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가 상기시킨 김구의 문화국가론, 어디서 유래했을까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 2026-03-26 16:57:55
김구, '백범일지'에서 문화의 힘 강조
김구 문화국가론 유래 연구 많지 않아
'민중이 지지한 동학사상이 뿌리' 주장도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연 복귀 공연에서 독립운동가 김구를 언급했다. "파든(Pardon, 실례합니다) 김구 선생님 텔 미 하우 유 필(tell me how you feel, 기분이 어떠신가요)"이라고(신곡 'Aliens' 가사 일부).
여러 언론에서 김구를 상기시킨 BTS 행보에 주목했다. 문화의 힘을 강조한 김구의 바람을 실현하고 있는 BTS의 포부가 담긴 노래라는 등의 해석이 나왔다. 문화 강국 비전을 제시한 김구의 혜안을 칭송하는 기사도 있다.
김구는 1947년 출간된 자서전 '백범일지'에서 문화의 힘을 중시했다. 이 책에 수록된 '나의 소원' 중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에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명시했다.
문화의 힘을 강조한 김구의 주장은 학계에서 문화국가론이라고 불린다. 한 사람의 사상은 그가 직면했던 시대 상황 및 삶의 경험과 무관할 수 없는 법이다. 김구의 문화국가론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답은 명확하지 않다. 밝혀진 것이 많지도 않다.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에 담긴 김구 사상의 유래에 관한 연구가 거의 없다는 지적도 있다.
향후 논의의 진전을 기대하며, 그 유래와 관련해 연구자들 사이에서 거론된 주요 사항을 되짚어보자. 먼저 살펴볼 것은 독일 철학자 피히테다.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에 독일이 짓밟히자 독일 민족주의를 고취하는 강연('독일 국민에게 고함')을 한 인물이다.
일본 문학 연구자 이경희는 2023년 논문에서 문화국가는 19세기에 확립된 국가 개념으로 피히테 등이 이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1868년 메이지 유신 후 일본에 수용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김구의 문화국가 건설론과 피히테 주장의 유사점을 언급한 것을 상기시켰다. 이경희는 김구가 피히테의 문화국가관을 직접 이해한 흔적이 없음에도 "양자의 유사점을 언급한 김삼웅의 지적은 간과하기 어렵다"고 썼다.
두 번째로 살펴볼 것은 일본에서 전파된 문화주의 사조다. 이 사안은 소설가 춘원 이광수와 '백범일지'의 관계 문제와 연결돼 있다. 김구보다 열여섯 살 아래인 이광수는 출간 전 '백범일지'를 윤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자인 이광수가 김구 자서전에 손을 댔다는 얘기를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광수는 중학생이던 10대 중반부터 김구와 알고 지낸 사이였다. 이광수에게 사상적으로 큰 영향을 준 도산 안창호가 김구와 깊은 교분을 나눈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데 '백범일지' 출간 과정에서 이광수 역할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논란거리다. 김구 글을 다듬는 윤문 이상의 역할을 했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백범일지'에서 사실상 김구가 아니라 이광수가 작성했을 것으로 의심받는 대표적인 부분이 문화의 힘을 강조한 '나의 소원'이다.
국문학자인 방민호 서울대 교수는 2020년 논문에서 "'나의 소원'은 이광수가 김구의 자서전 저자명 아래 그리고 그의 승인 아래 자신의 생각을 삽입해 놓은 흔적이 역력한 텍스트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장의 근거 중 하나는 '나의 소원' 문체 등이 김구가 작성한 '백범일지' 원본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김구가 1945년 귀국 후 매우 바빠서 자기 생각을 통일적 논리로 체계화해 보일 정신적 여유를 갖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나의 소원'에 이광수의 흔적이 짙게 드리웠다는 주장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문화의 힘을 강조한 '백범일지' 내용은 일본에서 유래한 문화주의와 직접적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이 힘을 받을 수도 있다.
1920~1930년대에 식민지 조선에서는 일본에서 전래된 문화주의 담론이 유행했는데, 당시 그것을 활발하게 소개한 사람 중 한 명이 이광수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 등을 고려해 '백범일지' 중 '나의 소원'을 무조건 높이 평가하기보다는 비판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세 번째로 살펴볼 것은 동학사상이다. 김구는 '아기 접주'로 불리며 1894년 갑오농민전쟁에서 활약했을 만큼 동학과 깊은 인연이 있다.
임태홍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수석연구원은 2023년 논문에서 "학계 일각에서 일본에서 전파된 문화주의에 대한 연구가 축적되면서 김구의 문화주의 사상이 전적으로 일본에서 수입된 것으로 오해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김구 사상은) 일본과 서구의 일부 철학자들에 의해서 제창된 관념론적인 사상이 아니라, 전통 시대에 광범위한 민중의 지지를 획득하고 있던 동학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과 서구의 문화주의와 동학의 문화주의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 주장의 주요 근거다. 임 연구원은 "독일과 일본의 철학자들이 제창한 '문화주의'에는 '반침략의 문화주의'나 무력 사용에 반대하는 문화주의 개념은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일본의 문화주의가 인격적 삶, 진선미의 추구, 수양, 심성의 개조 등 개인적인 삶을 중시한 것은 그러한 한계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와 달리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 2대 교주인 최시형의 문화주의는 현실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을 뿐 아니라 일본의 침략을 전제로 한 반침략을 표방했다고 평가했다. 바로 그러한 문화주의가 김구의 문화국가론으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세 가지 이외에 유가의 왕도 정치론에 주목하는 경우도 있다. 문화국가론을 통해 드러난 김구의 국제 정치관에서 무력과 폭력을 배제하고 윤리와 도덕으로 국가와 천하를 다스리는 왕도 정치라는 유가적 특징이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주장이다.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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