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불임금 201만원 달랬더니…근무기록 없애버린 대기업
유충현 기자
babybug@kpinews.kr | 2026-03-06 17:51:16
근로감독관 앞에서 당당하게 '근무기록 허위작성' 진술
고정OT 오남용은 위법…정부도 중점과제로 개선 추진
서울 마곡역 인근에 위치한 초대형 복합시설 원그로브. 고 모씨(48세)는 이곳에서 보안매니저로 일하다가 지난해 9월 퇴직했다. 그의 퇴직사유란에는 '임금체불'이라고 적혀 있다. 못 받은 돈은 201만 원이다. 코오롱LSI(현재는 코오롱글로벌에 흡수합병)가 계약보다 많은 초과근무를 시키고도 지급하지 않은 수당을 합한 금액이다.
고 씨는 퇴직 후 약 2개월 뒤 고용노동부 서울남부지청에 도움을 요청했다. 정식 조사가 시작되고 근로감독관이 배정됐다. 그는 회사의 잘못이 명백하다고 생각했고, 못 받은 돈을 금방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후 4개월이 넘도록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다. 회사 측은 완강하게 부인했다. 근로감독관은 고 씨에게 '잘 협의해서 마무리하라'고만 했다. "적당히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하라는 얘기로 들렸다"고 고 씨는 말했다.
고 씨의 근로계약은 '고정OT(Overtime)'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매달 일정한 시간 만큼의 연장근로수당을 정해 두고 기본급과 별도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고 씨의 계약서에는 월 22시간분의 연장수당이 명시돼 있었다. 매달 22시간까지는 월급에 포함된 것으로 보고, 이를 넘긴 달에는 초과된 만큼 추가 수당을 받는 구조다.
고 씨는 보안 업무 외에도 협력업체 인력 운영을 기획하고 원청에 보고서를 올리는 업무를 했다. 밤 10시를 넘긴 보고가 일상이었다. 고 씨가 카카오톡 업무 대화방에 업무 관련 보고를 하면 현장소장을 포함한 상급자들도 확인하고 응답을 남겼다. 새벽 1시 19분에 원청 관계자들에게 인력운영계획서를 보고하기도 했다.
고 씨는 카카오톡 기록을 토대로 월별 연장근로 시간을 직접 계산해 근로감독관에게 제출했고, 회사에서는 근무기록부를 제시하며 맞섰다. 회사 측 자료는 엉망이었다.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업무를 보고한 날에도 회사 측 제출 자료에는 '미출근'으로 돼 있었다. 반대로 고 씨가 일찍 퇴근했던 날은 연장근로로 기록돼 있었다.
근로감독관이 기록의 신빙성을 따져 물었다. 그러자 회사 소속 현장소장은 "본사에 올릴 때 이 사람 급여를 어느 수준 이상 줄 수 없어서 변경했다"고 답했다. 본사가 정한 '급여 상한선'을 맞추기 위해 실제 근무기록을 위조했다는 진술을, 근로감독관 앞에서 당당하게 했다. 그래도 회사에 불이익은 없었다고 고 씨는 전했다.
고 씨와 근로감독관은 코오롱LSI에 고 씨의 출퇴근 카드 기록을 요청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기록이 삭제됐다고 했다. 기록 복구를 요청했지만 회사는 거절했다. 사실 회사 측은 실제 근무기록 자체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고정OT 계약을 근거로 연장근로수당을 이미 충분히 지급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회사 측의 주장은 이렇다. 8개월간 매월 22시간분의 연장수당을 지급했으니, 총액으로 보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어떤 달에 22시간을 초과해 일했더라도, 다른 달에 22시간을 채 쓰지 않은 여분으로 상계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주장이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노무법인이로운 이주영 노무사는 "근로기준법은 임금을 매월 정해진 날짜에 전액 지급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며 "초과수당은 발생한 해당 월의 지급일에 줘야 하고, 임의로 다른 달로 이월하거나 상계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난 2013년 고용노동부도 같은 행정해석을 내린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노동관리센터 소속 노무사 역시 이 같은 연장근로수당 지급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임금은 '정기적'으로, '전액'이 지급돼야 한다"며 "사용자가 임의로 8개월치를 합산하는 것은 체불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고정OT 방식의 근로계약을 둘러싼 분쟁은 고 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비·보안업무, 청소 등 하청이 많은 직무에서 흔히 발생한다. 2024년 국정감사에서는 게임사의 고정OT 운용 방식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주된 화두로 다뤄지기도 했다.
고용노동부가 2023년 포괄임금·고정OT 오남용 신고센터를 운영한 결과 총 695건이 신고됐고, 근로감독 결과 9321명에 대한 법 위반과 57억 원의 임금체불이 적발되기도 했다. 별도의 신고센터를 마련해 운영하고 있는 것 자체가 분쟁이 빈번하다는 점을 방증한다. 작년에는 충남 보령지청 한 곳에서 진행한 사업장 감독에서 포괄임금제·고정OT 오남용으로 발생한 체불금 1억2048만 원을 적발해 내기도 했다.
정부도 고정OT 오남용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공짜 야근'의 원인으로 지목돼 온 포괄임금제 금지를 근로기준법에 명문화하겠다고 공약했다. 고용노동부도 지난해 12월 근로시간 감축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포괄임금 오남용 방지'를 핵심 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 고 씨가 받지 못한 돈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비슷한 처지의 수많은 근로자들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인정받을 권리이기도 한 셈이다.
고 씨는 아직 201만 원을 받지 못했다. 코오롱글로벌 측은 KPI뉴스에 "고 씨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며 지급의무를 부인했다. 고 씨는 "코오롱이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재차 울분을 토했다. 사건을 담당하던 근로감독관은 지난달 인사이동으로 교체됐다. 고 씨는 이 사실조차 통보받지 못했다. "저는 또 반년을 기다려야 되는 건가요?" 고 씨가 묻는 말에 새 감독관은 답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KPI뉴스 / 유충현 기자 babybug@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