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디지털 통상 압박…개인정보보호 후퇴·시장 잠식 우려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 2025-04-22 16:48:04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협정에 반영하려 할 것"
연방 개인정보보호법 없는 美, 韓 규제 낮아질 수도
서버 현지화 요구 금지하면 美 빅테크 진입 확대
구글은 트럼프 취임 직후 한국 지도 반출 재요청

관세뿐 아니라 미국의 디지털 통상 압박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개인정보 보호 수준이 뒷걸음질치고 관련된 국내 IT 시장이 잠식되는 등 피해 가능성이 제기된다.

당장 구글의 한국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 요구가 '발등의 불'인데, 한미 협상에서 관세를 낮추는 카드로 논의될 지 주목된다. 

 

22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미국 요구는 △국경 간 데이터 이전 보장 설비 현지화 요구 금지 소스코드 공개 요구 금지 플랫폼 및 기타 중개자의 책임 제한 조항 등으로 요약된다. 

 

▲ 영국 런던의 구글 사무실에 로고가 걸려있는 모습 [뉴시스]

 

이를 위해 한미 디지털 무역협정 협상을 시작해 미국 기업들의 요구사항을 공식적인 협정문으로 반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 1기 때인 2019년 맺어진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에 포함된 요구 사항들이다. 같은 해 만든 미일 디지털 무역협정에도 유사한 내용이 들어갔다. 

 

미국 기업들의 로비력과도 연관돼 있다는 분석이다. 구글, 아마존, 메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5개 기업의 로비 지출액 규모는 2018년 6500만 달러(약 920억 원)였다. 지난해에는 1억 달러(약 1400억 원)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요구가 더 강해졌고 관세 협상과 연계될 수 있다. 연구원은 "AI 분야에서 미국이 기술 리더십을 유지하려면 AI 학습에 필요한 대규모 데이터의 확보와 자유로운 활용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경 간 데이터 이동 보장, 현지화 요구 금지, 소스코드 및 알고리즘 보호 등을 포함한 디지털 규범을 양자 또는 다자 무역협정에 반영하고자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미 간 AI 발전 수준과 데이터 관리 체계가 달라 한국의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대표적으로 국경 간 데이터 이전을 허용하면 한국의 민감 정보나 고부가가치 데이터가 미국 기업이 제공한 클라우드에서 저장·분석될 수 있다. 미국 기업 입장에서는 AI 모델 성능을 높이는 데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기업이 미국 정보에 접근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연구원은 "미국은 자국의 공공·민감 데이터는 자국 내 보안구역에서만 처리하는 원칙을 점점 더 강화하고 있다"면서 "학습용 데이터, 의료기록, 유전체 데이터, 에너지 소비·인프라 운영 정보 등은 '해외 기업이 접근하거나 클라우드로 이전하는 순간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다"고 짚었다. 

 

또 서버 현지화 요구를 할 수 없게 될 경우 글로벌 빅테크의 한국 진입장벽이 낮아져 미국의 클라우드 사업자 진입이 강화될 수 있다. 국내 클라우드 산업,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분야 등에서 시장 잠식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개인정보 보호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연구원은 "한국은 유럽연합(EU)과 유사한 정보 주체 동의 중심 구조의 엄격한 개인정보보호법을 유지하고 있는데 반해 미국은 연방 차원의 개인정보 보호법이 없다"고 전했다. 연구원은 "침해 시 사후적 구제 시스템으로 자유로운 정보 이전이 디폴트값(기본)"이라며 "미국이 원하는대로 개인정보를 포함한 정보 이전의 자유를 보장할 경우 개인정보 보호가 후퇴하고 EU와의 적정성(동일한 규제 수준) 결정 유지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앞서 구글은 지난 2월 국토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에 고정밀 지도 데이터의 해외 반출을 요청했다. 2007년과 2016년에도 같은 요구를 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안보 등 이유를 들어 불허해 왔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다시 들고 나온 셈이다. 

 

정치권에서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성급한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문진석 의원은 지난 9일 국회 국토교통위 회의에서 "대통령이 없는 상태에서 이렇게 안보에 중대한 문제가 있는 지도를 반출하는 것이 맞느냐"고 따졌다.

박상우 국토부장관은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국방부, 국가정보원, 국토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기관이 논의 중"이라며 "결론을 낸 게 아니다. 당연히 국익을 중심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답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미국 측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오는 24일 가질 '한미 2+2 통상 협의'에서 이 문제가 다뤄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 권한대행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허심탄회한 대화와 협력을 바탕으로 상호이익이 되는 해결책(win-win)을 마련하는 물꼬를 틀 것"이라고 밝혔다. 
 

KPI뉴스 /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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