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또 사도광산 뒤통수 맞은 한국…예견된 참사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 2024-11-25 16:12:04
한국 반발‧불참…25일 별도 추도식 개최
강제 동원 명시 없이 등재할 때 예상된 일
일본, 군함도 일부 등 등재 때도 약속 어겨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에서 지난 24일 열린 '사도광산 추도식' 파문이 커지고 있다. 한국 측이 불참한 가운데 일본 지자체와 시민 단체가 단독으로 진행한 이 행사에서 일제 강점기 사도광산에 조선인이 강제 동원된 사실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사죄와 반성도 없었다.
추도식을 표방한 행사임에도 '추도사'는 없었다. 일본 정부 대표로 참석해 추도사 대신 '인사말'을 한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차관급)은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이 있다고 알려진 인사였다. 한국 측은 일본의 무성의한 조치에 반발해 25일 별도로 추도식을 개최했다.
추도식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추도사 낭독과 묵념, 헌화 등 순서로 진행됐다. 한국 유족 9명과 박철희 주일 한국대사를 비롯한 주일 한국대사관 관계자 등 약 30명이 참석했다.
박 대사는 추도사에서 "80여 년 전 사도광산에 강제로 동원돼 가혹한 노동에 지쳐 스러져 간 한국인 노동자분들의 영령에 머리 숙여 깊은 애도를 표하며 삼가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그는 "영영 사랑하는 가족의 품에 안기지 못하고 돌아가신 한국인 노동자의 한스러운 마음, 귀국 후 사고 후유증과 진폐증으로 힘든 삶을 이어간 분들에게는 어떤 말도 온전한 위로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도광산 추도식'은 준비 과정부터 논란의 연속이었다. 일본은 행사명에 '감사'를 넣겠다고 주장했다. 강제 동원 역사는 가리고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축하에 방점을 찍겠다는 의도가 다분한 요구였다.
한국은 거부했고 협상 끝에 행사명은 누구를 추모하는지 알 수 없는 '사도광산 추도식'으로 정해졌다. 피해 유족들의 추도식 참석 경비를 일본이 아닌 한국 정부가 부담하기로 한 것도 논란이었다.
사도광산과 관련해 일본이 뒤통수를 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앞서 일본은 추도식뿐 아니라 조선인 노동자 관련 전시도 진행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해당 전시 공간은 사도광산에서 상당히 떨어진 아이카와향토박물관에 마련됐을 뿐 아니라 노역의 강제성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내용이 없어 논란이 일었다.
일본은 추도식을 열겠다면서도 강제 동원된 조선인 명부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 사도광산에는 1519명의 조선인이 강제 동원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련의 사태는 한국이 지난 7월 강제 동원 사실을 명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동의할 때부터 예견된 참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채 일본에 역사를 입맛대로 재단할 길을 또다시 열어준 것 아니냐는 것이다.
'또다시'라는 얘기가 나오는 건 2015년 군함도(하시마) 일부 지역 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을 때의 경험 때문이다. 당시 일본은 강제성을 인정하는 듯하다가 세계유산 등재 발표 직후 기시다 후미오 외무대신과 아베 신조 수상이 나서 강제성을 부인했다.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꾼 것은 물론 등재 전에 한 약속도 어겼다. 202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조선인 노동자의 강제 노역 동원 사실 등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권고한 결정을 일본이 충실히 이행하지 않는 것에 대해 강한 유감을 공식 표명할 정도였다.
표리부동한 일본 태도는 사도광산 문제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구체적인 전략 없이 일본의 선의만 믿다가 연이어 뒤통수를 맞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해방 이후 최악의 외교 참사"라고 성토했다. "정부의 처참한 외교로 사도광산 추도식이 강제 동원 피해 노동자 추모가 아니라 일본의 유네스코 등재 축하 행사로 전락했다"면서다.
황정아 대변인은 전날 "사도광산 협상이 '성과'라고 강변하더니, 결국 일본이 채워온 나머지 '반 컵'에는 조롱과 능멸만이 가득했다"고 논평했다.
'반 컵'은 지난해 윤석열 정부가 강제 징용 해법으로 제시한 '제3자 변제' 방안과 관련해 나온 얘기다. 당시 박진 외교부 장관은 "물컵에 물이 절반 이상은 찼다고 생각한다"며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에 따라서 그 물컵은 더 채워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기조에 따라 강제 징용부터 사도광산 문제까지 한국 측이 거듭 양보하고 있지만,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일 외교 전략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KPI뉴스 / 김덕련 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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