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균의 금융경제 읽기] 인공지능 시대와 애덤 스미스
UPI뉴스
go@kpinews.kr | 2023-12-26 15:58:34
인공지능 시대···노동시장 혁명적 변화 넘어 인류 문명에 근본적 질문 던져
인간 본성이 만드는 올바른 질서 말한 애덤 스미스 사상이 절실한 시대
영국의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가 2023년을 돌아보며 뽑은 월별 톱 뉴스 12개 중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관련 뉴스가 2개로 비중이 가장 크다.
먼저 5월 톱 뉴스로 할리우드 작가들이 파업에 들어간 배경이 인공지능임에 초점을 맞추었다. 곧이어 할리우드 배우들도 파업에 합류했다. 배우와 작가의 동반 파업은 할리우드 역사상 1960년 이후 63년 만이다. 창작 현장에서 이미 인공지능이 영화 대본을 쓰고 있고 배우가 출연하지 않고도 인공지능을 통해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현실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11월 톱 뉴스는 1년 전 챗GPT를 출시한 인공지능회사 오픈AI의 최고경영자 샘 올트먼이 이사회에 의해 전격적으로 축출되었다가 5일 만에 극적으로 복귀하며 이사회 구조도 함께 재편되는 회사지배구조 파워게임의 스토리다. 인류에게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인공지능을 발전시킨다는 비영리 목표를 표방하며 설립된 오픈AI가 최근 상업화로 향하려는 움직임이 일자 이를 제어하려 한 이사회와 마이크로소프트 등 투자자 간에 불거진 갈등을 조명한 것이다.
이와 같은 할리우드의 파업과 챗GPT 제조회사의 상업화 조짐 등은 인공지능이 가져오는 일련의 파급력을 극명하고 시사적으로 조명해주는 측면이 있다. 할리우드 영화계 파업은 이용자의 요구에 따라 결과를 만들어내는 챗GPT와 같은 이른바 생성형(generative) 모델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고 있는 노동시장의 한 단면을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전문직의 하나인 변호사의 업무는 어떠할까. 거대언어모델(Large Language Model, LLM)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생성하도록 훈련된 인공지능을 통칭한다. LLM을 활용하여 법률문서를 작성하거나 요약하는 업무가 이미 실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상당한 노동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일상적이고 정형적인 법률문서 등 작성과 관련한 변호사의 업무가 점차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수 있을 개연성이 언급되고 있다. 심지어 경험 많고 노련한 기장(pilot) 변호사에게 기대할 수 있는 특정 케이스의 과거 소송 대비 유사성 판단 등과 같은 업무마저도 생성형 인공지능이라는 부기장(co-pilot)에게 상당 부분 위임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과거에 일을 행해왔던 방식을 분석하는 유형 인식(pattern recognition)이야말로 인공지능이 자연스럽게 학습을 강화해 나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의 업무는 어떠한가. 통계를 수집하고 광범위한 데이터와 정보를 활용하는 작업을 기본으로 하는 경제분석 업무야말로 인공지능이 인간 이코노미스트보다 정확성, 신속성, 효율성 등 면에서 우위에 설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챗GPT를 활용하여 작성한 경제분석 보고서가 정책결정자들에게 속보성 있는 참고자료의 하나로 활용되는 모습도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가히 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혁명적인 노동시장의 변화가 시작됐음을 실감하는 국면에 진입한 것이다.
지난달 초 영국 블레츨리(Bletchley) 파크에서 열린 제1회 인공지능 안전 정상회의(AI Safety Summit)에서는 한국, 미국, 영국 등 28개국과 유럽연합(EU)이 참가하여 인공지능 관련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국제협력을 다짐하는 블레츨리 선언을 발표한 바 있다. 각국 정부가 인공지능 안전의 감시자 역할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타당한 시점이다. 강력한 과학기술은 위험을 수반하며 이러한 위험은 사람들이 스스로 해결하도록 자유방임에 맡기기보다는 집합적으로 관리되어야 할 당위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안전 패러다임만으로는 당면한 인공지능의 시대에 충분히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에 관한 정책과 제도는 좋은 점을 장려하고 나쁜 점을 억제하는 것과 같은 단순한 차원의 이슈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무엇이 좋고 나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할리우드 영화계의 파업은 일반적인 노사분쟁 이상의 이슈를 제기했다. 인공지능이 재능 있는 인간과 맞먹는 대본을 작성할 수도 있고 인간 배우의 외모와 음성을 대체할 수도 있는 상황은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한편으로 영화 소비자들에게는 새로운 문화의 지평을 제공할 수도 있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소비자가 인공지능 TV에 명령을 내려 할리우드 수준의 영화를 장르와 주제 등을 선택하여 제작할 수 있는 미래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소비자가 이미 만들어진 할리우드 메뉴만을 주문하는 대신에 자신만의 독특한 미적 세계를 추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영화의 목적이 배우와 작가를 대우하고 그들에게 보상을 제공하는 것인지 소비자의 미적 삶을 풍성하게 하고 문화적 발전을 불러일으키는 것인지는 결코 쉬운 질문이 아니다. 단순히 안전이라는 단어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는 인류의 삶에 관한 가치 판단 이슈이자 옳음과 그름이 아닌 옳음과 옳음 사이에서의 선택 이슈가 된다.
오픈AI의 재편된 이사회가 이에 대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명백하다. 인류가 스스로 만들어 가고자 하는 문명의 방향과 형태에 관한 인류 공동체의 치열한 고민과 근원적 성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023년은 여러모로 인공지능이 크게 주목받은 해이자 애덤 스미스 탄생 3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는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언급하며 자유시장주의를 주창했고 도덕감정론에서 공감할 수 있는 룰과 질서를 강조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자유방임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의 또 다른 작동원리인 공감의 룰이 전제되어야 함을 말했다. 공정한 관찰자로서의 인간 본성이 공감할 수 있는 룰을 통해 더 많은 부와 자유, 행복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이러한 인간 본성이 올바른 질서가 지배하는 세계를 만드는 단초가 된다는 애덤 스미스의 사상은 인공지능의 시대와 함께 추구할 인류 문명의 모습에 대한 성찰과 관련한 사회계약의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인공지능의 시대에 애덤 스미스를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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