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플랫폼 데이터센터…'혐오시설' 시선에 곳곳서 진통
김윤경 IT전문기자
yoon@kpinews.kr | 2025-12-12 10:26:30
전자파·열섬 우려 팽배해지며 주민 반발 고조
후진적 법·규제와 정책은 실효성 논란 야기
투기 자본된 전기…전력 브로커까지 기승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주민들은 지난 9월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아파트 단지 옆에 데이터센터(DC)가 생기고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근처로 초고압 전력선이 깔린다는 거였다.
더 놀라운 사실은 건축허가가 이미 3년 전에 승인돼 곧 공사가 시작된다는 점. 서둘러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관할 구청에 거세게 항의했지만 별 성과는 없었다. 주민 1332명의 반대서명이 전달됐음에도 영등포구청은 지난달 10일 데이터센터 건립을 위한 착공 신고까지 처리했다.
같은 구 양평동도 사정은 비슷하다. 주거지와 불과 1미터 떨어진 곳에 데이터센터 건립이 추진되면서 주민들의 거센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갈등은 막대한 전력 사용에서 시작한다. 데이터센터는 24시간 365일 가동되는 시설이라 막대한 양의 전기를 소모한다. 주민들은 초고압 전력선에서 나오는 전자파와 서버 발열로 인한 열섬현상(주변보다 기온이 높아지는 현상) 등 데이터센터로 인한 피해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역 전기요금 상승과 집값 하락 우려까지 더해지며 일부 지역에서는 데이터센터를 '혐오시설'로 분류하기도 한다.
주민 반발이 거센 문래동 데이터센터만 해도 수전용량이 최대 80MW(메가와트)에 이른다. 80MW는 영등포구 전체 가구 수보다 많은 약 24만 가구의 사용량으로 알려져 있다. 문래동 이동규 주민대책위원장은 "시행사의 기업 규모로 볼 때 한전과 어떤 기준으로 이토록 엄청난 양의 전기를 계약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주민들로선 정전, 화재, 전기료 인상, 전자파, 소음, 진동 등 숱한 폐해가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물론 사업자는 입장이 다르다. 문래동 데이터센터 건립을 추진 중인 유림티에스 측은 "원칙에 맞게 계획에 따라 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2021년 한전과 전기사용 계약을 시작으로 2022년 부지 매입, 같은 해 건축허가 획득, 지난달 착공신고 처리까지 법에 정한 요건에 맞춰 제반 준비작업을 진행해 왔는데 공사를 앞두고 주민 반발에 부딪혀 당혹스럽다"고 토로했다.
유림티에스는 변압기 부품 기업으로 출발했지만 전력 사업이 유망하다고 보고 8년 전부터 태양광 전력 발전과 데이터센터 건립 등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관할 지자체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주민 반발은 격해지는데 사업자가 진행한 절차와 내용에 별반 문제가 없고 건축을 불허할 법적 근거도 딱히 없어서다. 당장 '주거 지역과의 인접성'도 법적으론 문제가 없다. 주택가 바로 옆이지만 데이터센터가 들어설 곳은 모두 준공업지역으로 분류돼 있다.
영등포구청 건축과 정윤모 과장은 "주민들의 입장에는 공감하지만 현행법으로는 달리 방도가 없어 지난 10월 서울시와 국토교통부에 건축법 개정을 건의했다"고 밝혔다.
개정을 요구한 부분은 건축법 제11조 4항. '건축위원회 심의를 거쳐 건축허가를 하지 않을 수 있는' 대상에 '데이터센터'를 추가하자는 내용이다. 법이 개정되면 관할 지자체는 허가 여부에 대한 재량권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 역시 어쩔 수 없는 조치일 뿐 당장의 해법은 되지 못한다. 법 개정이 되기는 할지조차 알 수 없는 일이다.
법·규제 후진적…규제 높이니 '전력 브로커' 등장
전세계적 AI(인공지능) 열풍을 타고 데이터센터에 대한 관심은 집중되지만 우리의 법 적용은 후진적이다.
용도(건축), 전력사용(에너지), 통신시설(ICT), 재난대비(안전)에 따라 각기 다른 법을 적용하고 주관 부처도 국토교통부와 산업통상부, 기후에너지환경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행정안전부까지 광범위하다. 건축허가와 착공 신고는 지방자치단체, 전력사용은 한전, 전력계통영향은 기후에너지환경부, 통신시설 신고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관 부서에서 이뤄진다.
국회에도 다수 특별법이 상정됐지만 아직 처리된 게 없다.
'AI 데이터센터 특별법'의 경우 더불어민주당 정동영 의원(현 통일부장관·인공지능데이터센터 진흥 및 기반 조성에 관한 법률안)과 한민수 의원(인공지능데이터센터 진흥에 관한 특별법안), 황정아 의원(인공지능데이터센터 기반 구축 및 산업 육성에 관한 법률안)이 각각 법안을 발의했는데 가장 최근 안인 한 의원안을 기준으로 통합 작업이 진행 중이다.
'디지털 재난장애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안'은 방송통신발전 기본법과 정보통신망법, 전기통신사업법으로 분산된 데이터센터 안전관리 조항을 통합하는 법안으로 21기 국회에서 회기 만료로 폐기됐다. 과기정통부에서 22기 국회에 재상정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법이 표류하는 가운데 기업들은 뚜렷한 법 규정이 없고 주민 반발을 해결할 절차와 방법도 없다고 지적한다. 해법으로 제시된 정부 정책마저 실효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데이터센터의 수도권 집중 완화 목적으로 제정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과 '전력계통영향평가'는 도마에 올라 있다. 데이터센터 주 사용자층인 클라우드 기업 다수가 서울과 수도권에 위치해 있어 지방 시설을 꺼리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부터 시범운영 중인 전력계통영향평가도 사실상 전력 인허가로 작용하며 전력 확보를 더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심의위원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전력 공급이 거부될 수 있지만 항변할 법적 근거조차 없다는 게 문제다.
수도권 지역에 대한 규제가 심해지고 전력 확보마저 어려워지자 일부 지역에선 법의 허점을 파고 든 일명 '전력 브로커들'까지 등장했다. 전력계통영향평가 시행 전에 미리 전력을 확보한 사업자의 지분을 인수하거나 이미 건립된 데이터센터를 매입한 후 대기업에 웃돈을 받고 되파는 방식이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수도권에 대한 입지 및 전력 규제가 강화되면서 신축 데이터센터에 대한 프리미엄은 높아지고 있다"면서 "전력과 부지를 웃돈을 받고 되파는 투기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데이터센터 건립을 둘러싼 갈등은 비단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과 일본에서도 진통이 만만치 않다. 데이터센터가 수도권 주택가로 인접하면서 갈등은 증폭되는 양상이다.
주민 반발이 거세 데이터센터 건설이 중단되는 사례도 속출한다. 카카오 시흥DC와 부천 AI DC, NHN 김해DC 등은 건립 계획을 아예 취소했다.
그럼에도 데이터센터 시장은 확대일로다.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국내 데이터센터의 수는 165개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시장 규모는 6조2200억 원. 오는 2028년에는 10조1900억 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기대하는 지방 분산 효과는 미미하다. 전체 데이터센터 중 75%가 서울과 수도권에 밀집해 있다. 전남과 경남은 각각 1.1% 비중에 그친다.
지금의 추세가 이어진다면 수도권 데이터센터 건립을 둘러싼 주민과 사업자간 갈등은 앞으로도 심화할 것이 자명하다. 당국의 신속하고 합리적인 조치가 절실한 이유다.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 김수현 선임연구원은 "AI 산업이 발전하려면 고성능 서버를 설치하고 운용할 데이터센터의 확충도 중요하다"면서 "데이터센터를 꼭 필요한 기반 시설로 이해하는 노력과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KPI뉴스 / 김윤경 IT전문기자 yoon@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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