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세계와 유리된 美 경제…한은, 연준에서 고개 돌려야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 2024-04-24 17:31:07
경기 부진한 나라들은 금리 낮춰…ECB 6월 인하 후 추가 인하 '유력'
"한국은행은 정부로부터 독립적이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로부터는 그렇지 않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지난 2022년 8월 금융통화위원회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꺼낸 말이다.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다.
연준의 결정은 한국의 채권·주식시장, 원·달러 환율 등에 큰 영향을 끼치니 한은도 독립된 판단을 내리긴 어렵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슬슬 연준보다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의 움직임에 더 신경을 써야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연준의 긴축 기조는 여전히 견고해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올 3월 금리인하를 기대했던 시장을 무색케 하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16일(현지시간) "최근 지표는 견조한 성장과 강한 노동시장 및 물가상승률이 목표치(2%)에 근접하기까지 추가적인 진전의 부족을 보여준다"며 "높은 물가상승률이 지속된다면 긴축적인 통화정책 수준을 필요한 만큼 길게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유로존 등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의 행보는 다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최근 미 C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큰 충격이 없다면 제한적 통화정책을 완화할 시기로 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만간 기준금리를 인하할 수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ECB는 이번 달까지 기준금리를 4.50%로 5회 연속 동결했다. 시장은 라가르드 총재의 발언을 6월에 인하하겠다는 사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다른 ECB 주요 인사들도 거듭 6월 금리인하를 시사했다. 또 유로존 20개국 중앙은행 총재들 거의 모두 6월 이후에도 추가 인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기준금리(5.25%)를 다섯 차례 연속 동결한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도 6월엔 인하할 것으로 기대된다.
앤드류 베일리 BOE 총재는 최근 국제통화기금(IMF)과의 인터뷰에서 "유럽과 미국의 인플레이션 흐름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클레어 롬바델리 부총재도 "통화정책 완화가 분명한 유럽의 방향"이라고 말했다.
스위스 중앙은행(SNB)은 이미 지난달 정책금리를,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 2월 기준금리인 대출우대금리(LPR)를 각각 0.25%포인트 낮췄다.
기축통화가 달러화이기에 연준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중앙은행은 없다. 그럼에도 이런 차이가 나는 이유는 뭘까.
전 세계가 불황에 신음하는 가운데 미국 경제만 '나 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IMF는 지난 16일 발표한 세계 경제 전망에서 올해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2.7%로 0.6%포인트 상향조정했다. 유로존(0.8%), 일본(0.9%), 프랑스(0.7%), 독일(0.2%) 등 주요 선진국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세계 경제와 미국이 유리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연히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도 속도차가 날 수밖에 없다.
한국 역시 다른 나라들과 별 다를 바가 없다. IMF가 제시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3%로 주요 선진국보다는 높지만 '체급차'가 나는 걸 감안하면 사실 부진한 수준이다.
그나마 수출이 기대 이상으로 호조세라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있을 뿐 내수는 극심한 침체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 '삼고(三高) 현상'은 가계에 큰 부담을 지워 소비를 제약하고 있다. 여기에 부동산시장도 얼어붙어 투자까지 저조하다.
이 총재가 "현재의 고물가는 외부 요인 때문"이라고 인정했듯 이미 고금리를 유지한다고 물가를 잡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보다 가계와 기업의 이자부담이라도 줄여줘야 내수 진작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ECB가 시장 예상대로 6월에 금리를 인하한다면 '10연속 동결'의 한은은 좋은 명분을 얻는 셈이다. 더는 연준만 바라보지 말고 ECB처럼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