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플레이스'로 떠오르는 을지로
황정원
| 2018-09-26 10:00:21
예스러움과 젊음이 조화를 이루는 거리로 변신
을지로 3가역 3번 출구로 나오면 70~80년대 풍의 허름한 건물들이 즐비하다. 도로변엔 아크릴 매장, 공구상, 인쇄소, 철물점 등 옛 정취를 풍기는 가게들이 대부분이다.
과거 을지로는 소규모 제조업 공장이 밀집됐던 곳이다. 본래 이곳에 터 잡고 있던 이들은 서울의 중심에서 70년대 산업화를 이끌던 지역 소상공인들이다. 90년대 들어 산업의 흐름이 바뀌면서 과거의 호황은 빛이 바래갔다. 최근까지도 을지로는 '서울 아트시네마'(구 서울극장)와 늘 인파로 붐벼온 평양냉면 맛집 '을지면옥'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상권이 없었다.
과거의 호황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을지로의 낡은 골목 곳곳에 젊음의 숨결이 퍼지고 있다. 을지로 거리 이면에 위치한 4층 남짓의 저층 건물에 개성 넘치는 가게들이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20~30대 청년들이 운영하는 상점들이다.
을지로는 그야말로 '조용히' 떴다. 오로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이름을 알렸다. 을지로의 '핫플레이스'들은 대개 간판이 없다. 또 노포(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들 위층이나 사이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지도를 보고도 쉽게 찾기 힘들다. 숨어있는 가게를 찾고자 작정하고 온 것이 아니라면, 있는지도 모른 채 지나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힙'한 음악들을 12인치 바이닐(LP)로 소개하는 '클리크레코드', 주얼리 디자이너와 패션 디자이너가 함께 문을 연 카페 '호텔 수선화', 아티스트, 사진가, 디자이너 등 청년 다섯이 모여 만든 빈티지샵 '우주만물', 때때로 인디밴드가 공연하는 펍 '신도시' 등 여러 생기 넘치고 개성 있는 상점들이 을지로 골목에 자리 잡고 있다.
을지로 3·4가역 일대의 상권이 뜬 이유는 가로수길, 연남동, 홍대 등 다른 지역 상권에 비해 낙후돼있어 권리금이 낮고 임대료가 저렴하기 때문이다. 건물마다 차이가 있지만 1층을 기준으로 20평 건물 임대료가 월 120만~200만원 안팎이다. 보증금은 없거나, 월세의 열배 정도다. 2~4층으로 갈수록 더 싸다. 을지로 주변 종각과 광화문 일대의 평균 임대료가 1평당 각각 19만원, 13만원 정도에, 1~2억원대의 권리금을 내야하는 것에 비하면 꽤 저렴한 수준이다.
또 한가지 이유가 있다. 원래 이 지역 일대는 재개발이 예정돼 있던 곳이다. 그러나 재개발 추진이 전반적으로 지연됐다. 그 과정에서 을지로 일대에 빈 건물들이 생겨났다. 이에 서울 중구청은 공실을 임대해 청년 예술가들에게 내어준 후, 임대료를 지원했다.
이로 인해 세운상가와 을지로 3·4가 일대 인쇄소 골목 주변에 예술가들의 디자인룸, 스튜디오, 전시장 등 복합예술공간이 생겨났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일부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업장 근처에 카페나 선술집 등을 창업하면서 구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게 됐다.
을지로 일대가 유동인구가 늘어나면서 가로수길이나 홍대, 연남동처럼 임대료가 오를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아직은 이른 우려인 것으로 보인다. 을지로 일대 건물은 오랫동안 터를 잡고 있는 영세상인들이 많아 자리가 쉽게 나지 않는다. 골목 건물 3~4층에 빈 공간이 생길 때만 카페나 식당들이 조금씩 채워진다. 가로수길이나 연남동처럼 중심이 되는 거리도 없다. 을지로가 한꺼번에 카페와 식당 등으로 채워지기 어렵다는 얘기다.
을지로 일대에 카페를 운영하는 한 청년은 "주변에서 월세가 다소 올랐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크게 변화는 없다. 우리 가게 역시 작년과 동일한 금액으로 재계약했다"고 말했다.
KPI뉴스 / 황정원 기자 hjw@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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