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개나 소도 다 시를 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6-04-10 17:33:39

새 시집 '모든 흔들리는 눈망울 위에' 펴낸 김주대 시인
노모가 던지는 화두에 살을 붙인 시편들과 아버지 '장례'
다양한 사람들의 '짠한' 모습 발견, 비상계엄 충격 소묘
"글과 그림을 오가며 어떤 장면을 포착할지 항상 탐색"

언 살 수면을 찢어 늪은 // 새들의 비상구飛上口를 만들어 놓았다 // 출렁이는 상처를 밟고 새들이 힘차게 떠나간 뒤 // 늪은 심장에 울던 새들의 발소리 기억하며 // 겨우내 상처를 열어 두었다 // 고향을 떠난 우리 // 언제나 어머니 상처에 돌아갈 수 있을까 _ '겨울 우포'  

 

▲ 12년 만에 새 시집을 펴낸 김주대 시인. 그는 "간절하게 평생을 살았던 고향 사람들 / 광장에서 찬 바람을 맞으며 싸웠던 사람들 // 그들의 입을 빌어 어수룩한 시집을 내놓는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김주대 시인이 12년 만에 7번째 시집 '모든 흔들리는 눈망울 위에'(걷는 사람)를 펴냈다. 노모와 나눈 대화를 시로 받아 적고, 이 시대의 다양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소묘한 72편이 수록됐다.

요양원에서 나와 건강을 회복한 노모를 만나러 고향인 경북 상주에 자주 내려가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며 길어낸 시편들이 한 축을 형성한다. 어머니의 '출렁이는 상처'를 딛고 세상에 나아갔다가 그 출발점으로 다시 눈길을 돌리는 과정이 5부에 걸쳐 전개된다.

노모의 한마디 한마디는 아들에게 시로 꽂힌다. 세상을 오래 살아낸 이의 지혜와, 자식을 향한 본능적인 모성이 분출하는 언어를 시인의 감수성으로 받아 적은 시편들이다. 아들이 "개나 소나 시 쓴다고 시 쓰는 사람들을 비웃는 사람도 많다"고 말하자 엄마는 "개도 소도 시 쓴다 니가 시는 마음이라 캤잖나 엉?"이라고 답한다. 꽃도 시를 쓰느냐는 아들의 물음에 "발도 붙잡히 손도 붙잡히 움직거리지 못해 색깔 좋기 자라 흔들흔들 향기만 보낸다"고 엄마는 화답한다. 덧붙이는 엄마. "너도 흔들흔들 어데서 나한테 향기를 보내나 생각만 해도 니 냄새가 난다 이러키"

'인민군 여성동맹 위원장의 입'이나 '송이'처럼 어머니가 기억해낸 현대사의 아픔과 그리운 얼굴도 눈에 띈다. 어머니와는 다른 차원에서 아버지도 등장한다. 김 시인은 아버지 생전에 많이 다투었는데 나이가 드니까 자신이 싫어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 같다고 돌아본다. 어느 날 술 취해서 거울을 보니, 미간에 잡힌 주름이 정확히 아버지를 닮았더라고 했다. 아버지보다 더 오래 산 아들은 거울 속 아비를 보면서 씁쓸한 연민으로 반성문을 쓴다.

미간에 굵은 주름이 있고 / 목이 벌건 아버지는 / 늘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이었다가 죽었다 / 그 후로 나만 나이가 들어 / 아버지가 되었고 / 죽은 아버지 나이를 한참 지나 생각하니 / 아버지는 평생 지금의 나보다 어렸던 사람 / 그 나이에 뭘 안다고 가정을 이루어 / 자식을 걱정하고 고향을 그리며 살았을까 /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젊은 것 / 얼마나 힘들었을까 // 인생 더 산 선배로서 생각하니 / 죽은 아버지 / 그 어린것이 짠하다 _ '아버지 그 어린 것이'

그는 자신의 삶 자체가 아버지를 저승으로 보내는 과정인 것 같다고 했다. 아버지가 자신의 몸속에 살아 있으니, 그가 잘 살아내는 일이 아버지를 잘 보내드리는 장례 절차와 같다는 시적 깨달음이다. 그는 "눈가 주름에 흐르던 물기와 잠긴 목소리로 미안하다며 마지막 고개를 떨구던 아버지 나의 모든 표정은 아버지를 장사 지내는 절차다 무덤가 풀꽃처럼 일생은 많이 울고 가끔 웃으며 아버지를 영원히 살다 가는 장례식"('종의 기원')이라고 썼다.

 

상주 시외버스 터미널 여인들의 눈물 어린 서사를 비롯해, 시장판에서 하루 종일 왜가리처럼 앉아서 옷을 파는 상인, 붕어빵으로 이어지는 사람의 온기까지 세세한 사람들의 풍경이 시인의 시각에 포착돼 서술된다. 개인 서사를 넘어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라는 시대적 상흔을 정면으로 응시하기도 한다. '10시 25분' 연작은 그날 밤 각자의 일상에서 노동하던 시민들의 눈망울을 세밀하게 포착한다.

하루를 끌고 귀가하던 샐러리맨 처진 어깨 위에 10시 25분 늦은 저녁을 먹다 반주로 건배하던 일당벌이 동료 노동자의 술잔 위에 10시 25분 밤이라야 폐지를 많이 줍는다는 리어카 노인의 야윈 발목에 10시 25분 초겨울까지 피어 있던 담벼락 보랏빛 꽃잎 위에 야간 배송 마치고 계단에 쪼그려 앉아 컵라면으로 주린 배 채우던 택배 노동자 나무젓가락 위에 10시 25분// …//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_ '10시 25분'

현대판 '문인화'를 그리면서 시 쓰기를 병행하는 김 시인은 이번 시집 출간을 계기로 지난 3년 동안 그려온 작품 168점을 전시해 성황을 이루었다. 사대부들이 곁가지 취미로 '매란국죽'을 다른 이들의 글과 함께 그려넣었다면, 김주대는 2014년부터 자신의 글과 그림으로 시대를 드러내는 작품들을 생산해 많은 이들의 호응을 받아왔다. 시인과 나눈 대화.

-시를 먼저 쓴 뒤 그림을 그린다는 원칙은 여전히 유효한가.
"시인의 자존심을 앞세웠던 그 원칙은 이제 조금 흔들린다. 자연만이 풍경이 아니라 뉴스의 한 장면도 풍경이라면, 그림이 먼저인 것도 같다. 내란 극복 과정에서 시위에 나갔다가 감동적인 장면들을 많이 포착했다. 그것을 먼저 그리고 관련된 글을 나중에 쓴 것도 있다. 결국 어떤 것이 우선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장면을 포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림으로 같이 함으로써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장면을 가릴 수 있는 안목이 생긴 것 같다."

-새 시집이 나오는 데 12년이나 걸렸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생계에는 도움이 됐는데, 마음에 품었던 어떤 감정들이 그림으로 해소돼버리면서 시를 쓸 기운이 사라지는 단점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미뤄진 건데, 무슨 목적을 가지고 쓴 것보다 힘을 빼고 그냥 중얼거리듯 들은 이야기나 마음에 있는 것을 쓴 시편들이 괜찮은 것 같다. 이번 시집은 민중시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련된 현대적 감각의 시도 아니다. 삶의 솔직한 면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삶과 죽음을 들여다보는, 좀 나쁘게 말하면 늙은 시각, 좋게 말하자면 좀 더 깊어진 그런 시집이다."

하늘에도 인사하고 산에 들에도 인사한다 그러만 그것들이 끄덕끄덕 인사를 받아 준다 하늘이 인사를 받아 준다고? 구름이 일고 바람이 불잖나 산은 어떻게 인사를 받아 주는데? 물소리를 내려 주지 들판은? 누렇게 곡식 익는 그기 인사다 어데 갔다 올 적엔 마을에도 인사를 하만 마을도 끄덕끄덕 인사를 받아 준다 마을이? 마을이 보낸 길이 실굴실굴 기어 와서 어여 드가자고 앞 장서잖나 _ '인사'

-어머니와 '공동창작'한 듯한 시편들이 많다.
"시골에 자주 가서 어머니와 같이 얘기를 하다보면, 초등학교 4학년까지밖에 못 다닌 어머니가 약간 도인 같은 말씀을 하실 때가 많다. 살면서 겪은 것을 투병하시면서 엑기스처럼 내놓으신 것 같다. 물론 아들이 많은 살을 붙여서 완성시키기는 하지만, 어머니가 툭 던지는 한마디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붕어빵 잘 팔리는 추운 동네 붕어빵 포장마차 앞에 보행기 할머니가 모이 찾는 비둘기처럼 머뭇거린다 붕어빵을 먹던 젊은 여자가 붕어빵 드릴까요 물어도 대답 없이 포장마차 주변을 맴돌기만 하는 보행기 할머니 젊은 여자가 자신의 붕어빵 두 개를 봉투에 넣어 드리자 천천히 오래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는 보행기 가방에 넣어 떠난다 아는 할머니냐고 붕어빵 장수가 물으니 젊은 여자는 모르는 할머니라고 답하며 천 원을 내민다 붕어빵 장수는 그냥 두라고 하고는 붕어빵 두 개를 더 내놓는다 _ '오병이어'

 

▲ 김주대 시인은 "글과 그림, 어느 것이 먼저인지 이제는 조금 흔들린다"면서 "어떤 장면을 포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다양한 사람들이 시에 등장한다.
"지금은 따로 여행을 안 하고 늘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사람과 풍경을 스케치한다.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에는 나쁜 면도 있지만, 깊이 보면 다 괜찮은 면이 어떤 사람에게서든 발견되는 것 같다. 이제는 그런 모습을 써내고 싶다. 대부분의 삶에서는 심지어 그냥 걸어가는 사람의 걸음에도 뭔가 짠한 진실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한다. 술집에서든, 붕어빵 파는 곳에서든, 시장이나 아니면 고관대작의 모임에서조차 좀 짠한 장면을 일부러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약간만 마음 먹으면 다 보인다."

-어떤 시들을 더 깊이 퍼올리고 싶은가.
"사람들 속 짠한 모습을 계속 찾아내고 싶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졌다고 해도 그 이면에는 인간적인 모습이 남아 있다. 그림은 좀 단순화시키고 싶은 욕망이 있다. 지금은 예쁘게 여러 선과 색을 많이 넣고 있지만, 앞으로는 색을 덜고 한두 가지 선으로만 단순하게 표현하고 싶다. 인간들 삶 속의 짠한 진실을 그대로 끌고 가되, 그림이 단순해지고 싶은 욕망처럼 시도 짧게 쓰고 싶다."

이번 시집에도 여운이 깊은 짧은 시편들이 더러 눈에 띈다. 곧 다가올 계절, 오래된 골목에 치렁거릴 기다림.

골목에 귀를 걸어 놓았다 / 귓바퀴에 당신 발소리 얹힐 때 / 그 무게로만 떨어지려고 _ '능소화' 전문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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