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 재앙' 아프리카돼지열병 남의 일 아니다
이민재
| 2019-05-27 14:17:06
외국 축산품은 닭·돼지·소 모두 임의 반입 금지
'중국소시지' 대림동에 그득, 국내 여행객이 기념품으로 사오기도
최악의 돼지 전염병으로 불리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중국을 휩쓸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 대표 축산단체인 축목업협회(CAAA) 리시롱 회장은 지난 16일 양대 양돈 업계 모임 '국제 돼지 포럼'에서 현 상황을 '국가적 재난'이라고 규정했다.
중국 올해 2억 마리까지 살처분할 수도
고작 돼지고기 못 먹게 되는 정도가 아니다. 양돈 산업이 중국에 의미하는 바는 생각보다 크다. 중국은 세계 최대 돼지고기 소비국이다. 중국의 전체 양돈 관련 산업 규모는 1조4000억 위안, 우리 돈으로는 240조 원이 넘는다. 중국 국민총생산(GDP)에 기여하는 비율은 2%에 달한다. 중국에서 도축하는 돼지는 매년 6억9000만 마리가량. 미국과 유럽 돼지를 다 합쳐야 2억여 마리 정도다. 리 회장의 우려는 호들갑이 아니다.
모든 일은 1년도 채 안 돼 벌어졌다. 지난해 8월 북부 랴오닝(遼寧)성의 한 농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처음 발병했다. 질병은 9개월도 지나지 않아 31개 성·직할시·자치구로 퍼졌다. 중국 정부는 현재까지 사육 돼지 100만 마리를 살처분했다. 비극은 현재진행형이다. CNN과 뉴욕타임스는 네덜란드 농민협동기관 '라보뱅크'를 인용, 아프리카돼지열병(ASF)으로 인해 올해 중국의 돼지 개체수가 약 3분의 1로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대 2억여 마리가 살처분될 수 있다는 뜻이다.
국내 돼지고기 가격도 13.5% 올라
돼지고기 가격은 고공행진 중이다. 지난 4월 중국 돼지고기 가격은 전년 대비 14.4% 급등했다. 중국 농업농촌부는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올 하반기 중국 돼지고기 가격이 70% 상승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가격 파동은 돼지고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돼지고기 가격이 상승하자 생선, 닭 등 대체재로 수요가 몰리며 전반적으로 식품 물가가 뛰기 시작했다. CNBC는 중국의 4월 식품 물가가 지난해 동기 대비 6.1% 올랐다고 지난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덩달아 우리나라 식품물가도 출렁이고 있다. 지난 21일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국내 축산물 생산자물가는 6.5% 뛰었다. 특히 돼지고기 가격이 전월 대비 13.5% 올랐다. 한은 측은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여파로 수입산 기피 현상이 일어나 돼지고기 가격이 올랐다고 설명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한국에 본격 유입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선우선영 건국대 수의학과 겸임교수는 "국내에 들어오면 양돈 산업만의 문제에서 끝나지 않는다. 식량 자원을 비롯해 경제 전반에 부담을 줄 것이다"고 우려했다.
치사율 최대 100%…백신·치료법 없어
아프리카돼지열병은 '대재앙' 그 자체다. 사람은 걸리지 않지만, 돼지에게 발병하면 치사율이 최대 100%다. 예방백신이나 치료법도 없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는 극한 상황에서도 질기도록 살아남는다. 심지어 육포와 순대로 만들어도 죽지 않는다. 선우 교수는 "이 바이러스는 환경 저항성이 매우 강해 온도 변화에도 오래 버틸 수 있다"며 "냉장 상태에서 몇 개월, 냉동 상태에서는 1000일가량 감염력을 유지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위험성 때문에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제1종 가축전염병으로 분류된다. 현 가축전염예방법은 피해의 정도에 따라 1~3종 가축전염병으로 나뉜다. 탄저병, 광우병으로 잘 알려진 소해면상뇌증이 아프리카돼지열병 보다 낮은 등급인 제2종 가축전염병이다.
잔반 급여·야생멧돼지 통해 감염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치부하기엔 상황이 녹록치 않다. 당장 중국 인접국인 베트남이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베트남에서 처음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한 건 지난 2월 1일, 채 4개월도 되지 않았는데 지금까지 150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현지 사육 돼지의 5%에 해당한다. 베트남 응우옌 쑤언 푹 총리는 지난 19일 긴급회의를 소집해, 아프리카돼지열병의 확산방지 및 통제를 위해 총력전을 펴라고 지시했다. 유엔 산하 세계식량농업기구는 지난 3월 베트남 정부에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할 것을 권고했다. 베트남의 현재가 우리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발병 가능성이 낮지 않다고 지적한다. 우려되는 감염 경로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잔반 급여를 통한 감염'이고, 다른 하나는 '야생멧돼지를 통한 감염'이다. 선우 교수는 "감염의 발단은 대개 잔반(남은 음식물)을 돼지에게 먹이는 데서 시작한다. 그래서 외국의 경우, 잔반 급여 금지를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출처와 내용물을 알기 힘든 잔반 속엔 바이러스에 오염된 음식물이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선우 교수는 "예를 들어, 해외에서 바이러스에 오염된 비가열 소시지를 국내에 가져와 일부를 남은 음식물로 버릴 수 있다. 그걸 잔반처리 업자가 제대로 가열처리(80℃, 30분 이상)하지 않고 농장에 공급 또는 농장주가 처리공정을 거치지 않은 잔반을 돼지에게 먹이면 돼지는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선우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 농가에서 돼지에게 사료를 먹이지만 일부 농가에서는 여전히 잔반을 먹여 처리 보조금으로 수익을 창출한다"며 "그런 농가들이 방역의 사각지대다"라고 지적했다.
야생멧돼지를 통한 발병도 가능한 시나리오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가축으로 키우는 돼지 외에 야생에 서식하는 멧돼지한테도 발병한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도는 중국의 멧돼지가 북한 멧돼지에게 병을 옮기고 북한 멧돼지가 다시 국내 멧돼지에 아프리카돼지열병을 옮길 수 있다. 실제 서유럽에서 동유럽으로 아프리카돼지열병을 옮긴 주범은 야생멧돼지였다.
불성실 신고국 '북한'이 키우는 위험
설상가상으로 북한은 국제 사회에 질병 발생 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고 않다. 중국에 창궐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북한으로 옮겨 갔는지, 옮겨 갔다면 그 범위와 정도는 어느 정도인지 전혀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 선우 교수는 "현재 전세계 국가들이 국제수역사무국(OIE)에 자발적으로 질병 보고를 하고 있지만, 북한의 경우 공식적인 보고가 없다"며 "하지만 발생 가능성은 높다"고 지적했다.
농식품부, '비가열 돼지고기' 반입 규제 높일 예정
아프리카돼지열병이 국내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전문가들은 몇 가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우선 바이러스가 남아 있을 수 있는 비가열 돼지고기 함유 제품(소시지, 육포 등) 같은 휴대축산물 유입을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해외여행 후 입국 할 때, 먹다 남은 음식 아깝다고, 혹은 너무 맛있다고 가져오면 안 된다는 것.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한 나라에서 생산, 제조된 돼지고기나 돼지고기가 포함된 제품을 가져오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같은 이유로 국제 우편으로 외국 축산물을 받는 것도 안 된다. 단, 선우 교수는 "현지에서 조리한 음식을 먹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농식품부는 휴대축산물 반입에 대한 규제 강도를 높일 예정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현재 휴대축산품 반입 시 1회는 10만 원 2회는 50만 원, 3회 부터 1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며 "향후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국에서 제조된 돼지고기나 돼지고기가 포함된 제품을 반입할 경우 1회 벌금으로 500만 원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국은 중국·베트남·몽골·캄보디아 등 전 세계 46개국이다.
농식품부는 홍보 리플렛을 통해 축산관계자들에게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지역의 축산시설 방문 자제와 귀국 후 5일간 가축 사육시설 출입 자제를 요청했다. 또 돼지에게 잔반을 급여하는 농가의 경우 섭씨 80도에서 30분 이상 열처리할 것을 당부했다.
축산물 수입 '깐깐한 검역' 필요
돼지 말고 소, 닭도 안된다. 꼭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국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외국 축산물을 임의로 가져오는 건 예외 없이 불법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UPI뉴스와의 전화에서 "정식 수입이 아닌 이상 기본적으로 축산품의 국내 반입은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한 국가 건 발생하지 않은 국가 건 상관 없이 여행객이 휴대품으로 축산물을 가져와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기자가 "혹시 닭고기나 소고기 제품을 가져오는 건 가능한가" 물었더니 "무조건 안된다. 소고기, 닭고기 다 안된다"며 "일부 열처리된 유제품 정도를 제외하면 예외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축산물은 수입 시 깐깐한 검역이 필요하다. 축산물은 기본적으로 '동물'이기에 동물 질병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우 교수는 "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멸균이 됐다는 검증이 없으면 동물에서 야기되는 질병을 확신시킬 우려가 있다"며 "가령 닭·소도 우리나라에 없지만 외국에만 있는 병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산 돈육 햄·'위미창' 소시지 버젓이 유통
철옹성 같아야 할 차단 방역, 그런데 구멍이 숭숭 나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중국산 돼지고기 제품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지난 22일 JTBC는 중국산 돈육 소시지와 햄이 대림동에서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해당 제품들은 중국 보따리상인 '따이공'이 들여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림동에서 산 중국 소시지를 먹다 버리면 음식물 쓰레기가 된다. 잔반 수거업자가 그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해 잔반 급여 농가에 전달할 수 있다. 이후 농가가 가열처리 없이 그걸 돼지에게 먹이면? 한국 돼지 입으로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있는 중국산 돈육 소시지가 들어가게 된다.
'여행 기념품'이라며 외국 축산물을 사들고 국내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중국 '마약소시지'로 알려진 제품인 '위미창'이 대표적이다. 위미창은 닭고기로 만든 소시지에 옥수수 알맹이를 박아 특이한 식감으로 인기를 끄는 식품이다. 국내 여행객들 사이에선 중국 여행 쇼핑리스트 품목 중 하나로 꼽힌다.
SNS나 인터넷카페를 보면 이 중국 축산제품이 법망을 피해 유입되고 있다고 볼만한 정황이 적지 않다. 인스타그램에서 '위미창'이라고 검색하면 불법 반입이 의심되는 게시물이 나타난다. 한 사용자는 산더미처럼 쌓인 위미창 사진을 올리며 "나는야 소시지부자" "내가 맛있게 먹었다고 하니 ○○가 이번에 한국 올 때 가방에 잔뜩 사왔음" "걸릴까봐 캐리어에, 백팩에 여기저기 꽁꽁 숨켜서 가지고 오신 정성에 박수를 보냅니다" 등의 설명을 달았다.
한술 더떠 중고사이트에 파는 사람도 있다. 네이버 중고물품 매매 카페인 '중고나라'엔 '중국 옥수수 소세지 위미창 팝니다'같은 글들이 올라와 있다. 그 중엔 "직접 사왔다"고 당당히(?) 밝히는 판매자도 있다.
전문가들은 절대 반입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선우 교수는 외국발 질병에 대한 관리라 어렵다고 지적하며 "축산물은 기본적으로 다 안된다. '기념품이니까 나 하나쯤 괜찮겠지'라고 가져오면 경제적 비용이 소요되는 건 물론 사회 혼란의 불씨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KPI뉴스 / 이민재 기자 lmj@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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