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금 보장 믿고 가입했는데"…'녹음' 없다며 오리발 내미는 증권사

이수민 기자

smlee682@kpinews.kr | 2026-10-12 15:06:43

개인폰으로 권유받아 채권혼합형 펀드에 3000만원 투자…600만원 손실
증권사 직원, "원금 보장" 안내…손실 나니 '녹음' 없다며 책임 회피

개인투자자 고기호(47·가명) 씨는 2024년 9월 만기 2년인 채권혼합형 펀드에 3000만 원을 투자했다. 평소 거래하던 삼성증권 직원의 개인 휴대전화로 추천받았다.

 

해당 직원은 고 씨와의 통화에서 "만기까지 보유하면 원금은 틀림없이 보장된다"고 거듭 말했다.

 

결과는 달랐다. 올해 9월 펀드 만기가 도래했으나 고 씨가 받은 돈은 2400만 원에 불과했다. 600만 원이나 손실이 난 것이었다.

 

고씨가 가입한 상품은 회사채를 중심으로 운용하면서 공모주에도 일부 투자하는 채권혼합 펀드였다. 운용 과정에서 편입 회사채 일부에 부실이 발생했고 공모주 등 주식 투자도 일부 손실을 봤다. 정상적으로 상환된 채권의 이자수익으로는 이를 메우지 못한 것이었다.


고 씨는 "약속한 것과 다르다"고 따졌지만 해당 직원은 "원금 보장 약속은 한 적이 없다"고 딴소리했다. 오히려 직원은 "손실 위험을 안내했으며 당신도 그 내용이 담긴 서류에 서명했다"고 주장했다.

 

고 씨가 "직원으로부터 손실 위험을 안내받았다"는 내용의 서류에 서명한 건 사실이었다. 고 씨는 이에 대해 "직원이 서명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며 원금이 틀림없이 보장된다고 확약했다"고 강조했다. 전화통화로나 직접 만난 자리에서나 그 직원은 원금 보장을 거듭 약속했다는 얘기다.

 

삼성증권에 민원을 제기하자 회사 측 역시 고 씨가 서명한 서류만 언급하면서 배상할 수 없다고 답했다.

 

고 씨는 직원의 원금 보장 약속을 거론하면서 상품에 대해 설명한 직원의 휴대전화 녹음을 확인해보라고 했다. 삼성증권 측은 "직원 휴대전화로 이뤄진 통화 녹음은 보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녹음이 없으니 고 씨 말이 옳음을 증명할 수도 없고 따라서 설명의무 위반이나 그에 따른 배상 책임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태도였다.

 

▲ 그래픽.

 

증권사 직원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이 상품은 원금이 보장된다"고 하는 등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 경우는 종종 있다. 또 펀드 등 금융상품 가입 시 여러 장의 서류에 서명해야 하다 보니 제대로 읽지 않고 직원이 시키는 대로 서명만 하는 소비자들도 있다.

 

고 씨처럼 증권사 직원의 원금 보장 약속을 믿고 금융상품에 가입했고, "손실 위험을 안내받았다"는 내용의 서류에 서명도 한 경우는 어떻게 될까.

 

금융당국과 전문가들은 이 경우 설명의무 위반에 따른 배상 책임이 면책되진 않는다고 본다. 

 

금융감독원 금융투자검사 담당자는 "소비자가 손실 위험을 안내받았다는 내용의 서류에 서명했더라도 금융상품 권유 과정에서 증권사 직원이 원금 보장을 말했다면 그 책임이 사라지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설령 직원 개인 휴대전화라도 원금 보장을 약속한 통화 녹음이 남아 있다면 증권사 측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배상액이 얼마나 될지는 자세한 판매 경위를 따져봐야 한다"며 "손실금 전액은 아니더라도 꽤 배상해야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안수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서류에 손실 위험을 적어 놓았다는 이유만으로 설명의무를 다했다고 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직원이 원금 보장을 확언한 녹음만으로도 증권사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녹음이 없다면 설명의무 위반 여부를 입증하기가 어렵다. 현행 금융소비자보호법상 설명의무 위반에 고의·과실이 없었다는 점은 회사가, 위반 사실 자체는 소비자가 입증해야 한다. 증권사 측이 통화 녹음을 보관하지 않았다며 오리발을 내밀면 소비자는 벽에 부딪히는 셈이다.

 

김주영 법무법인 한누리 대표변호사는 "기록이 없으면 소비자는 '직원이 실제로 어떤 설명을 했는가'라는 첫 번째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고 씨와 같은 사례가 계속 발생하자 금감원은 투자자 보호 절차 개선에 나섰다. 서재완 금감원 금융투자부문 부원장보는 지난 7일 21개 증권사 감사들을 대상으로 한 간담회에서 "영업 시 개인 휴대전화를 사용해 (고객에게 상품을) 권유한 기록조차 남기지 않는, 고질적인 위법행위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감사조직은 '사후약방문식 감사'가 아닌 '사전예방적' 감사를 통해 선제적 투자자 보호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KPI뉴스 / 이수민 기자 smlee682@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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