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전시회…'캔버스에 다시 쓴 문학'

장한별 기자

| 2019-01-04 15:20:55

3~31일 '국회 Art Gallery 1월 작품전'
미술과 문학이 만나 새로운 의미 창출

문학을 그림으로 감상하면 어떨까. 예술의 각 분야는 각개 특성과 규칙 안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만 때로는 경계를 넘어 다른 장르와 만나고 부딪히며 새로운 가치를 빚어내기도 한다.


그런 이색 전시회가 국회에서 개막했다. 지난 3일부터 이달말까지 열리는 '국회 Art Gallery 1월 작품전'은 미술과 문학이 만나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내는 자리다. 박영근 작가는 문학작품 속 수많은 정보 속에서 가장 강렬하게 남은 이미지를 재구성하여 캔버스에 표현했다. '캔버스에 다시 쓴 문학'인 셈이다.  

 

예를 들어 작가는 김동리의 소설 '화랑의 후예'속 '황 진사'를 근엄과 고독이라는 꽃말의 '엉겅퀴'를 통해 인물의 성격을 표현했다. 또 윤동주와 박두진 시인의 대표적 작품 역시 함축적인 하나의 이미지로 나타내 작품 속 작가의 생각을 관람객이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뒀다. 

 

박 작가는 "텍스트에 머물렀던 문학작품을 미술의 영역으로 불러내 개성적 시선으로 표현한 이번 전시를 통해 예술장르의 상호소통이 어떻게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하는지 확인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 작가는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성신여대 서양화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다음은 전시작품과 해당 문학작품.


진사모자-엉겅퀴(고독)

 

▲ 진사모자-엉겅퀴(고독). 90.9×72.7, 캔버스에 아크릴릭, 2013
 
"일재, 여기 젊고 돈 있는 색시가 있는데 장가 안들라우?"
"아 그럼야 여북 좋갔수, 규수 나인 몇 살인고....집안도 이름 있구...?" 그는 연방 입이 벌어져 침을 흘리며 두 눈에 난데없는 광채를 띠고 숙모님께로 대느는 판이었다.

"과부래야 이름이 아깝지 뭐, 이제 나이 삼십도 못 된 걸...." 
숙모님도 신명이 나는 모양을 이렇게 자람삼아 말한즉, 황진사는 갑자기 낯빛이 확 변하며,

"아 규, 규수가, 시방 말씀한 그 규수가 과, 과, 과부란 말씀이유?"

한순간 침묵이 흘렀다. 황진사의 닫힌 입 가장자리에 미미한 경련이 일어나며, 힘없이 두 무르팍 위에 놓인 그의 두 손은 불불불 떨리고 있었다....

"황후암 육대 손이 그래 남의 가문에 출가했던 여자한테 장가들다니 당하기나 한 소리요...선생도 너무나 과도한 말씀이유." 그는 분함을 누르느라고 목소리에 강한 굴곡이 울리었고 낯에는 비통한 오뇌의 경련이 일어나 있었다.

- 김동리, <화랑의 후예> 중
 

어서 너는 오너라

 

▲ 어서 너는 오너라. 45.4×53, 캔버스에 유화, 2016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살구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너이 오래 정들이고 살다 간 집, 함부로 짓밟힌 울타리에 앵도꽃도 오얏꽃도 피엇다고 일러라. 

기름진 냉이꽃 향기로운 언덕, 여기 푸른 잔디밭에 누어서, 철이야 너는 너는 늴 늴 늴 가락 맞춰 풀피리나 불고, 나는, 나는, 나는, 두둥싯 두둥실 붕새춤 추며, 막쇠와 돌이와, 복술이랑 함께, 우리, 우리, 옛날을, 옛날을, 딩굴어 보자.

-박두진 <어서 너는 오너라>

 

십자가


▲ 십자가. 60.6×72.7, 캔버스에 유화, 2017

 
쫓아오든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 놓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가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휫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왓듯 사나이,
행복한 예수·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목아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여나는 피를
어두어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윤동주 <십자가>(1941)

 

흰 장미와 백합꽃을 흔들며

 

▲ 흰 장미와 백합꽃을 흔들며

 

눈 같이 흰 옷을 입고 오십시오.
눈 위에 활짝 햇살이 부시듯 그렇게 희고 빛나는 옷을 입고 오십시오.
달 밝은 밤 있는 것 다아 잠들어 괴괴한 보름밤에 오십시오. 

 

빛을 거느리고 당신이 오시면 밤은 밤은 영원히 물러간다 하였으니
어쩐지 그 마지막밤을 나는, 푸른 달밤으로 보고 싶습니다. 

 

푸른 월광이 금시에 활닥 화안한 다른 광명으로 바뀌어지는,
그런,장엄하고 이상한 밤이 보고 싶습니다. 

 

속히 오십시오. 정녕 다시 오시마 하시었기에,
나는, 피와 눈물의 여러 서른 사연을 지니고 기다립니다. 

 

흰장미와 백합꽃을 흔들며 맞으오리니, 반가워,
눈물 머금고 맞으오리니, 당신은, 눈 같이 흰 옷을 입고 오십시오. 

 

눈 위에 활작 햇살이 부시듯,
그렇게, 희고 빛나는 옷을 입고 오십시오. 

 

 KPI뉴스 / 장한별 기자 star1@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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