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세계③] 복합 위기 속 기회 찾기…"승산 있다"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 2025-02-05 17:01:38
미·중 갈등 속 한국 기업 반사이익도 기대
지역 다변화 절실...아세안 빅3, 인도 등
"물론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위협 이면에 기회들도 숨어 있다. 한국 기업들이 그런 기회를 포착하는 경험을 많이 쌓아오기도 했다. 남보다 더 빨리 움직이는 기업에게는 승산이 있을 것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의 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시작으로 '관세 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한국의 대(對)중국 무역수지는 구조적 적자 양상을 보인다. 복합적 위기 상황이다.
하지만 충격은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면서 오히려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는 분야에 역량을 모으는 것이 당면 과제다. 근본적으로는 미국과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시장 다변화가 더욱 절실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달리 캐나다와 멕시코의 관세 인상을 한달간 유보한 것은 협상의 여지가 열려 있음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대미 무역 흑자국인 한국이 보편관세 10%의 칼날을 비켜가기 위해서도 외교 전략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부총리는 5일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미국의 캐나다, 멕시코에 대한 관세 부과 조치는 한 달 연기되며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중국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는 그대로 시행되는 등 글로벌 교역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어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는 대응책으로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 미국 조선업의 유지·보수·정비(MRO) 국내 추진 등 양자 해결 방안을 적극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미국은 세계 1위 LNG 수출국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이미 한국은 LNG 수입을 크게 늘린 바 있다. 수입을 확대하면 무역 흑자 규모는 줄어들지만 보편관세를 피하는 명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유럽연합(EU)과 일본 등은 유사한 전략을 검토 중이다. 한국 정부도 내부 논의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언급할 정도로 절실한 조선업 분야 협력을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 간 대화를 통한 '톱다운' 방식을 선호하는데 한국은 '대통령 대행의 대행 체제'라는 점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일본과 대비된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오는 6∼8일 미국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일각에선 미국과 중국이 극적 타협 없이 고관세 전쟁에 돌입할 경우 시장에선 빈 공간이 생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 기업들에게 새로운 먹거리가 등장하는 셈이다. 전유진 iM증권 연구원은 이날 금호석유화학을 분석하면서 '고래 싸움에 새우가 득 볼 기회'라는 제목을 붙였다.
중국산 의료 및 수술용 장갑에 대한 관세가 당초 7.5%에서 지난달 50%로 상향됐고 내년에는 100%까지 재차 상향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이에 더해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 10%의 추과 관세를 부과했다. 결국 말레이시아와 태국 장갑 업체들에게 '반사 수혜'가 될 수 있고 원재료인 NB라텍스를 공급하는 금호석유화학의 이익 개선을 안겨줄 것이란 전망이다.
반도체와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서도 유사한 반사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적잖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기아가 멕시코 공장을 가동하고 있지만 다른 글로벌 업체들의 멕시코와 캐나다 생산량에 비하면 훨씬 적은 수준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두 국가에 대한 관세 부과를 강행할 경우 오히려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그룹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더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금융센터는 한·중 기업 간 경쟁 심화를 우려하면서도 "미국의 관세 부과와 중국의 맞대응 과정에서 우리 제품의 수출 경쟁력이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시장에서도 높아질 수 있고 G2(미국·중국)의 대(對)한국 투자 확대 등 반사이익도 기대된다"고 짚었다.
길게 보면 미국과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근본적 과제다. 자동차 업계는 미국에 대한 투자 확대 등 현지화 노력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아세안 등 다른 지역으로의 투자와 수출 다변화를 중점 추진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인도네시아에 15만대 규모 완성차 공장, 베트남에 20만대 규모 조립 공장을 운영할 계획이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을 아세안 빅3로 꼽고 생산과 시장 다변화의 대표적인 지역으로 지목했다. 빅3는 아세안 전체의 72%에 달하는 5억 명의 인구를 가진 거대 시장으로 최근 눈에 띄는 경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반도체, 자동차, 철강, 무선통신기기 등이 단기적으로 유망하며 중장기적으로는 첨단 신소재와 에너지 신산업 등도 협력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연구원은 "중국 경제의 성장세 둔화, 미중 갈등에 따른 리스크 확대가 우리나라 경제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라며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경제 안정성과 회복력 강화를 위해 생산 네트워크와 진출 시장 다변화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실정"이라고 진단했다.
세계 최대 인구 대국이자 경제 대국으로 커가는 인도에 대한 관심도 뜨거워지고 있다. 이날 LS증권은 "반사 수혜로 주목할 수 있는 투자처로는 인도가 대표적"이라며 "중국에 있는 생산기지 이전에 대한 수혜뿐만 아니라, 글로벌 고금리 환경 속에서도 가장 높은 성장률을 일으키고 있는 것 역시 강한 이점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전했다. 인도는 2023년 8%대 성장률을 보인 뒤 주춤하긴 했으나 여전히 6% 중반대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LG전자는 지난해 말 인도법인의 상장을 공식화하는 등 현지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이 회사 조주완 사장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인도가 1인당 소득은 낮지만 엄청난 인재를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 많은 공장도 지을 것"이라며 "현지 완결형 사업을 하고 확대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앞서 현대차도 인도법인을 지난해 10월 현지 상장시키고 100만대 생산체계를 구축해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인도의 자동차 시장 규모는 연간 500만대로 중국과 미국에 이은 3위다.
최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올해 첫 해외 사업장 방문지로 택한 곳도 인도였다. 제과 시장 규모가 17조 원에 달하는데, 롯데웰푸드가 2004년 인도 제과업체를 인수하며 첫 진출했다. 인도는 롯데가 올해 매출 확대를 기대하는 핵심 시장으로 알려졌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인도는 평균 연령이 20대일 정도로 젊은 국가이며 2070년까지 인구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시장이 커질 수밖에 없으므로 투자해 키워나간다는 건 확고한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아직 빈곤율이 높지만 그만큼 발전 가능성이 높고 기회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KPI뉴스 /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