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황정원
| 2018-10-12 17:40:39
"국가 사과 및 특별법 제정해 피해 보상" 권고
"특별법이 통과될 때까지 끝까지 농성장을 지켜나가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나갈 것입니다" (10월1일 한종선씨 페이스북)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 생존자 한종선(42)씨가 피해자들을 대표해 국회 앞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한 지 340일째다. 그는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국회에 촉구하고 있다. 1인 시위 기간까지 포함하면 장장 6년의 세월을 국회 앞에서 버텼다.
70~80년대 대표적 인권유린 수용소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년부터 87년까지 '사회적 부랑자를 선도한다'는 명분으로 시민을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역과 구타, 학대, 성폭력을 자행한 대표적인 인권유린 사건이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위원장 김갑배)는 지난 4월 수용자들을 강제수용한 근거가 된 내무부 훈령이 위헌·위법이어서 불법 감금에 해당한다며 검찰에 재조사를 권고했다. 대검은 이 권고에 따라 진상조사단을 꾸려 조사를 벌여왔다.
검찰 과거사위는 지난 10일 대검 진상조사단으로부터 보고받은 이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진상조사단은 이 사건 담당 검사, 수사관, 검찰 지휘부 및 형제복지원 수용자 48명의 진술을 들었다. 또 당시 수사·재판기록과 신민당 조사보고서, 증언자료 및 언론 보도 등 각종 자료를 광범위하게 조사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형제복지원 강제수용은 1981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 지시로 시작됐다. 전 전 대통령은 그해 4월10일께 88올림픽 개최를 위환 도시 정화를 목적으로 국무총리에게 "근간 신체장애자 구걸행각이 늘어나고 있는바, 실태파악을 하여 관계 부처 협조 하에 일절 단속 보호조치하라"고 지시했다. 그 직후인 4월20일부터 연인원 1만9300여명의 공무원이 투입돼 1850명의 부랑인이 단속됐다.
형제복지원이 운영되는 동안 매년 약 3000명이 이곳에 수용됐고, 확인된 수용자 대부분이 본인 의사에 반해 강제 수용됐다. 수용자 대부분은 경찰이나 구청 공무원의 무분별한 단속에 의해 수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형제복지원 수용자들은 가족 등 연고자가 있고, 직장이나 학교에 다니던 사람도 있었다. 수용자 중에는 막차를 놓쳐 역에서 자던 사람, 직장을 구하러 부산에 왔던 사람, 저녁에 귀가하던 학생, 집을 찾지 못하는 어린아이 등이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심지어 초등학생의 경우 일부러 실제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기재돼 고아로 처리되는 경우도 있었다.
경찰은 적극적으로 사람들의 강제구금에 나섰고, 심지어 부랑인이 아닌 사람까지 형제복지원에 수용시켰다. 당시 시민들을 형제복지원으로 보내면 높은 근무평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복지원 측이 주는 뒷돈도 받았다는 전직 경찰관의 진술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경비견 동원 감금 상태서 강제노역
수용자들은 중대, 소대, 조 등 군대식 체제로 편성됐다. 총 28개 소대로 분류됐다. 수용자들은 일명 '똥복'이라 불리는 헤진 군복을 입었으며, 매주 월요일 아침 전체회의에서 수용자들에 대한 공개 구타와 질책, 협박 등이 있었다. 그밖에도 원산폭격, 물구나무 서기 등 단체기합과 몽둥이 구타가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특히 근신 소대로 불렸던 제7소대와 제13소대는 가혹행위가 심해 수용자들 사이에서 '아오지 탄광'으로 불렸다.
수용자들은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의 개인 목장, 운전교습소 등의 토지 평탄작업, 국유림 벌목작업, 울주작업장 석축작업 등 강제노역을 했다. 강제노역은 감금된 상태로 경비원과 감시견들이 동원됐고, 도망가거나 일을 하지 않으려는 수용자들은 굶기거나 목봉 등의 방법으로 구타를 가했다. 일당은 물론 지급되지 않았다. 질병에 걸려도 치료받지 못했으며, 지속되는 구타와 고된 작업으로 수많은 수용자들이 사망했다.
당시 형제복지원에 수용됐던 A(당시 12세, 82~89년 수용)씨 진술에 따르면, 수용자들은 수용소 간부들에게 몽둥이로 맞거나 단체기합을 받았다. 그는 "심지어 구강성교를 강요받기도 했다. 추운 겨울 운동장에서 돌을 깨 마대자루에 담아 매고 다니는 일을 했지만, 노역의 대가는 받은 적이 없다. 도망가다가 잡혀 맞아죽은 사람도 여럿이고, 상처를 제때 치료받지 못해 죽은 사람도 많다"고 진상조사단에 밝혔다.
수용자 B(당시 12세, 82년~85년 수용)씨는 "수용자들에 대한 폭행이나 가혹행위는 일상적으로 이뤄졌다. 기합은 물구나무 서기, 원산폭격 등 여러 종류가 있었다. 심하게 맞아 정신을 잃은 사람도 있었는데, 이후 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며 "한번은 맞는 게 두려워 일부러 수두를 옮아 병동으로 갔는데 그곳에서는 성폭행을 당했다"고 했다.
수용자들의 형제복지원 탈출은 결코 쉽지 않았다. 복지원이 외딴 곳에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복지원 옆에 위치한 군부대가 외부에서 수용자들을 일상적으로 감시했다. 탈출은 곧 심한 구타와 가혹행위로 이어졌고, 수용자들에겐 명령에 대한 복종만이 유일하게 살 길이었다.
총 수용자 2만1685명 중 513명이 숨져 사망률이 2.4%에 이르렀다. 사망원인은 ‘정신박약, 쇠약, 암 추정’ 등이었다.
진상조사단은 "어린 아이와 중장년층이 사망자에 다수 포함되어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사망진단서에 기재된 사망원인이 허위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실제 1985년~1986년 형제복지원 사망자의 사망진단을 가장 많이 한 의사 정모씨는 형제복지원 수용자에 대한 사망진단서를 허위로 작성한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기도 했다.
수용자가 사망할 경우 암매장까지 했으며, 일부 시신은 의과대학 해부용으로 팔려가기도 했다.
검찰·정부 등 국가기관, 수용소 실체 드러나자 사건 축소·은폐시켜
형제복지원의 실체는 1987년 김용원 당시 울산지청 검사의 수사를 바탕으로 드러났다.
수사 한 달 만에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은 특수감금과 업무상횡령 등 혐의로 구속됐으나 재판 끝에 공소사실이 축소되고 업무상 횡령, 외환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특수감금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다. 당시 대법원은 "내무부 훈령 제410호(일정한 주거가 없는 부랑인일 경우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보호시설에 수용하는 것이 가능하다)에 따른 수용이었기 때문에 위법성이 없다"고 판결했다.
당시 수사검사였던 김용원 변호사는 검찰 지휘부, 정부, 부산시 등 조직적인 외압에 의해 사건이 축소·왜곡됐다고 주장해왔다. 김용원 변호사는 진상조사단 면담에서 "부산지검에 형제복지원 본원에 대한 조사 승인을 요청하자, 차장검사가 '미친 놈, 지금 어느 땐데 그런 수사를 하느냐'며 철수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진상조사단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검찰 지휘부는 형제복지원 원장에 대한 인권 침해와 횡령에 대한 수사를 무산시켰다. 공소장에 적시된 횡령금액을 10억원 이상에서 7억원 이하로 변경하도록 지시하고, 부산지검 차장검사는 수사 검사에게 원장을 석방해 불구속 기소할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검찰총장도 원장에 대한 구형량을 기존의 절반으로 줄일 것을 지시했다.
정부와 부산시장 역시 형제복지원 원장에 대한 수사를 중단하거나 축소하라고 외압을 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용원 변호사는 진상조사단 면담에서 당시 박인근 원장을 구속한 다음 날 부산시장에게서 석방할 것을 요구받았고, 정부로부터도 구속된 원장에 대한 석방을 지시받았다고 진술했다.
검찰 과거사위, 국가 사과 및 특별법 제정 권고
과거사위는 지난 10일 진상조사단 조사 결과를 보고 받고 심의한 결과,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국가가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특별법을 제정해 추가 진상규명 및 피해보상을 해야한다고 권고했다.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는 비상상고는 과거 판결을 재판결하는 것이므로, 형제복지원 자체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과거사정리기본법, 형제복지원특별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해 왔다.
형제복지원대책위는 "총체적인 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해서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과거사정리기본법(개정안)’의 조속한 통과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책위는 "형제복지원 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특별법도 발의되어 있지만, 87년 당시 형제복지원과 같은 수용소가 전국에 36개나 있었고, 그 전부터 존재했던 선감학원 사건 등도 있기 때문에, '국가에 의한 중차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접근할 필요가 나날이 더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KPI뉴스 / 황정원 기자 hjw@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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