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란의 토닥토닥] '부모'는 '보모'가 아니야…우리 아이 자립심 키우는 법

UPI뉴스

| 2019-06-03 15:54:13

숲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숲을 거닐어보니 몇몇 식물들은 꽃이 피고 수정하면 씨를 멀리 퍼트려 날려 보낸다고 한다. 씨가 부모의 바로 밑에 떨어지면 그 씨는 부모와 햇빛, 양분 등을 두고 경쟁하게 돼서 잘 자랄 수 없기 때문이란다. 동물은 새끼를 낳고 생존능력이 생길 때가 되면 곧 떠나보내는 일이 빈번하다. 새끼를 키우며 근심하거나 안달하지 않는다. 생긴 대로 타고난 대로 키우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사람은 자녀를 자기 뜻대로 키우려 하고 성공에 대한 집착을 하곤 한다. 때로는 자녀를 자신이 못 이룬 꿈을 대신해 줄 대리인으로 여긴다. 자녀가 마음껏 자기 하고픈 대로 행동하고 스스로 시도하게 놔두지 않는 부모가 많다.


▲ 자립심은 삶을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능력이자 스스로 책임지는 태도다. 청소년기에 작은 문제부터 스스로 해결하는 태도를 기르도록 해야 한다. [셔터스톡]


- P양은 과학고를 조기 졸업하고 명문 대학에 진학한 수재이다. 과제이행은 물론 학교에서 평가하는 모든 항목에서 늘 A+를 도맡아 차지했다. 그런데 대학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어 그녀는 갑자기 학교를 안 가겠다고 선언했다. 대학 공부가 재미없고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게 이유였다. 집에서 자기가 하고픈 대로 살겠다고 했다. 그렇게 집에서 생활한 지 이 년쯤 지나자 부모는 '치료를 받아야 하나?'하고 걱정되기 시작했다. P양은 집에서 청소, 요리, 빨래 등을 하며 도무지 바깥에는 관심이 없었다. 부모는 답답했지만 중고등학교 때 꽉 채워진 스케줄을 완벽히 소화하던 딸의 모습을 회상하며 '언젠가는 다시 되돌아오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지냈다. 뒤늦게 그녀의 부모는 자녀에게 지나친 학업 부담을 주고 억압했음을 깨닫고 딸의 생활을 존중하며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 40대 후반인 L씨는 일정한 직업을 가져 본 적이 없다. 가끔 알바를 하거나 프리랜서로 잠깐 일을 해 돈을 버는 정도다. L씨의 주 수입원은 연금 생활자인 부모가 주는 용돈이다. 친구들은 사춘기자녀 때문에 고민하는 중년이 되었는데 L씨는 아직도 부모의 집에 거주하며 취미생활에 힘쓴다. 평소 부모와 얼굴을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 낮밤이 바뀐 생활을 하기에 식사도 부모와 같이하지 않는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곧바로 취업이 안 된 탓에 준비 기간만 십 년 이상 보내고 나니 이미 취업할 가능성이 거의 줄어들었다. 자유롭고 편안한 생활습관에 젖어 있어 결혼에도 별 뜻이 없다. 친구들은 그가 나중에 부모의 집이라도 상속받으면 그야말로 평생 백수로 성공적인 삶을 산 게 아니겠냐고 쉽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거의 수입이 없던 그에게 상속세와 노년의 의료비는 큰 부담이 될 것이 자명하다. 미래에 대한 대비를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 K군은 한창 사춘기가 시작되던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가정의 경제 사정이 갈수록 어려워지자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지느라 일을 시작했다. 그는 혼자 집에서 가사 일을 도맡다시피 하며 성장했다. 아버지의 빈자리가 한동안 K군을 방황하게 했다. 그러나 K군은 패션에 관심이 많아 거기에 몰두했다. 그림을 썩 잘 그렸다. 특히 여성의 옷을 잘 그렸다. 늘 스타일화를 그리며 옷을 디자인하는 꿈을 꾸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뜻을 무조건 존중하며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는 편이었다. 사교육을 시킬 여력도 없었고 성적이 뛰어나게 좋은 편이 아니어서 공부로 성공하라고 채근하지 않았다. K군은 고교 진학 후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 관련 책을 보면서 해외의 패션 학교를 스스로 알아보았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찾았다. 유럽의 명문 패션 학교 입학에 뜻을 두고 그 학교에서 원하는 입학 자격 요건을 갖춰 나갔다. 같은 학교 친구들이 국내 대학 입학을 위해 잠을 줄여가며 공부할 때 그는 자기 뜻에 맞는 공부를 했다. 아무도 그를 간섭하거나 스케줄을 짜주거나 하지 않았다. 그는 고교를 졸업한 후 당당히 유럽의 왕립패션스쿨에 합격해 유학을 떠났다.


이렇게 자립심이 있느냐 없느냐는 자녀의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젠 나이든 부모가 자녀의 평생보모 역할을 하느라 지친다는 말도 들린다.


"자식이 취직해서 경제활동을 해도 자기 용돈으로만 쓰지 독립하는 자금을 모으지 않아요. 언제까지나 부모 옆에 붙어 사려 한다니까요."


"자식이 삼십 세가 아니라 사십 세까지 데리고 사는 부모가 드물지 않아요. 뭐가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요?"


이런 대화가 생경하지 않은 요즘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립하지 않는 자식 이야기는 한숨이 나올 법하다. 그러나 자녀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모든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다. 자녀가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돌이켜 본다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본 경험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성장기 자녀에게 자립심과 자신감을 심어주는 일이 버젓한 대학에 합격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일본에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자립하지 못하고 사회활동을 포기해 집에 틀어박혀 사는 40~64세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약 61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잠재적 히키코모리가 약 21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청소년기에 작은 문제부터 스스로 해결하는 태도를 기르도록 해야 한다. 자립심은 삶을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능력이자 스스로 책임지는 태도다. 조상들이 강조했던 자녀교육이나 심리전문가의 충고를 살펴보면 자립심을 키우는 방법에 여러 공통점이 있다.


▲ 박형란 청소년상담전문가


■ 몸을 움직이는 일을 천하게 여기고 공부만 최고로 치는 분위기가 자녀를 의존적으로 만든다. '소학'에서는 마당에 물 뿌리고 청소하며 어른들이 부르실 때 '예'하고 대답하며 묻는 일에 답하는 일이 인간예절의 첫걸음이라고 했다. 공부에 앞서 인성교육을 중시했다. 어려서부터 과제를 부모가 대신해 주거나 대학 입학에 필요한 스펙을 부모가 채워주거나 하는 일은 자녀의 자립심을 저해한다.


■ 부모가 문제를 해결해 줄수록 자녀는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부모에게 기대지 않게끔 평소 이야기한다. 궁지에 몰리면 스스로 탈출구를 찾게 되어 있다. 자녀가 어디까지 미루고 언제까지 꿈쩍 안 하고 있을지 그 한계가 어디인지 내버려 둔다는 각오를 한다. 부모는 마음을 다스리고 강하게 먹는다. 서양에서는 자녀가 성인이 되면 밖으로 독립시키는 게 상식이라 여긴다. 그래서 홈리스인 줄 알았던 젊은이가 알고 보니 저명한 부모의 자녀였다는 식의 일화가 많다.


■ 성장기의 자녀가 게으르고 일을 미루고 스스로 하려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할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려주는 일이 필요하다. 자녀의 자립심을 키우기 위해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이 부모로서는 고통스러울 수 있다. 자발적으로 행동하거나 일을 추진하지 못하는 자녀는 어려서 그런 일을 스스로 처리할 기회가 부족했을 뿐이다. 커갈수록 교정하기는 더 힘들어진다. 만약 학교나 학원에 전혀 다니지 않고 친구들도 사귀지 않는다면 부모가 작은 일이라도 함께하려 하거나 자녀를 끝없이 격려하여야 한다. 청소년기의 무기력증은 보통 빠르면 6개월, 좀 더디면 2년 정도의 방황기를 거치면 회복된다. 자립심이 없어 보이는 그 기간이 자녀에게 심리적 재충전이나 창의적인 사색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희망을 품고 기다린다.


■ 자녀가 어떤 일을 힘들어한다고 쉬운 길로 안내하는 부모들이 더러 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처럼 아무리 힘든 과정이라도 자녀가 겪어내게끔 무심하게 지켜보는 이해심이 중요하다.


■ '요리하기', '신나게 노는 일', '친구들과 스포츠 경기하는 일', '잠을 규칙적으로 자기', '휴식시간에 잘 쉬기', '친구들을 즐겁게 맞이하고 유머 있게 이야기하는 법 익히기' 등이 자립심을 키우며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돕는 데 유용하다.


■ 인생에 너무 큰 기대를 하고 목표를 지나치게 높게 잡지는 않았는지 살펴본다. 남의 말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작은 일부터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나가는 데서 기쁨을 찾도록 한다.


■ '괜찮아', '실패할 수도 있어', '누구나 처음부터 잘 하지는 않아' '너를 믿어'라고 자주 말해준다.


박형란 청소년상담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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