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내가 아직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만나고 싶어요"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5-01-10 13:50:03

단편집 '내가 아직 조금 남아 있을 때' 펴낸 소설가 서성란
입양된 이들의 방황과 아픔 소재로 집필한 연작들 포함
어둡고 낮은 지대의 고단한 이들 다양한 이야기 10편
"타인의 아픔 소재로만 접근하는 태도는 심각한 문제"

-나를 버렸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지 마세요. 엄마, 나는 괜찮아요. 지금껏 잘살고 있으니까요. 나는 그저 알고 싶은 거예요. 내가 누구인지, 왜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엄마를 만날 수 있다면 정말 기쁠 거예요. 아직 내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엄마를 만나고 싶어요. 너무 늦지 않도록 말이에요. 

 

▲오래 외면하고 억눌러왔던 사연을 돌아보며 해외 입양아 이야기를 연작 형태로 집필한 소설가 서성란. [서성란 제공]

 

두 살 무렵 시장 골목에서 미아로 발견됐던 '김정화'는 미국으로 입양돼 서른여덟 살 '제인 클레이'로 다시 그 자리에 섰다. 어딘가 살아 있을지 모를 엄마에게 제인은, 김정화는, 아직 자신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을 엄마를 만나고 싶다고 하소한다. 자신이 모두 잊혀지기 전에, 그나마 엄마가 잃어버린 혹은 놓아버린 '내가' 아직 희미하게라도 남아 있을 때,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존재 자체가 완전한 떠돌이별로 고착되기 전에, 자신도 두 아이를 낳아 기르는 엄마가 되어 엄마를 보고 싶다고 호소한다.

서성란 4번째 소설집 '내가 아직 남아 있을 때'(강)의 표제작 이야기다. 해외 입양아의 아픔을 담은 서사로, 글쓰기의 윤리와 태도를 함께 고민하는 이상문학상(2023) 우수작 중 하나다. '우편 주문 아이'로 미국에 입양된 인물이 뒤늦게 성인이 된 상태에서 시민권에 문제가 발견돼 한국으로 강제 추방됐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례를 희곡 작가인 딸이 작품으로 쓰려고 하자, 에세이 작가인 엄마가 그이의 아픔을 제대로 공감하지 못한 상태에서 섣불리 소재로 채택해서는 안된다고 만류한다. 기실 그녀에겐 주변 사람들 모르게 일찍이 아이를 낳았다가 '처리'한 과거가 있다. 오래도록 깊숙한 곳에 묻어 놓았던 아픈 기억을, 제대로 '공감'과 '연민'을 느끼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딸이 끄집어낸 것이다. 딸은 자신이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이야기에 매달리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딸은 "그렇게 보낸 아이들이 돌아오고 있다"면서 "나는 연구자나 시민운동가가 아니라 희곡을 쓰는 사람"이라고 엄마에게 말한다. 그들도 글을 쓰기 바랄 것이고 자신들이 왜 떠나야 했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지 말하고 싶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사실 '작가란 타인의 상처에 고통을 느끼고 아파하는 사람'이라는 딸의 말에 일찍이 고개를 끄덕였던 그녀였지만, 정작 자신이 깊은 통증을 느끼는 이야기를 누군가 섣부르게 작품으로 쓰려는 시도에는 부정적이었다. '공감과 상상만으로 가닿을 수 없는 세계였다. 엄마의 손을 놓쳤거나 길을 잃고 두려움과 공포에 떨면서 눈물을 흘려본 적 없는 딸은 시장 골목에서 울고 있는 아이의 슬픔과 절망을 그저 머릿속으로 이해할 뿐이었다.' 그녀가 철없던 시절 낳았던, 해마다 나이를 먹어 서른이 되고 마흔, 쉰이 된, 얼굴을 보지 못한, 이름이 없는 그 아이는 여태도 산부인과 분만실에서 울고 있었다.

"사실 저는 소설 속 딸의 입장이었지만, 실제로 겪은 그분의 삶을 제가 소설로 담아낼 자격이 있는가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됐어요. 결국 이 작품을 썼고, 또 계속 더 쓰려고 하지만 스스로 삶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그 사람의 입장에서, 어디까지 작가로서 그들의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싶은 질문에 붙들렸던 것인데, 그 답을 얻기 위해 써나간 단편입니다. 당사자가 아닐지라도 그들의 마음에 다가가려는 자세로 작가는 글을 쓸 수밖에 없죠. 다만 소재를 취하는 측면에서만 접근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건데, 그래서 글쓰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지 않나 싶어요. " 

서성란은 실제로 자신의 어린시절 트라우마가 이 소재를 천착하게 된 동력일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많은 집안에서 엄마가 자신을 낳은 뒤 쓰러져 오래 투병을 하다 한 번도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지 못한 채 작고했다. 형제 많은 집안에서 서성란은 해외 입양아가 될 뻔했는데, 아버지의 최종 반대로 할머니 손에 키워졌다. 당시 그녀는 타국에 가서 자신이 모르는 언어로 소통할 일이 어린 나이에도 제일 막막했다고 말한다. 그녀가 작가의 말에 "거의 소설을 쓰고 난 뒤에야 아직 써야 할 이야기가 남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면서 "안다고도 모른다고도 할 수 없는 한 사람의 고단했던 삶의 시간을 뒤따라가면서 그동안 내내 외면하고 역눌러왔던 나의 시간과 마주할 수 있었다"고 쓴 배경이다.

표제작은 미국에 입양 보내졌다가 파양을 거친 뒤 다시 입양돼 성인이 됐는데, 입양 서류에 뒤늦게 하자가 발견돼 한국으로 추방된 후 자신의 주검을 미국으로 보내달라고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김상필 필립 클레이 씨 사례가 차용된 경우다. 이번 소설집에는 같은 소재를 다룬 연작 세 편이 실렸는데, 제일 먼저 이 사례가 도드라지는 '이규호 노먼 테리어'를 썼고, 벨기에 입양아 로베르트와 은희라는 인물을 덧붙여 '존, 로베르트, 은희'를, 마지막으로 이 단편을 추가했다. 서성란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아예 해외에 입양된 쌍둥이 이야기를 각각 담은 두 권의 장편을 집필하는 중이다.

이번 소설집에는 이 연작들을 포함해 10편이 포진해 있다. 실직자, 보편적이지 않은 모성, 이주 노동자, 세월호 아이들 등이 바탕에 깔려 있다. '완벽한 스테이크와 적양배추 요리'의 남자는 음식 맛을 잃어 가면서 사회 밖으로 추방되는 형국인데, 그가 맛을 상실하는 과정이 섬세하다. '좋은 어머니들'은 얼핏 모계사회를 연상케 하는 섬에서 아비들은 존재감이 없는 대신 엄마들이 서로 의지하며 곤고한 삶을 지탱해나간다. 페미니즘 소설이라기보다, 보편적인 모성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었다는 작가의 설명이다. '피아라 식당의 손님'에는 서성란이 그동안 자주 다루었던 이주 노동자들, 혹은 떠도는 정체성의 이방인들 중 하나인 '버랄'이라는 네팔 청년을 바라보는 중년 남자의 시각을 담았다.

"제 소설이 어둡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사실 저는 제 자신이 입양인이라는, 이 사회의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희미한 존재감을 지닌 작가라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살아요. 그러다 보니 그런 사람들에게 더 관심이 가는 것 같아요. 글을 쓰는 자는 분명한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자존감을 지닌 존재인데도, 자꾸 저와 비슷하다고 느끼는 인물들을 찾아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소설집은 4번째이지만 장편은 베트남어로도 번역된 '쓰엉'을 포함해 '파프리카' '풍년식당 레시피' '모두 다 사라지지 않는 달' '특별한 손님' '일곱 번 째 스무살' 등 7권에 이른다. 존재감이 없는 작가라고 스스로를 낮추지만 그녀만큼 쉼없이 성실하게 정진하기도 쉽지 않다. 글쓰기의 고통과 두려움을 앞세워 게으름을 포장하지 않는 경우다.

 

▲ 서성란은 "소재주의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진실과 마주하는 지난한 노력은 작가의 숙명"이라고 말한다. [서성란 제공]

 

"보통은 글쓰기가 피가 나는 고통이다, 이런 표현들을 쓰는데 모르겠어요. 다른 작가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저는 글을 쓰면서 그렇게 고통스럽지는 않거든요. 글이 막혀도 막히는대로 고민을 할 뿐이지, 그걸 고통스럽게 여기지는 않아요. 날마다 글을 쓰는데 어제 쓴 문장을 오늘 다시 읽어보면 말이 안돼요. 지우고 다시 쓰는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이야기가 쌓여서 한 편의 소설이 완성되는 그 과정을 즐기는 편이에요. 오히려 출간 과정이 고통스럽죠."

서성란은 지금 쓰고 있는 해외 입양아 장편 두 권이 자신의 대표작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 소재는 그가 오래 묻어놓았던 어떤 부분을 건드리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사적인 서사가 아니라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완성되기를 바란다는 차원에서 그렇다.

서성란은 202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제교류 프로그램 중 이탈리아 오리엔탈레 대학교 한국학과 학생들과 교류하는 작가로 선발돼 3월 나폴리로 떠난다. 계엄 사태가 모든 이슈를 덮어버려 아쉽다는 그는 이탈리아어로 번역 중인 표제작을 두고 그곳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돼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오래전 자신이 버려졌던 장소를 찾아간 소설 속 '은희'가 안아 올린 아기의 울음 소리.

-아기는 그곳에 있었다. 은희는 잠들어 있는 아기의 곁으로 다가가 두 손을 내밀었다. 먼지와 때가 묻어 더러운 강보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자, 아기가 눈을 뜨고 울음을 터트렸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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