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힘방지법' 16일 시행…직장 갑질 이젠 OUT!

강혜영

| 2019-07-03 11:04:00

처벌조항 없고 비정규직·5인미만 사업장 적용 안된다는 지적 나와
전문가 "괴롭힘 기준 명확히 하고 법적 사각지대 보완해야"


#1 “진짜 죽여버린다” “손톱 뽑아버린다” 직장인 1년 차 A 씨가 업무와 관련해 실수하면 돌아오는 말들이었다. 선임은 자주 다른 사원과 비교하며 A 씨를 무시했다. “쟤는 하는데 왜 너는 못 해”라면서 비아냥거리기 일쑤였다. 인격 모독도 예사였다. 동료 직원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한숨을 쉬면서 “하! 얘 진짜 답 없다...”고 면박을 주고, 회식 자리에선 술을 따르지 않는다며 구박도 했다.

#2 “능력이 모자라는 거니? 실력이 없는 거니? 성실하지 않은 거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냐” “오냐오냐 커서 뭘 너무 모른다” “이럴 거면 그만둬라” “네가 하는 일 솔직히 별거 아니지 않냐” 문화예술업계에서 3년간 근무한 B 씨(여)는 대표로부터 이 같은 언사를 반복적으로 들어야 했다. 그가 처리한 업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화를 내고 폭언까지 일삼았다. 대표는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생기면, 월급을 삭감하겠다”는 협박도, “남자직원들 고생하는데 넌 뭐하냐”라는 성차별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B 씨는 “무조건 마음에 안 들면 나가라는 식이지 ‘갑질’이라는 인식 자체도 없고, 개선할 의지는 아예 없는 것 같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직장 갑질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직장 갑질에 대한 상담, 자문을 제공하는 민간 공익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달 17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년(2017년 11월~2018년 10월)간 오픈 카톡, 이메일, 밴드를 통해 들어온 갑질 제보는 총 2만2810건에 달한다. 하루 평균 62건꼴이다.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무시나 협박, 외모, 학력, 출신 지역 비하 등은 예사다. 욕설이나 폭행을 동반한 갑질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직장갑질119’가 같은 날 발표한 사례집엔 상사로부터 욕설을 듣고 폭행을 당했다는 제보가 차고 넘친다. 부하직원에게 물컵을 던지거나 무릎을 꿇려 뺨을 때렸던 ‘갑’들의 패악질은 뉴스 속에만 있지 않았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실력 발휘할까

직장 내 ‘괴롭힘방지법(이하 방지법)’이 이달 16일부터 시행된다. 전환의 계기가 될 거란 예측이 나온다. 전과 달리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명확한 규율 근거가 마련되면 법의 테두리 안에서 관리할 수 있을 거란 기대다.

방지법에 따르면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관련 행위를 할 수 없게 된다. 방지법에는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했을 경우 신고할 수 있고, 관련 사항을 조사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피해자에 대한 보호책도 있다. 방지법에 따르면 조사 기간에 사용자는 피해자 혹은 피해를 주장하는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근무 장소의 변경이나 유급휴가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또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와 피해근로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선 안 된다.

아울러 가해자에 대한 징계도 규정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이 확인되면 바로 행위자를 징계하고 근무 장소 변경 등 필요한 조처를 해야 한다. 이 경우 사용자는 징계 등의 조치 전에 피해근로자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 셔터스톡


하지만 전문가들은 관련 법이 직장 내 갑질을 원천적으로 근절하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홍보담당자는 “갑질이 불법이라는 인식을 만든다는 점에서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번 개정안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처벌 조항이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처벌 조항’이 없다는 것이다. 가해자 징계에 대한 언급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징계는 ‘국가에 의한 법적인 처벌’과 거리가 멀다. 방지법에 규정된 사항은 갑질을 한 주체인 가해자를 사용자가 징계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강제 조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피해자가 큰맘을 먹고 신고를 해도 가해자 처벌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 측도 이런 현실을 인정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문제가 되는 사업장에 대해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를 하게 하고, 이행이 되지 않으면 감독을 나가는 절차를 생각 중이다”라면서도 “그 외에는 제재 수단이 없는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는 “강제성을 띤 제재를 할 만한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근로감독관이 법을 뛰어넘는 권한을 행사할 순 없다”고 말했다.

이번 법안을 발의한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측은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된 내용이 처음으로 법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국회 논의 과정에서도 ‘괴롭힘’에 대한 정의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있었다”면서 “시행 초기 단계에서 우선은 괴롭힘 금지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다 보니 처벌에 관한 내용은 빠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시 처벌에 대한 부분만 들어갔고, 가해자 처벌 관련 법안은 다시 개정안을 낸 상태”라고 덧붙였다.

법을 시행해도 실효성이 있겠느냐는 우려가 벌써 나온다. 홍보 업계에서 일하는 직장인 C 씨는 “처벌 규정이 없으면 도대체 무슨 소용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걱정했다.


사용자의 갑질도 사용자에게 신고하라?


방지법에는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자에게 신고하라고 명시돼 있다. 조치하는 주체도 1차적으로는 사용자다. 그런데 만약 나를 괴롭힌 가해자가 사용자라면? 가해자의 악행을 가해자에게 신고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다.

▲ 2018년 7월 14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동조합 대한항공 직원연대지부와 아시아나항공노동조합의 공동주관으로 열린 '함께 가자 갑질 격파 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갑질 총수 퇴진 촉구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근로자 상당수는 “이런 구조에서는 제대로 된 신고나 조치가 이루어질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D 씨는 “사측에 신고를 한다는 게 걱정된다”며 “실제로 갑질을 폭로했다가 회사 내에서 오히려 불이익을 입고 2차 피해를 받는 경우가 많고 ‘트러블 메이커’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는 소리도 많이 들어서 신고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일반기업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E 씨도 “갑질은 보통 선배로부터 당하는데, 회사에 통보할 경우 회사가 어떤 해결을 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만약 적절한 조치로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추후 ‘팀워크’ 등 인사고과 평가에서 불이익이 있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노동부 측은 “그 부분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며 “피해자가 사용자에게 신고하기 어려운 경우 지방노동청에 신고할 수 있고 노동청은 다시 해당 사안을 조사하는 방안을 생각 중”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처벌 등 직접적인 규율 수단은 없다고 했다.


비정규직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나


법을 개정해도 일부 비정규직 노동자는 관련 법의 보호를 받기 어려울 거라는 우려도 나온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홍보담당자는 “계약직, 파견직 등은 괜찮을지 모르나 5인 미만 사업장이나 용역, 사내 하청, 사내 특수고용직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는 논란이 있다”고 말했다. 원칙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노동자로 간주 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노동부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그것도 법의 한계”라고 인정하며 “근로기준법상 한 사업장 내 사용자가 달라 법리적으로는 방지법을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가령, 원청 사업자가 원청에 소속된 근로자를 징계해도 하청에 소속된 근로자에 대해서는 징계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 재구성한 독자 제공 갑질 대화 [강혜영 기자]

이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 수단은 미미한 상태다. 노동부는 “이 부분은 우리에게 제재 수단이 없다”며 현실적 한계를 인정했다. 노동부는 ‘근로감독’을 통해 이러한 병폐가 생기지 않게끔 사용자를 압박하는 방안을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사업장 감독을 통해 해당 사업장이 노동관계법을 위반한 사실이 있는지 조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심각할 경우 훨씬 강도가 센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간접적인 제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괴롭힘 사건 자체에 대한 규율은 어려우나 우회적인 압박을 하겠다는 것이다.


기준 명확히 하고 법적 사각지대 보완해야

다만 직장 내 괴롭힘방지법의 한계로 지적된 사안들은 장기적인 보완이 가능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직장 내 괴롭힘의 범위가 워낙 넓어 시행과 동시에 제재 규정이나 벌칙 규정을 마련하면 혼란이 따를 수 있다고도 지적한다. 시행 초기 단계에서는 괴롭힘의 유형이나 실태를 파악하고 단계별로 처벌 대상을 명확히 한 뒤 관련 벌칙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직장 내 괴롭힘은 굉장히 광범위하다. 특히 정신적 고통이 어디까지인지가 명확하지 않다”면서 “내 행위가 처벌될 수 있다는 예측 가능성과 기준성이 있어야 하는데 처음 도입하다 보니 명확한 적용대상의 범위가 정립이 안 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직장 내 괴롭힘이 추상적이고 다양할 뿐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 간 법적 분쟁 가능성이 커 법원 판결이 불안정하게 내려질 수 있는데, 이러면 예상치 못한 혼란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며 “시간이 지나면 이 사례에 대해서 좀 더 명확하고 구체적인 사안이 만들어지면 그다음 단계로 벌칙을 부여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법적 사각지대에 놓인 비정규직과 5인 미만 사업장에 관해서는 법률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지순 교수는 “근로기준법 시행령에 4인 이하 근로자 사업장에 적용하는 법 규정 별표에는 4인 이하에도 적용하는 중요한 몇 가지가 있다”면서 “직장 갑질도 이 시행령에 포함해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비정규직의 경우에는 고객사의 파견근로자와 원청의 하청 근로자에 대한 근거법이 명확하지 않다”며 “파견근로자는 파견법에 고객을 사용자로 보는 조항에 괴롭힘 금지법 내용을 추가하고, 하청 근로자의 경우에는 산업안전보건법에 원청이 도급인의 책임까지 지도록 직장 내 괴롭힘의 범위와 처벌내용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사용자가 갑질의 주체일 경우 범죄인에게 신고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는 노조 등과 함께 전담 기구를 만든 것도 하나의 대안이라고 설명한다. 박 교수는 “대학이 인권센터를 두는 것처럼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도 근로자가 참가하는 인권센터 혹은 괴롭힘 방지 센터를 만들어 신고 접수와 조사 업무를 담당하는 기구를 만들 수 있다”면서 “필요하면 고용센터 등 정부 기관에서 창구를 설정해 신고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KPI뉴스 / 강혜영 이민재 기자 khy@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