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혜경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일본 탓만 할 일 아냐"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 2024-08-01 15:45:26
"日, 세계인 대상 역사 왜곡으로 세계유산 등재 활용"
"강제동원위 문 다시 열고 후속 연구 세대 양성해야"
"日전쟁 유적 전수 조사하고 세계유산 등재 추진해야"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동 현장인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이 지난달 2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그러나 '강제 동원' 사실을 명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등재되고 한국 정부가 이를 용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KPI뉴스는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에게 현 상황에 대한 의견과 대책을 물었다. 정 대표는 이 분야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로, 2004년부터 11년 동안 국무총리실 산하 '대일항쟁기 강제 동원 피해 조사 및 국외 강제 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이하 위원회)에서 일했다.
인터뷰는 1일 인천 부평역사박물관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ㅡ2015년 군함도 일부 지역에 이어 또 강제 노동 현장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9년 전과 비교한다면.
"2015년에 강제성을 큰 틀에서 인정하게 하는 성과가 있었다면 이번엔 일본이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구체적 실천 부분을 끌어내는 진전은 있었다. 이렇게 말하는 건 사도광산의 경우 2015년에 비해 대응할 수 있는 조건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5년의 해당 지역들은 조선인만이 아니라 연합군 백인 포로와 중국군 포로가 같이 동원된 곳이다. 당시 위원회에서 일했는데, 백인과 중국군 포로를 앞세우는 전략을 세웠다. 유네스코 회원국들을 설득할 때 이 문제가 한일 (갈등) 관계로 비치면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도광산엔 연합군 포로가 동원된 사례가 없다. 또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활용할 수 있었던 2015년과 달리 사도광산 피해자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2015년의 해당 지역들과 달리 니가타현은 우익이 강한 곳이라는 것도 어려운 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전시 시설 만들기, 노동자 숙소 앞에 게시판 설치, 추도식 개최라는 구체적 실천 3가지를 하기로 한 점에서 한 걸음 나아간 부분이 있다. 이제 그 3가지에 우리가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내용을 반영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ㅡ2015년 일본은 강제성을 인정하는 듯하다가 세계유산 등재 후 부정했다. 그럼에도 이번에 한국이 용인해준 것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의구심을 갖고 있다.
"우려는 있다. 2015년 일본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등재 발표 직후 외무대신이던 기시다 후미오 현 수상과 아베 신조 당시 수상이 강제성을 공식 부인했다. 그런 일본이 어떻게 약속을 지키게 할 것인가는 한국 정부가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사안의 하나다.
많은 분이 '그럼 반대하면 되잖아'라고 하지만, 이건 한국과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원국들을 설득해야 하는 문제다. 표결로 가면 유리하다는 보장이 없다."
ㅡ일본은 2007년 사도광산 등 근대화 산업 유산군 66개를 발표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같은 문제가 계속 생길 게 분명한데,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일본은 도시 재생과 지역 경제 부흥을 위해 이 등재를 추진하기 시작했는데, 지역민의 호응이 상당히 크다. 그리고 일본 정치권에서 역사 교과서보다 효율적이고 세계인을 대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역사 왜곡 방법으로 이 등재를 활용한다고 생각한다.
66개 유산군에 대해 정확히 파악해 지속적‧일관적‧중장기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다음 등재 추진 대상은 구로베가와 댐이나 아시오 동광산으로 예상된다. 이대로 가면 사도광산 건보다 훨씬 대응하기 힘들 것이다. 유네스코는 연구 성과를 중시하는데 구로베가와 댐, 아시오 동광산 모두 조선인 강제 동원 관련 연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ㅡ2015년 위원회가 해산된 후엔 이 문제를 전담하는 기관이 사실상 없지 않나.
"그게 없는 데다가 위원회 때 모았던 자료가 행안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국가기록원으로 흩어졌다. 2015년에는 청와대에서 '이런저런 자료를 달라'고 하면 바로 대응할 수 있었다. 생존자 구술 인터뷰 2000건 정도가 담긴 전산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자료가 어디로 갔는지 몰라 찾아다녀야 하는 상황이다.
위원회 문을 다시 열어 자료 센터를 복구해야 하고 후속 연구 세대를 양성해야 한다. 역사 쪽만이 아니라 유네스코 전문가도 키워야 한다. 정부 돈으로 대학원생들을 세계유산위원회에 참관시켜 전문가를 양성하는 일본과 달리 우리는 유네스코 전문가도 태부족이다."
ㅡ더 필요한 것은.
"일제 전쟁 유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제가 찾은 것만 해도 한반도에 8800개 정도 된다. 일본과 달리 우리는 전수 조사도 하지 않고 부수려고만 한다. 부평의 일본 육군 조병창도 그중 하나다. 일제 때 무기 공장이었고 해방 후 미군이 주둔한 곳인데, 인천시의 철거 대상이다.
이런 데를 없애면 제일 좋아할 곳은 일본이다. 부수지 말고, '여기서 나온 무기가 중국 민중을 죽이는 데 쓰였다' 같은 전체 역사를 담아 세계유산에 등재되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가해국에게 '세계유산은 이렇게 등재하는 거야'라고 보여줘야 한다.
가해국은 스스로 성찰할 힘이 없다. 피해국이 자료를 다 드러내는 것을 통해 성찰의 방향을 잡아줘야 한다. 우리는 위원회 때 자료를 모아 그렇게 하려 했는데, 위원회 문이 닫히지 않았나. 그러면 가해국은 굳이 나서 반성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가해국 탓만 한다."
ㅡ사도광산 얘기를 조금 더 하면, 피해자는 물론 그 가족도 수십 년간 고통받지 않았나.
"사도광산의 진폐증은 끔찍했다. 피해자들은 진폐증 때문에 1970년대 대부분 사망했다. 살아 있을 때는 생업에 종사하지 못했다. 많은 유족은 '아버님이 돌아오신 후 일을 못했다'고 말한다. 경제적 어려움이 컸고 학교를 제대로 다니기 어려웠으며 가난이 대물림됐다는 얘기다. '강제 동원? 79년 전(1945년)에 끝난 문제 아냐?', 이렇게 보면 안 된다. 현재 진행 중인 문제다."
ㅡ못다 한 얘기가 있다면.
"이번에 3가지 구체적 실천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사실과 자료의 힘이다. 일본 시민 중 소수이지만 사실과 자료의 힘을 축적하는 데 헌신한 이들이 있다. 이들은 사도광산에서 일한 사람들의 명부를 발굴하고 한국에 와서 피해자를 찾아내 동영상을 찍고 피해자들과 그 가족까지 사도에 초청해 구술을 할 수 있게 해줬다. 우익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사도광산에 관한 논문을 쓴 히로세 테이조 같은 사람도 있다. 이런 일본인들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KPI뉴스 / 김덕련 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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