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 法공백①] "10g이면 충분해요"…텔레그램서 유통되는 '존엄사 약물'
배지수 기자
didyou@kpinews.kr | 2026-04-29 17:36:20
오기된 라벨 등 '사기' 정황…신고 어려운 약점 노려
오남용 시 치명적 후유증…단순 소지·구매도 마약법 처벌 대상
"확실히 효과를 보려면 20그램은 있어야 하나요?" 기자가 텔레그램 메신저를 통해 존엄사 약물 판매 계정에 접속해 이같이 물었다. 판매자는 체중을 물었다. 숫자를 말해주자마자 간결한 답변이 돌아왔다. "10그람 충분합니다." 판매자는 마치 처방전을 읽듯 체중에 따라 용량을 안내했다. 가격도 곧바로 제시했다. "넴뷰탈 5그람 45만 원, 10그람 85만 원."
29일 KPI뉴스 취재 결과 극도로 엄격하게 관리돼야 하는 '존엄사 약물'이 텔레그램 메신저를 통해 버젓이 판매되고 있는 정황이 확인됐다. 인터넷에 광고글을 올린 뒤 추적이 어려운 텔레그램으로 구매자를 유인하는 방식이다. 이들은 비대면 거래만을 고집했다.
기자는 실제 약물이 거래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구매자인 척 대화를 나눴다. 안내받은 텔레그램 계정으로 메시지를 보내자 다른 계정으로 판매자가 대화를 걸어 왔다. 이 과정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실제로 구매자들의 문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넴뷰탈은 중추신경 억제제인 '펜토바르비탈'의 상표명이다. 펜토바르비탈은 마취제와 진정제로 사용되는 성분으로, 많은 양을 투여할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스위스 등 존엄사가 합법화된 일부 국가에서 엄격한 의료적 감독 아래 처방된다. 국내에서는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돼 허가받지 않은 개인의 구매·소지·유통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벌 대상이다.
판매자 A는 보안을 강조하며 대화 내용의 복사나 스크린샷을 금지했다. 가격을 묻자 상세한 안내문을 보내왔다. '넴뷰탈 70만 원, 청산가리 40만 원'. 가격이 적혀 있었다. '수령은 퀵 거래·물품보관함·문 앞 보관·우체국 등기 중 선택'이라는 내용도 있었다. 코인·카드·무통장 입금 방법을 안내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는 "구매 결정 완료 후 30분 이내 결제 가능 시에만 1회 안내한다"며 "장시간 연락이 두절되면 차단한다"고 했다. 신중하게 따져볼 시간을 주지 않으려는 수법이다.
구체적인 물품 수령 방법을 묻자 이른바 '던지기' 수법을 안내했다. 제3의 장소에 물건을 넣어두면 구매자가 찾아가는 방식이다. 판매자 A는 "서울 사시면 고속터미널 물품보관함에 두고 수령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오늘 바로 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가능하다"고 답했다.
또 다른 판매자 B는 물품 사진을 보내왔다. 우체국 소포 상자를 배경으로 두고 판매 중인 넴뷰탈 약품의 용기를 찍은 사진이다. 실제로 물품이 있으며 바로 보낼 수 있다는 의미를 전하려는 의도로 읽혔다. 약품 용기 아래에는 기자와 대화를 나눈 시간이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
다만 판매자 B가 보내온 약물 사진 속 라벨에는 '펜토바르비탈-나트린(Pentobarbital-Natrin)'이라고 적혀 있었다. 펜토바르비탈 나트륨의 독일어 표기는 '나트륨(Natrium)'이다. 마지막 두 글자가 달랐다. 정식 제약사 라벨에서는 좀처럼 발견하기 어려운 오기(誤記)다.
판매자들은 공통적으로 고통이 없다고 했다. 판매자 A는 "복용 시 수면제 복용한 것과 비슷한 증상으로 20~40분 경과 후 깊은 수면 상태 후 심정지가 된다"고 설명했다. "잠든 상태로 가며 발작이나 경련이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진짜 넴뷰탈'일 때 이야기다. 라벨조차 제대로 표기되지 않은 약물이 실제 극도로 엄격하게 관리되는 펜토바르비탈이라는 보장은 없다.
입금 후 약물이 실제로 전달된다는 보장도 없다. 판매자 B는 결제 수단으로 문화상품권을 요구했다. 추적이 어려운 방식이다. 혹시라도 구매자가 나중에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인지하더라도 신고하기 어렵다. 불법 약물을 구매하려 했다는 사실이 족쇄가 된다.
지금 텔레그램에서 팔리는 약물이 실제 펜토바르비탈인지도 불분명하다. 성분을 알 수 없는 물질을 복용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날 것인지도 미지수다.
전문가 없이 부적절하게 약물을 투여했다가 오히려 심한 후유증만 남을 가능성도 있다. 이무열 동국대 약대 교수는 "펜토바르비탈은 체중에 따라 용량을 달리 써야 하는 약물"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이것저것 질문하며 대화가 길어지자 판매자들은 극도로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판매자 A는 "확실할 때 오십시오. 아픈지 묻는 질문은 처음입니다. 다른 의도 같습니다"라고 말한 뒤 대화를 끊었고, 잠시 후 그와 대화를 나눈 텔레그램 대화방도 사라졌다.
KPI뉴스 / 배지수·한상진 기자 didyou@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