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 이동통신과 ‘이통사 장학생’
김기성
bigpen@kpinews.kr | 2023-11-23 15:03:16
제4이통, 수익이 날 수 없는 구조로 사업자 모집
윤석열 정부의 4이통 약속 퇴색 ‘이통사 장학생’ 때문?
이제는 없겠지만, 정확히 말해서 없어졌기를 기대하지만, 십수 년 전만해도 ‘삼성 장학생’, ‘LG장학생’ ‘이동통신사(이통사) 장학생’, ‘정유사 장학생’과 같은 ‘OO 장학생’이라는 말이 있었다.
특정 업계나 업체를 취재하는 기자 또는 이 업체나 분야를 담당하는 공무원 그리고 관련 산업을 연구하는 교수나 전문가 가운데 해당 업체나 업계에 대해 유독 우호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인사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이들은 해당 업체나 업계의 이익을 해치는 사회적 주장이 제기되면 앞장서서 반대논리를 제공하거나 보도하고, 정책으로 채택되지 않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소위 ‘촌지’를 받거나 향응을 대접받고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대가가 개입돼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업계를 위하고 경제를 위한다는 소명의식이 투철한 경우가 많았다. 한마디로 철저하게 기업 친화적 논리로 무장한 사람들이었다.
선물, 향응, 연수, 학회, 세미나 등을 통해 ‘장학생’ 육성
이들이 ‘OO장학생’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대동소이하다. 처음에는 홍보실이나 비서실을 통해 접촉이 시작되면 기업에서는 될성부른 인물에 대해서는 집중적으로 관리에 들어간다. 통상적으로 명절의 선물이나 휴가철의 ‘촌지’에서 시작한다. 그러다가 자기 기업과 관련된 민원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해결해 주기도 한다.
또 언론재단 등을 통해 해외 연수, 해외 유학 등의 기회를 제공하면서 접촉의 심도를 더해가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연수나 유학을 마친 뒤에는 이들만의 모임을 만들어 1년에 한두 번 총수나 기업 고위 인사들과 자리를 함께하면서 해당 기업의 논리에 빠져들게 만든다.
이러한 직접적 관리를 꺼리는 대상에 대해서는 ‘학회’, ‘세미나’ 등의 수단이 활용된다. 또 전문직에 대해서는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직접 돈벌이의 기회를 제공하면서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공을 들인다.
‘OO 장학생’, 업계의 논리 대변하며 주고·받는 구조
이렇게 기업의 논리에 익숙해지면, 그 논리가 자기의 소신이 되기 마련이다. 해당 업계에 신규 사업자가 진출하는 것을 막는데 앞장서기도 하고, 시장을 개방하는데 반대논리를 강도 높게 펼치게 되는 것이다.
많지는 않지만 그러한 ‘OO장학생’ 가운데 일부는 아예 해당 업체나 업계로 직장을 옮겨 승승장구하기도 하고 또 일부는 퇴직 이후 ‘사외 이사’, ‘고문’ 등의 직함으로 노후를 의탁하기도 한다. 보이지 않고 딱히 연결 짓기는 어렵지만 ‘주고·받는 사이’가 형성되는 것이다.
제4이통, 28GHz만으로는 도저히 수익을 낼 수 없어
이러한 ‘OO장학생’은 이제는 많이 줄어들었거나 없어졌으리라 기대한다. 우리 사회가 많이 투명해진 데다가 김영란법으로 대표되는 감시 체계도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구시대의 ‘OO장학생’ 망령을 떠올리는 것은 지금 추진되고 있는 제4 이동통신사 때문이다.
정부는 다음 달 19일까지 제4 이동통신사 출범을 위한 주파수 할당 신청을 받는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기존 이통3사의 이해가 고스란히 반영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28GHz 대역만 대상으로 하고 있다. 전문가 누구에게 물어봐도 이 주파수만으로는 돈을 벌 수 없다고 한다. 2.3GHz 같은 중대역 주파수가 당연히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28GHz를 진정성 있게 투자하면 중대역 주파수를 추가 할당하겠다고 한다. 그렇지만 어떤 기준으로 언제 추가할당할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그렇다면 제4이통에 신규 진입하는 사업자는 정부 말만 믿고 수천억 원을 투자해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리고 많이 봐 왔지만 정권 바뀌고 사람 바뀌면 문서화 하지 않은 약속은 헌신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 정부의 제4이통,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X), 이통3사 이익 유지(O)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기 호기롭게 제4이통을 약속했다. 그것도 가계 통신비 부담을 줄이는 차원에서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 제4이통은 기존 이통3사에 대항하는 메기로서의 새로운 이동통신사가 아니라 기존 이통3사가 쓰다가 버린 28GHz를 치우는 청소부 역할밖에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제4이통이 왜 이렇게 변질됐을까? 이러한 구도로는 제4이통이 출범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담당 공무원들은 정말 모르는 일일까? 그리고 만약 눈 먼 사업자가 제 4이통을 시작하더라도 가계 통신비 부담을 줄일 수 없고 기존 이통3사와의 사이에서 경쟁을 유발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까? 그리고 고주파수 대역의 5G 이동통신이 장차 우리나라 산업 발전에 백본(backbone·중추)이 될 거라는 예측을 모르고 있을까?
아마도 알고 있을 거라고 추측한다. 그런데 이상한 논리로 이통3사를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그래서 ‘이통사 장학생’이라는 단어가 떠오른 것이다.
KPI뉴스 / 김기성 대기자 bigpen@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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