있어 답답했던 마음이 저절로 트이는 듯한 개운함을 느낄 수 있다. 한편으론 해가 그대로 내리비치는데도 몸을 감출 곳이 전혀 없어 잠깐만 있어도 햇볕의 따가움이 전해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태양의 정기를 받아들이려 다양한 자세를 취하거나 사진 찍기에 바쁘다. 특히 춘분과 추분 때는 태양이 피라미드 위로 떠올라 찾는 사람이 더 많아진다. 하지만 계단이 가파른 편이어서 오르내릴 때 무척 불안하다. 언제 어디서나 하늘에 가까이 다가가는 일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나 보다.
달의 피라미드에서 주요 의례 진행
다음으로 달의 피라미드(Piramide de la Luna)는 태양의 피라미드보다 크기는 작지만, 북쪽에 자리하고 있어 전체 유적지를 관장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정상에 서면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눈을 다른 방향으로 돌릴 필요 없이 앞을 바라보면 전체 유적지가 시야에 들어온다.
밑변 가로 150m, 세로 30m, 높이 42m로 태양의 피라미드보다 낮지만 훼손된 계단이 많아서 오르내릴 때 더욱 신경이 쓰인다. 혹시 고소공포증이라도 있으면 쉽게 발이 옮겨지지 않는다. 테오티우아칸에서 지내는 제사 등 주요 의례가 모두 이곳에서 진행되었다고 한다. 직접 쳐다볼 수 없는 태양과 달리 이울었다가 다시 차오르는 달을 보면서 인간의 소망을 빌면 실현되리라는 느낌은 훨씬 더 강하지 않았을까. 한편 남쪽에 있는 케찰코아틀 신전(Templo de Quetzalcoatl)에서 달의 피라미드까지 유적지의 중심을 길게 잇고 있는 길은 '죽은 자의 길(La Calle de los Muertos)'이다. 길이 4km, 폭 45m에 이르렀으나 현재는 2.5km만 복원되었다. 당시에는 인신 공양 풍습이 있어 이 길을 통해 신에게 바칠 사람을 데려갔다고 하는 이야기에는 평평한 길인데도 발걸음이 잠시 무거워진다. 그러나 길옆에 왕의 분묘들이 줄지어 있었기에 붙인 이름이라는 말도 전한다.
그밖에도 케찰코아틀 신전은 사제와 관리들이 살았던 곳으로 가운데 공터에는 작은 피라미드가 2개 있다. 이곳은 아스텍 인들이 하늘과 창조의 신 '케찰코아틀(깃털달린 뱀)'을 모신 곳이다. 또 케찰파파로틀 궁전(Palacio de Quetzalpapalotl)은 달의 피라미드에서 의례를 관장하던 신이나 왕족이 거주하던 곳으로 안뜰 기둥에는 나비와 새 무늬가 새겨진 프레스코화와 부조가 남아 있어 눈길을 끈다. 유적 박물관(Museo de Sitio)에는 유물 일부가 전시돼 관심 있는 사람들은 들르기도 한다.
신비로운 성모화 모신 과달루페 성지
멕시코시티 북쪽에 있는 과달루페 성지(La Villa de Guadalupe)는 성모마리아가 1531년 12월 9일 아침에 발현한 곳으로 알려졌다. 당시 테페약(Tepeyac) 언덕에서 농부 후안 디에고(나중에 성인으로 선포됨)는 성모마리아를 만나 이곳에 성당을 지으라는 계시를 듣고 대주교에게 전했다. 그러나 대주교는 믿지 않았고, 디에고는 그 뒤 12월 12일 네 번째로 나타난 성모에게 믿을 수 있는 표징을 달라고 청했다. 성모는 그에 응답해 한겨울 장미꽃과 함께 디에고의 망토인 틸마(Tilma)에 자신의 형상이 새겨지도록 했다.
그리하여 성당은 1531년부터 1709년까지 지어졌고, 원주민들이 가톨릭으로 점차 개종하면서 찾는 사람도 늘고 규모도 커져 가톨릭 성지 가운데 현재 바티칸에 이어 둘째로 크다. 그 뒤 처음에 지은 성당이 지반이 약해 기울기 시작하자 1976년 새로운 대성당을 완공했다. 거대한 원형의 새 성당은 1만 명이 함께 앉아 미사를 볼 수 있는데, 해마다 성모발현일인 12월 12일에는 전국 각지에서 신자들이 모인다.
이곳의 성모화는 디에고의 외투에 나타났던 모습을 보존한 것이다. 그림에 있는 성모마리아는 키 145cm에 메스티소 인처럼 황갈색 피부와 검은 머리카락을 갖고 있다. 전체 모습은 햇빛 같은 금빛 광선에 둘러싸여 있으며, 악마를 상징하는 검은 초생달을 밟고 서 있는데, 그 밑에 한 어린 천사가 성모의 옷자락을 떠받들고 있다.
이 성모화는 현대 과학으로 풀 수 없는 신비를 지닌 그림으로 유명하다. 1979년 미국 과학자가 적외선을 이용해 조사한 뒤 "붓질의 흔적도 없고, 직물에 화학적 처리도 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사람의 손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성모의 눈을 2500배 확대했을 때 디에고가 틸마를 펼쳤던 순간과 어린이가 있는 몇몇 인디언 가족이 보였다고 한다. 당시 성모 눈앞에 나타난 형상이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5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섬유조직과 형태, 색감에는 변화가 없다고 한다. 믿기 어려운 사실이다.
그래서 기적을 바라는 것일까. 이곳에는 성모화를 직접 보려는 사람들로 넘친다. 가톨릭 신자든 일반인이든 먼저 테페약 언덕에 올라 디에고 성인이 성모마리아를 만난 곳을 찾아 경배를 하고, 부속 성당들을 둘러본 뒤 대성당 안에 있는 그림으로 향한다. 성모화 앞에는 무빙워크가 설치되어 있어 오래 머물 수 없다. 사람들이 몰려 그림을 보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누구든 서 있는 채로 지나가야 한다. 한 번으로 만족하지 못한 사람들은 몇 번이고 돌아서 다시 무빙워크에 오를 수밖에 없다. 성당 밖으로 나오니 돌을 갓 지난 아기들이 모두 하얀색 옷을 입고 부모의 품에 안겨 세례를 받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성모마리아가 직접 발현했던 성당이기에 이곳에서 세례를 받는 데 더 큰 의미를 두는 것이리라.
테오티우아칸의 피라미드와 과달루페 대성당. 이 둘은 절대적 존재에 다가가려는 인간이 힘을 모아 이룬 특별한 장소다. 결국 인간은 개체로서는 약하지만 힘을 합쳤을 땐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낳는 강한 존재가 된다고 할까.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다시 확인하는 여정이었다.
글·사진 남인복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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