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 식는 '핫'플레이스…'O리단길'의 명암
김이현
| 2019-05-06 11:56:20
천정부지로 오르는 임대료…'공실'에도 좀처럼 빠지진 않아
'길(路)'이 변곡점을 맞았다. 그간 소위 뜨는 동네라 불리는 곳은 약속이나 한듯 '○리단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태원 경리단길을 시작으로 망원동은 '망리단길', 송파동은 '송리단길'로 불린다. 지방도 마찬가지다. 경주 '황리단길', 전주 '객리단길', 부산 '해리단길'도 같은 맥락이다.
바뀌는 건 이름만이 아니다. 길 위에 서 있는 건물의 가격도, 동네의 분위기도 변한다. '핫플레이스'라는 인식이 자리잡으면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현상이다. 유동인구가 늘면서 동네에는 활력이 생기지만, 한숨이 깊어지는 사람도 늘고 있다. 폭증하는 임대료에 떠나는 상인들, 조용했던 동네가 시끄러워진 주민들이다. 핫한 '길'의 전국적 확대엔 명암이 교차한다.
젊은층 소비행태 바뀌자 '길'도 변화
O리단길의 역사는 길지 않다. 10년 전만 해도 커다란 매장, 역세권, 막강한 홍보력을 무기로 삼은 대형 상점들이 상권을 주름잡았다. 하지만 획일화한 상품보다 개성이나 개인맞춤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블로그, 트위터 등 각종 SNS 사용량 증가와 맞물려 새로운 문화가 생겨난 것이다.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굳이 먼 길을 돌아 찾아가야 하는 매장은 단점이 아니라 특색이 됐다.
경리단길도 좋은 입지가 아니다. 지하철역과 거리가 멀고 경사진 언덕이 이어져 있다. 길도 좁고 상점의 종류도 다양하지 않다. 외국인 관광객이 주변에 많이 거주하지만 이태원 자체의 임대료가 비싸지면서 옮겨간 상권이었다. 망리단길도 마찬가지다. 망원시장 근처에 위치하고 낡은 골목길이 이어져 있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과 콘텐츠를 가진 가게를 찾는 젊은층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소비행태가 달라진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놀이문화가 별로 없는 우리사회에서 젊은층들 스스로가 찾아가고 만들어가는 세대성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이끌어가는 젊은층의 특성이라는 얘기다. 그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공간은 유명해지면서 새롭게 발전하고 사람들이 더 많이 가게 되고, 또 다른 곳으로 빠르게 이동한다"고 말했다.
급등한 임대료, 떨어지지는 않아
유명세 치르듯 임대료는 치솟았다. O리단길이 시들해졌어도 치솟은 임대료는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 2018년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 조사에 따르면 이태원 일대를 찾는 유동인구는 1년 새 12%나 줄어들었다. 주변 임대료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10.16%, 서울시 평균(1.73%)보다 6배나 더 뛴 터다.
치솟은 임대료는 상인들을 내쫓았다. 한국감정원 자료을 보면 지난해 4분기 이태원 상권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1.6%였다. 서울 상가 공실률(7%)의 세 배에 달한다.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던 가게 주인들이 짐을 싼 것이다.
그런데도 임대료가 내려가는 추세는 더디다. 1997년부터 경리단길에서 제과를 판매했던 A씨는 "3~4년 전 인기가 반짝했을 때는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주말에도 사람이 없다"면서 "임대료와 권리금은 천정부지로 올려 놓고 내려가지는 않으니 모두들 떠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임대료가 확 낮아지진 않지만, 권리금은 거의 없어지는 추세"라면서 "워낙 핫플레이스였지만 거품이 꺼졌고 경기침체도 맞물렸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와 올해가 지금껏 가장 힘든 시기"라고 했다.
'핫플레이스'의 지속시간이 그 만큼 짧다는 얘기다. 망리단길 근처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B씨는 "메인 길은 임대료가 워낙 비싸고 거품이 심한데 그 마저도 같은 매장에 업종변경이 한 달에 한번은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기존에 유명한 카페나 식당은 사람들이 줄을 잇는데, 이들이 망리단길을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이지 망리단길도 이미 지나간 동네"라고 말했다.
옮겨가는 '핫플레이스'…되레 반감도 생겨
이러한 패턴은 지역을 넘나든다. 경리단길이 뜨고난 지 몇 년 만에 핫플레이스는 상수동, 익선동, 송파동, 문래동 등으로 옮겨가고 있다. '뜨는 동네'로 알려지면 사람이 붐비고 골목 상권이 확대된다. 상업적 젠트리피케이션이 나타나는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란 도심 인근의 낙후 지역에 고급 주거 지역이나 고급 상업가가 새롭게 형성되는 현상을 말한다. 외부인이 유입되면서 본래 거주하던 원주민이 밀려나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인다.
여기에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소비계층의 요구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빠르게 이동한다. 도시공간이 일회용품처럼 소모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혐핫'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난 까닭이 여기에 있다. '혐핫'은 핫해지는 것을 싫어한다는 용어로, 맛집이든 동네든 주변에 알리지 않고 감추는 경향을 말한다.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C씨는 "송리단길이 생기고 나서 골목분위기가 바뀌긴 했다"면서도 "그 덕에 집값과 음식점 가격이 상승했고, 과도한 송리단길 광고와 더불어 시끄러운 동네가 됐다"고 했다. 익선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D씨는 "사람이 붐비는 것은 좋지만, 그 만큼 월세도 오를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상업지향적 변화 우려…자정 분위기 만들어야"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을 방법은 없다"면서 "단지 임차인을 보호하는 법을 강화해서 임대인의 권리를 축소시킬 순 있는데 그 게 상가건물 임대차 보호법 개정안"이라고 말했다. 개정된 상가건물 임대차 보호법에 따르면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 행사기간이 기존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됐다. 권리금 회수 보호 기간도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됐고, 임차료 인상률 상한은 연 9%에서 5%로 낮아졌다.
권대중 교수는 "무엇보다 스스로 자정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상가협의회를 만들어서 임대료를 무리하게 올리지 않는다든지 임차인을 보호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정부가 해야할 일"이라고 말했다.
곽금주 교수는 "빠르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의 특성이 오히려 너무 상업지향적으로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젊은층들은 급격하게 변화를 갈구하고 새로운 것을 찾는데, 이것이 상업적으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문화를 찾아가는 방향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KPI뉴스 / 김이현 기자 ky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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