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으로 자멸한 尹…보수 욕보이고 3년도 안돼 낙마

장한별 기자

star1@kpinews.kr | 2025-04-04 18:09:01

탄핵 저항·'대결정치'로 입지 유지…보수, 극우로 전락
김여사 의혹·의정갈등으로 총선 참패…野 줄탄핵 자초
명태균 게이트 악재도…"폭주하던 돈키오테 풍차받아"
검찰총장 사퇴 후 1년 만에 권력 정점…추락도 순식간

윤석열 전 대통령이 4일 재임 1060일 만에 낙마했다. 임기 5년 중 3년도 채우지 못했다. 

 

'12·3 비상계엄' 선포가 결국 자멸의 길로 이끌었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에서 "헌법 수호 의무를 저버렸다"며 파면을 결정했다.

 

헌재는 '부정선거론'이나 '경고성·호소용 계엄이었다'는 윤 대통령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윤 대통령측이 제기한 절차적 쟁점 중 어느 것도 인정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이 완패한 것이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자신의 탄핵심판 11차 변론에서 최종변론을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계엄 자충수는 그의 개인적 실패에서 끝나지 않는다. 보수 세력을 욕보이고 진보 세력에게 정권탈환의 기회를 줬기 때문이다.

 

계엄 무리수는 부정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그런 만큼 윤 전 대통령 탄핵 찬성이 절반을 넘는 흐름은 꾸준히 이어졌다. 윤 전 대통령은 그러나 사과·반성·순응 대신 '반발·항전'을 택했다. 국민들을 탄핵 반대(반탄), 찬성(찬탄)으로 쪼개 갈등을 키우며 자신의 입지와 영향력을 유지해왔다. 핵심 지지층을 등에 업고 '반목·대결의 정치'를 활용했다. 

 

건전하고 합리적인 보수는 떨어져 나갔고 맹목적, 극단적인 '아스팔트 보수'만 활개를 쳤다. 일시적인 '보수 결집'으로 비친 지지율 상승은 진영 대결의 동력으로 작용했다. 국민의힘 지도부, 친윤계 등은 윤 전 대통령과 지지층 장단에 맞춰 '우향우'로 치달았다.

 

중도·무당층은 등돌렸고 보수층은 '극우'로 인식됐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권교체론이 정권연장론을 20%포인트 안팎으로 앞서가는 이유다. 중도층에선 격차가 더 커진다.   

 

윤 전 대통령 집권은 시작부터 눈길을 끌었다. 윤 전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이전하고 정부 적자를 줄이기 위한 건전 재정 기조를 내세웠다.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했던 문재인 정부와는 차별화에 주력했다.


노동·연금·교육·의료 개혁에 저출생 대응을 더한 '4+1 개혁'을 기치로 내걸었다. 그러나 의료개혁은 실패했고 나머지는 표류중이다. 

윤 전 대통령은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을 2000명 증원하는 비현실적인 방안을 밀어붙였고 의료계와 의대생은 강하게 반발해 병원을 떠나거나 수업을 거부했다. 국민의 건강이 위협받는 상황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나 윤석열 정부는 뾰족한 대책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윤 전 대통령은 2년 11개월 가까운 임기 동안 부인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과 여소야대 정국에서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고전했다. '오만·독선·불통' 스타일로 국정 운영과 여야 관계를 제대로 이끌지 못한 책임이 크다.

 

특히 정권 중간평가로 치러진 지난해 4월 총선에서 국민의힘 대패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 제 발등을 찍는 결과로 이어졌다. 김 여사 의혹을 '국민 눈높이'로 보지 못하고 '의정갈등'을 자초한 것이 최대 패착으로 꼽힌다.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독재와 '줄탄핵'은 본인이 만든 작품인 셈이다. 

 

당정 및 여야 관계는 집권 직후부터 순탄치 않았다. 당정 관계가 삐걱거리자 '정치 초보'인 윤 전 대통령의 한계라는 혹평이 나왔다. 야권은 각종 특검법과 법안을 강행 처리했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버텼다.

 

지난해 12월 3일 감사원장, 서울중앙지검장 등에 대한 야당의 탄핵소추안 발의는 윤 전 대통령을 한껏 자극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를 옥죄는 '명태균 게이트'가 터진 건 엎친데 덮친 격이었다. "폭주하던 돈키오테가 풍차를 들이받았다"는 비유가 나온다. 

 

윤 전 대통령은 검사에서 대통령으로 직행했던 첫 사례였다. 첫 검사 출신이자 서울 출생 대통령, 국회의원을 거치지 않은 첫 국가원수라는 신기록을 남겼다. 한국 정치사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고속이었는데, 추락도 마찬가지였다.검찰총장 사퇴부터 대통령 당선까지 불과 1년이 걸렸고 취임 후 3년이 지나지 않아 중도하차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를 떠나 서초구 서초동 자택인 아크로비스타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거처를 옮기지만 여전히 국가의 경호를 받는다. 현행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대통령경호법)에 따르면 자진사퇴와 파면으로 임기 만료 전 퇴임한 전직 대통령도 경호·경비와 관련된 예우는 그대로 유지된다.

 

윤 전 대통령은 불소추특권을 잃으면서 공천 개입 등 직접 연루된 각종 의혹 수사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검찰이 대선을 앞둔 시점에 윤 전 대통령 부부 수사를 서두르지 않으리라는 관측도 없지 않다.

 

대통령실 정진석 비서실장, 성태윤 정책실장,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을 포함한 고위 참모진은 일괄 사의를 표명했다.
 

KPI뉴스 / 장한별 기자 star1@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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