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곤혹스런 인간현실 성찰하는 수단"
윤흥식
| 2018-10-04 16:59:23
도시와 농촌 경계에서 살아가는 이웃들 이야기
하종오 시인(64)이 신작시집 <신강화학파 33인>을 펴냈다(도서출판b). 2014년 <신강화학파>, 2016년 <신강화학파 12분파>에 이은 세 번 째 강화도 연작 시집이다.
<신강화학파 33인>은 도시와 농촌의 경계가 허물어져 가는 수도권에 거주하는 이웃들의 이야기이다. '학파'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지만, 유명하거나 특출난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다. 호박농, 순무농, 미장이, 목수, 양봉가 같은 직업을 지닌 이들로, 강화도가 아니더라도 전국 어느 농촌에서나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인물들이다.
시인의 상상력이 빚어낸 허구의 인물들이면서 이웃집에서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서른세 명의 주인공들은 무너져가는 농촌 공동체의 마지막 구성원이자 도시인들 못지 않은, 혹은 도시인들보다 더한 세속적 욕망을 지닌 주체들이다.
'신강화학파'는 현실 속 학문공동체는 아니다. 조선 후기 정제두, 이종휘, 이긍익 등 강화도 출신 유학자들이 주축이 돼 형성된 '강화학파'를 현대적 감각으로 패러디한 것이다.
'신강화학파'는 어떤 사람들인가. "들길 걷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잡풀에서도 양식을 구하는 사람들이라고 대답하고/ 나무 아래서 쉬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그늘을 두르고 햇빛 아래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대답하고/ 호미 든 주민들에게 물어보면/ 가축에게도 일거리를 나누어주는 사람이라고 대답하는" 인물들이다. ('신강화학파 33인 유래담')
얼핏 낭만적 느낌마저 드는 서른세 명의 주인공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무조건 따뜻하지도,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다. 특별히 고상할 것도, 비루할 것도 없는 각자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일상을 담백한 눈길로 응시할 뿐이다.
"벽돌로 마당에 배수구 만드는 일을
같은 마을에 사는 미장이에게 의뢰했다.
미장일해서 번 돈으로
논밭을 넓혀왔다는 미장이가 우러러보여
나는 거리낌없이 신강화학파로 인정했다.
(중략)
그러나 누가 봐도 반나절밖에 걸리지 않은
배수구 만드는 일을 마친 미장이가
하루치 일당을 셈해 달라고 요구했을 때
나는 내가 인정했던 신강화학파를
속으로 슬그머니 취소하였다."
'신강화학파 미장이'(부분)
경북 의성 출신으로 1975년 문단에 나온 하종오 시인이 강화도로 내려간 것은 27년 전인 1991년. 그의 이름 앞에 내내 '민중시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던 1980년대가 저물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 <사월에서 오월로> 같은 시들을 발표할 때 그의 피는 뜨거웠고, 행간에는 삼엄한 긴장이 흘렀다. 문학이 사회변혁의 도구가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유효하던 시절, 하종오라는 이름 석자는 젊은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그 뜨겁던 1980년대가 저물고 1990년대가 시작됐을 때 시인 하종오는 돌연 절필을 선언하고 강화도로 갔다.
"어느 순간 돌아다보니 정치적 목소리만 넘쳐나고 문학성은 메말라버린 문단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시인으로서 자기경신을 이루지 못한다는 자괴감 때문에 도무지 글을 쓸 수 없었다. 그때 내려간 곳이 강화도였다."
자녀교육을 위해 잠시 서울로 거쳐를 옮기기도 했던 그는 6년전 완전한 강화도 주민이 됐다. 그때부터 맘먹고 쓰기 시작한 게 일련의 강화도 연작시이다. 지금까지 펴낸 세 권의 시집 이외에 일곱 권 분량의 강화도 연작시를 이미 탈고했다. 이 연작시를 집필하는 중간에도 <웃음과 울음의 순서> <죽음에 다가가는 절차> 등 주제가 다른 두 권의 시집을 더 상재했다.
지난달 출간된 <신강화학파 33인>은 그의 서른 두 번째 시집이다. 동년배 시인들이 잘해야 5~10년에 한 권꼴로 시집을 펴내는 현실을 감안하면 그의 다작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농부도 아닌 내가 강화도에서 할 게 시 쓰는 것 말고 뭐가 있겠나? 게다가 나는 비교적 시를 쉽게 쓰는 ‘다작 체질’이다 보니 남들보다 많은 시집을 펴내게 됐지..."
지자체마다 지역을 대표할만한 유명 문인 모시기에 정성을 쏟는 요즘, 놀라운 정력으로 강화도 연작시를 쏟아내고 있는 하종오 시인을 지역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까다로운 중늙은이 하나 들어와 있나보다 할걸? 부당한 일, 불합리한 일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성격이다 보니 민원도 자주 제기하게 되고... 게다가 나는 원래부터 사교적인 성격이 못되는터라..."
언론과 평단으로부터 '서정적 리얼리즘' 시인이라는 평을 들어온 그는 굳이 자신의 작품세계를 규정한다면 "서정시로 읽히지만 서정시에 속하지도 않고, 리얼리즘시로 읽히지만 리얼리즘시에도 속하지 않는 '하종오식 리얼리즘'이라고 정의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문학적 관심은 수십년 째 평화와 통일, 변방을 떠도는 자들과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 등에 집중되고 있다. 최근에는 다문화가정 및 난민신청자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올해로 시력 43년째를 맞은 그에게 "시란 무엇인가"를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젊었을 때는 시로써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로써 밥을 벌고, 연애를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갈수록 시가 뭔지 모르겠다. 시가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럼에도 곤혹스런 인간현실을 성찰하는 수단으로서의 시는 여전히 유효하며, 그 바탕은 리얼리즘에 있다고 생각한다."
KPI뉴스 / 윤흥식 기자 jardin@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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