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의거 관련 사살, 고문, 조작…경찰, 66년 만에 사과하나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 2026-01-26 16:54:26
경남경찰청, 3·15의거 관련 사과 검토…유족 등 접촉
진실화해위, 지난해 진상조사보고서에서 사과 권고
과거사 사과, 권력 기관 환골탈태 보장하진 않지만 필요 ▲ 4월혁명 시기에 마산 시민을 겨냥한 발포 등에 대해 경찰이 사과를 검토하고 있다. 4월혁명 63주년인 2023년 4월 19일 서울 강북구 국립4·19민주묘지를 찾은 유가족이 묘비를 어루만지며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뉴시스]
보고서에는 부정 선거 당일인 1960년 3월 15일부터 이승만 정권이 붕괴하는 그해 4월 말까지 경찰이 마산 시민들에게 가한 위법한 폭력에 관한 내용이 상세히 실려 있다.
몇 가지만 살펴보면, 우선 4월혁명 시기에 목숨을 잃은 마산 시민은 16명으로 파악된다. 이 가운데 12명은 경찰 발포로 사망했다. 3월 15일 경찰이 쏜 총에 맞은 사람 중 11명이 세상을 떠났고, 눈에 최루탄이 박힌 김주열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며 다시 시위가 불붙은 4월 11일 경찰 발포로 또 1명이 목숨을 잃었다.
경찰이 3·15 부정 선거 당일 마산 6개 지점에서 시민을 향해 실탄을 발사하는 등 초기부터 무리한 강경 진압을 밀어붙인 결과다. 그로 인해 총상을 입은 사람도 많았다. 4월혁명 시기에 상해를 입은 마산 시민 272명 중 65명(23.8%)이 총상 피해자다.
경찰은 무차별 폭행도 서슴지 않았다. 시위대만이 아니라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시민들도 경찰에게 심한 폭행을 당했다. 시위가 종료된 후에도 경찰 폭력은 계속됐다.
경찰에 연행된 이들 중 상당수는 고문을 비롯한 가혹 행위에 시달렸다. 가혹 행위 피해자들은 그 후 여러 해 또는 수십 년 동안 밤에 잠을 못 이루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앓아야 했다.
또한 경찰은 시민들의 정당한 항쟁을 공산당의 배후 조종에 의한 사건으로 왜곡·조작하려 했다. 경찰이 쏜 총에 머리를 맞고 사망한 고등학생 시신 호주머니에 '인민공화국 만세', '이승만을 죽여라'라는 내용이 적힌 '삐라'를 집어넣어 3·15의거에 공산 세력이 연루된 것처럼 조작하려 한 것도 그런 시도 중 하나다. 시신이 안치된 병원의 책임자가 협조를 거부해 조작 시도는 실패했지만, 당시 경찰이 어떤 조직이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한 조작 시도는 경찰 수준을 넘어 정권 차원의 움직임과 무관치 않았다. 이와 관련, 보고서에는 "3·15의거의 공산당 배후설은 아무런 실체가 없다", "이승만 정권의 조작임이 밝혀졌다"고 명시돼 있다.
이처럼 4월혁명 시기에 경찰은 심각한 인권 침해를 저질렀지만, 이승만 정권 붕괴 후 책임자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시민 사살, 고문, 빨갱이 조작 시도 등에 가담한 경찰 중 일부에게 실형이 선고되기는 했으나 상당수는 사면, 감형 등을 거쳐 가벼운 처벌만 받았다.
그로 인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가 이어지며 4월혁명 후 66년이 흘렀다. 4월혁명 시기 발포 등에 대한 경남경찰청의 사과 검토 방침이 이달 중순 알려진 후, 3·15의거 관련 단체에서 '늦었지만 사과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경찰의 사과 검토 방침은 현 정부가 추진하는 검찰 개혁이 경찰 권력 비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때에 나왔다. 경찰 사과가 실제로 이뤄지고 유족 등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면, 경찰 권력 비대화 우려를 조금은 줄이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과거사 사과가 권력 기관의 환골탈태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경찰만 해도 노무현 정부 때 과거사 위원회를 구성해 지난날 발생한 인권 침해 사건들의 진상을 규명하고 성찰하는 절차를 밟았지만, 정치 권력과 밀착해 문제를 일으키는 모습은 그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시기 조현오 당시 경찰청장이 댓글 공작 지시 혐의로, 박근혜 정부 때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은 20대 총선 개입 혐의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윤석열 정부의 조지호 경찰청장은 12·3 비상계엄에 가담했다가 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됐다.
그렇다 해도 권력 기관의 과거사 사과와 반성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경남경찰청의 3·15의거 관련 사과가 실현될지, 그리고 사과가 경찰 조직 전체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진실화해위, 지난해 진상조사보고서에서 사과 권고
과거사 사과, 권력 기관 환골탈태 보장하진 않지만 필요
경찰이 1960년 4월혁명 시기에 경남 마산 3·15의거와 관련해 시민들을 사살, 고문하고 빨갱이로 조작하려 하는 등 심각한 인권 침해를 저지른 것에 대해 공식 사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뤄진다면 3·15의거 후 66년 만의 첫 사과다.
경남경찰청은 지난 23일 청사에서 3·15의거 관련 단체 관계자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진행했다. 3·15의거 66주년 기념식을 즈음해 김종철 경남경찰청장이 사과하는 방안에 대해 유족 및 관련 단체 관계자들과 논의한 자리로 풀이된다.
경남경찰청의 이러한 움직임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권고에 호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진실화해위는 지난해 11월 발간한 3·15의거진상조사보고서(이하 보고서)에서 의거 당시 부정 선거 규탄 시위에 참여했다가 인권 침해를 당한 사람들과 그 유족에게 국가가 공식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보고서에는 부정 선거 당일인 1960년 3월 15일부터 이승만 정권이 붕괴하는 그해 4월 말까지 경찰이 마산 시민들에게 가한 위법한 폭력에 관한 내용이 상세히 실려 있다.
몇 가지만 살펴보면, 우선 4월혁명 시기에 목숨을 잃은 마산 시민은 16명으로 파악된다. 이 가운데 12명은 경찰 발포로 사망했다. 3월 15일 경찰이 쏜 총에 맞은 사람 중 11명이 세상을 떠났고, 눈에 최루탄이 박힌 김주열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며 다시 시위가 불붙은 4월 11일 경찰 발포로 또 1명이 목숨을 잃었다.
경찰이 3·15 부정 선거 당일 마산 6개 지점에서 시민을 향해 실탄을 발사하는 등 초기부터 무리한 강경 진압을 밀어붙인 결과다. 그로 인해 총상을 입은 사람도 많았다. 4월혁명 시기에 상해를 입은 마산 시민 272명 중 65명(23.8%)이 총상 피해자다.
경찰은 무차별 폭행도 서슴지 않았다. 시위대만이 아니라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시민들도 경찰에게 심한 폭행을 당했다. 시위가 종료된 후에도 경찰 폭력은 계속됐다.
경찰에 연행된 이들 중 상당수는 고문을 비롯한 가혹 행위에 시달렸다. 가혹 행위 피해자들은 그 후 여러 해 또는 수십 년 동안 밤에 잠을 못 이루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앓아야 했다.
또한 경찰은 시민들의 정당한 항쟁을 공산당의 배후 조종에 의한 사건으로 왜곡·조작하려 했다. 경찰이 쏜 총에 머리를 맞고 사망한 고등학생 시신 호주머니에 '인민공화국 만세', '이승만을 죽여라'라는 내용이 적힌 '삐라'를 집어넣어 3·15의거에 공산 세력이 연루된 것처럼 조작하려 한 것도 그런 시도 중 하나다. 시신이 안치된 병원의 책임자가 협조를 거부해 조작 시도는 실패했지만, 당시 경찰이 어떤 조직이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한 조작 시도는 경찰 수준을 넘어 정권 차원의 움직임과 무관치 않았다. 이와 관련, 보고서에는 "3·15의거의 공산당 배후설은 아무런 실체가 없다", "이승만 정권의 조작임이 밝혀졌다"고 명시돼 있다.
이처럼 4월혁명 시기에 경찰은 심각한 인권 침해를 저질렀지만, 이승만 정권 붕괴 후 책임자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시민 사살, 고문, 빨갱이 조작 시도 등에 가담한 경찰 중 일부에게 실형이 선고되기는 했으나 상당수는 사면, 감형 등을 거쳐 가벼운 처벌만 받았다.
그로 인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가 이어지며 4월혁명 후 66년이 흘렀다. 4월혁명 시기 발포 등에 대한 경남경찰청의 사과 검토 방침이 이달 중순 알려진 후, 3·15의거 관련 단체에서 '늦었지만 사과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경찰의 사과 검토 방침은 현 정부가 추진하는 검찰 개혁이 경찰 권력 비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때에 나왔다. 경찰 사과가 실제로 이뤄지고 유족 등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면, 경찰 권력 비대화 우려를 조금은 줄이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과거사 사과가 권력 기관의 환골탈태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경찰만 해도 노무현 정부 때 과거사 위원회를 구성해 지난날 발생한 인권 침해 사건들의 진상을 규명하고 성찰하는 절차를 밟았지만, 정치 권력과 밀착해 문제를 일으키는 모습은 그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시기 조현오 당시 경찰청장이 댓글 공작 지시 혐의로, 박근혜 정부 때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은 20대 총선 개입 혐의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윤석열 정부의 조지호 경찰청장은 12·3 비상계엄에 가담했다가 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됐다.
그렇다 해도 권력 기관의 과거사 사과와 반성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경남경찰청의 3·15의거 관련 사과가 실현될지, 그리고 사과가 경찰 조직 전체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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