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는 웃고 완제품은 운다…삼성 수직계열화 딜레마

김윤경 IT전문기자

yoon@kpinews.kr | 2026-02-03 15:42:52

메모리부터 완제품까지 만드는 삼성전자
반도체 호황이 가전 등 완제품 원가 압박
올해도 HBM 우선, 완제품은 '각자 도생'
이해 충돌과 성과급 논란까지…진통 예고

삼성전자가 역대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 달성에도 맘껏 웃지 못하고 있다. 수익 효자인 '메모리' 호황이 삼성전자의 수직계열화 전략을 직격한 탓이다. 메모리 가격이 오르면 반도체(DS) 부문은 영업이익이 증가하지만 PC와 스마트폰(MX), 영상(VD)·가전(DA)은 원가 부담이 커져 이해충돌이 발생하는 게 문제다.

 

메모리 수급 불균형과 사업부별 희비교차가 예고되며 삼성전자의 딜레마는 점차 깊어질 전망이다.

 

▲ 반도체 부품부터 스마트폰 완제품까지 모두 만들어 판매하는 삼성전자의 수직계열화 전략이 딜레마에 빠졌다. [장한별 기자]

 

삼성전자의 핵심 전략인 수직계열화는 원자재 제조부터 상품 판매를 통합 운영하는 것이 골자다. 이병철 창업회장이 1983년 '도쿄 선언'에서 64K 디램(DRAM) 개발을 공언하며 처음 구체화됐다.

도입 취지는 원가 경쟁력 확보와 안정적 공급망 구축. 자체 생산한 부품으로 원가 경쟁력을 높이고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직접 만들어 완제품 생산의 안정성을 도모하는 게 목적이다. 공고한 내부 협력으로 정보 유출을 막고 시장에 적기 대응하는 것 또한 수직계열화의 목표다.

성과는 달콤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완제품간 '밀어주고 끌어주는' 전략 덕에 메모리 반도체와 TV, 스마트폰 시장에서 '세계 1위'라는 성공 신화를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사업부간 이해 충돌과 내부 갈등이 생기면서 수직계열화 전략에도 이상기류가 발생했다. 반도체가 유례 없는 호황이나 불황을 겪을 때마다 한쪽은 웃고 다른 쪽은 웃지 못하는 진퇴양난의 딜레마도 이어졌다.

 

▲ 삼성전자의 2025년 1분기와 4분기를 비교한 사업부별 영업이익률 그래프. [챗GPT·이수민 기자]

  

삼성전자의 2025년 4분기 실적에서도 문제는 드러난다. AI(인공지능) 반도체 호황과 디램 가격 급등이 반도체와 완제품 사업부의 실적을 갈랐기 때문이다. 반도체 영업이익률이 1분기 4.4%에서 4분기 37.3%로 상승하는 동안 모바일과 영상 및 가전은 메모리 가격 상승이 원가 부담으로 이어졌다. 같은 기간 모바일의 영업이익률은 12.9%에서 6.5%로, 영상 및 가전은 3.5%에서 - 4.1%로 악화됐다.


올해도 AI(인공지능) 반도체 수요가 공급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사업부별 명암은 뚜렷해질 전망. 반도체는 AI 응용 수요에 대응, 공격적 영업을 예고한 반면 완제품은 '극강의 원가 압박'을 이겨낼 해법 마련에 부심하는 모습이다. 일부 중저가 제품은 출시 보류까지 예상된다.


삼성전자가 지난달 29일 진행한 실적발표회에서 MX사업부 조성혁 부사장은 "2026년은 원가 부담 가중으로 어려운 업계 환경이 예상된다"고 강조했고 시스템 LSI 사업부 신승철 부사장은 "주요 부품의 가격 상승으로 중저가 스마트폰 출하량이 둔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반도체 호재가 완제품 원가압박…수직계열화의 역설


시장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수직계열화의 역설에 직면했다고 본다. 메리츠증권 김선우 애널리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메모리 판매가격 급등은 DS 부문에는 호재이나 이를 매입해 완제품을 만드는 DX 부문에는 심각한 재료비 상승 압박으로 작용"해 "반도체 부문의 실적 서프라이즈가 내부의 원가 부담을 가중시키는 수직계열화의 역설을 발생시킨다"고 분석했다.

현대차증권 노근창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가 AI반도체 주도권 탈환을 위해 완제품의 단기 실적 희생을 용인했다"며 "자원 배분이 HBM4와 선단 공정에 집중되면 범용 디램 라인의 전환 가속화가 불가피"하고 "이는 결과적으로 완제품 부문이 감내할 '공급 부족과 고단가' 기회비용이 된다"고 지적했다.


현재 삼성전자의 각 사업부들은 각기 독립된 회사처럼 운영되고 있다. 같은 회사라 해도 가격 특혜를 줄 수 없고 사업부별 실적과 평가는 철저히 분리해 운영한다. 

 

'한 지붕 다른 가족'이 고착화된 상황에서 삼성전자도 고민이 많다. 메모리 가격 인상과 원가 압박이 비단 삼성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가족도, 남도 아닌' 다른 사업부들과의 협력을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과제다. 부품을 외부서 조달하는 경쟁사들은 '협상력'이 관건이지만 삼성전자는 한 쪽의 이익이 다른 쪽의 부담이 되는 딜레마를 넘어서야 한다.

 

이해 충돌과 성과급 논란까지…진통 예고

 

삼성전자는 HBM 주도권 탈환에 주력하며 완제품은 '각자도생' 원칙을 이어갈 방침이다. 시설투자도 반도체 선단 공정 전환에 집중한다. 박순철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지난 실적발표회에서 공개한 올해 경영 기조는 '수익성 확보 중심'과 '고부가 제품 중심 실적 개선'이다.

 

완제품의 희생은 예고돼 있다. HBM 라인을 늘릴수록 범용 디램 공급은 제한되며 가격이 오르기 때문이다. 시장분석기관인 트렌드포스는 HBM이 범용 디램(DDR5)보다 약 5배의 프리미엄을 형성하지만 동일 용량 DDR5 대비 약 3배 이상 웨이퍼 용량을 소모해 메모리 공급 부족을 만든다고 분석했다.

 

사업부별 희비에 따라 직원 개개인의 성과급이 달라지는 구조에서 내부 진통은 자명한 상황.노사갈등이 심화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지난달 삼성전자에 첫 과반노조가 출범하면서 성과급을 포함한 보상체계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해 충돌과 성과급 논란은 과거에도 삼성전자 노사 갈등의 주요 테마였다. 지난 2024년 삼성그룹 노동조합 연대는 "부품(DS) 사업부의 이익을 방어하고자 완제품(DX) 사업부의 희생을 강요하는 구조"라고 지적하며 "땀 흘려 일하고도 성과급 0%를 통보받은 노동자들은 더 이상 회사를 신뢰할 수 없다"고 비판한 바 있다.


같은 해 1월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소식지에는 '반도체 호황기에는 반도체만의 성과라며 가전을 소외시키고 반도체 적자 시기에는 전사적 위기라며 고통 분담을 강요한다'며 '가전 사업부 성과급 0~7% 제시'를 비난하는 글이 실렸다.


삼성 출신 한 반도체 전문가는 3일 KPI뉴스와 통화에서 "DS는 메모리 가격 인하를 우려해 디램 생산량을 천천히 늘리고자 하고 MX는 삼성 파운드리에서 모바일 AP를 생산하지 않으려 한다"며 "사업부별 이기주의가 팽배한 상황에서 경영진의 판단과 조율이 어느 때보다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KPI뉴스 / 김윤경 IT전문기자 yoon@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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