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아기를 오지 못하게 막는 것은 누구인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4-01-26 16:52:10

여섯 번째 장편 '분지의 두 여자' 펴낸 소설가 강영숙
대리모 선택한 두 여자를 통해 변질된 생명 가치 탐색
저출산 걱정 대신 생명을 환대하는 환경부터 만들어야
"조금 여유있게 좋은 거, 아닌 거 다 받아들이며 살자"

한국의 출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이자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인구절벽'이라거나 '집단자살사회'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은 위기의식이 도처에 팽배하다. 정부 당국이나 정치인들이 일제히 대책을 들고 나오지만, 출산자에게 돈을 더 많이 주는 경쟁으로만 치닫는 형국이다. 여성을 도구화하는 시각에서 벗어나 생명을 본연의 가치로 받아들이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한, 돈으로 파국을 해결하기는 난망하다. 강영숙 소설 '분지의 두 여자'(은행나무)는 이러한 현실을 찬찬히 돌아보게 만드는 장편이다.  

 

▲대리모로 나선 두 여자와 버린 아기를 발견한 청년을 통해 달라진 세태의 생명을 돌아본 소설가 강영숙. [은행나무 제공, (c)정멜멜] 

 

대리모의 길을 가는 두 여자가 있다. '진영'은 딸을 잃은 뒤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 이타적 의미로 나섰고, '샤오'는 절박한 경제적 이유로 타인의 씨앗을 자신의 몸에 심는다. 이들 외에 청소용역회사 직원으로 일하며 쓰레기를 수거하는 청년 '민준'이 나온다. 민준은 공원에서 버려진 아기를 발견하고 신고하는 대신 그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달려간다. 두 여자의 대리모 지원은 어떤 결말을 맺고, 민준이 발견한 아기는 어디로 가는지 소설은 그 사연을 따라간다.

진영은 B시로 돌아와 대학 교수로 일하는데,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딸이 그 지역의 호수에서 시체로 인양된다. '창자까지 다 녹아버리고, 똥을 누면 음식물이 아니라 내장이 녹아나온다'고 울부짖는 진영이 그 상실감을 극복할 방법은 도무지 찾을 수 없다. 진영이 생각해낸 방안은 다시 한 번 하나의 생명이 자신의 몸을 '통과'하게 하는 것이었다.


샤오는 무능한 남편을 대신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열 살짜리 딸을 버리고 집에서 나왔다. 재개발이 지연된 퇴락한 다세대주택에서 기거하며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지만 여의치 않다. 결국 그녀가 선택한 길은 '일 년 동안 허드렛일을 해서 버는 돈의 세 배를 단 십 개월 만에 벌 수 있다'는 '단기 직업'이었다. 최대의 수익 창출이 지상 목적인 B클리닉 코디네이터가 여자들을 모아놓고 하는 말. 


우리가 이렇게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것도 얼마나 큰 행복인가요. 저희 병원은 자력으로 출산할 수 없어 고통 받는 여성들을 위한 마지막 장소가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저희를 믿으셔야만 최첨단 의학을 통한 가족 만들기 서비스를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이건 아주 어메이징한 일이고 여러분들 인생을 통째로 바꿔놓는 빅 이벤트입니다. 저희 병원의 모토인 뷰티풀 스토리를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가겠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진영'은 '여성들은 왜 여성이라는 테두리 안에 갇혀야 하는가' 자문한다. 전화로 만난 강영숙은 "몸에 갇힌다는 의미는 여성으로 태어났으면 당위적으로 아이를 낳아야 하고 또 모성은 당연한 거라는 전제에 갇힌다는 맥락"이라고 했다. 진영이 자발적으로 대리모를 자청한 배경에 대해 "출산이라는 것이 뭘 가진다, 낳는다는 차원보다는 개인적으로 자신의 몸을 통과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면서 "생명이 몸을 통과하는 경험으로 받아들인 것인데, 진영도 그 과정을 다시 경험하게 되면 딸을 상실한 고통을 좀 잊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두 여자가 생명을 뱃속에서 키워가는 과정이 난관에 부닥친다. '진영'은 암세포 돌연변이 유전자가 뒤늦게 발견되면서 클라이언트가 아기를 외면하게 되고, 샤오는 하혈과 복통 끝에 제왕절개를 해야 할 상황에 이르지만 클라이언트인 사십대 부부는 이런 경우에 합의하지 않았다고 수술비를 거부한다. 샤오가 자비로 수술을 진행하지만, 샤오의 운명은 표류한다. 나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날지 모를 아기를 거부하는 클라이언트 '희우'의 생각.


▲강영숙은 "이번 소설은 의학의 발달이나 과학의 발달이 인간을 억압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은행나무 제공, (c)정멜멜] 

 

아기를 오지 못하게 막는 것은 누구인가. 희우는 그것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 다른 사람들이, 제도가, 종교가, 국가가 막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아기가 유전적으로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태어날지는 미지수다. …그래도 희우는 이런 나쁜 일이 평생 힘들고 성실하게 살아온 자신에게 굳이 일어나야 했는지, 그것을 용납할 수 없다. 자신의 인생에는 조금의 문제도 있어서는 안 된다.

-아이를 세상 오지 못하게 막는 것은 궁극적으로 어느 주체의 책임인가.
"모두가 '마이 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누군가에게 떠넘긴다. 그렇게 떠넘기고 미루면서 자기는 리스크를 안으려고 하지 않는 상황이 되게 많은 거 같다. 처음에는 '희우'라는 인물이 없었는데 그런 목소리도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 같았다. 자신이 낳는 것이었으면 그냥 받아들였을 텐데 출산이 산업으로, 비즈니스로 전개되면서 이제 선별을 하게 되고 그 아기를 가져올까 말까 고민하는 거다."

-무엇이 결여돼서 이런 난감한 현실이 전개되는 것일까.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예전 시골에서는 동네에 좀 이상한 아이들이 많고, 그래도 다 같이 그냥 살았다. 같이 놀고,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남의 집에 잠깐 맡기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오가며 살았다. 지금은 유전적으로 조금 문제가 있거나 작은 문제라도 발견되면 생명을 환대하지 않는다. 의학의 발전이 반드시 좋은 것 같지만은 않다. 사람들을 더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측면도 있다."

병아리를 부화시키는 과정에서 시들시들한 것들은 쓰레기통에 버리는 과정과 인간을 출산하는 과정이 크게 다르지 않은 국면으로 흘러가는 꼴이다. 청소용역회사 남자 '민준'은 지난해 봄 200자원고지 600장을 써놓을 때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강영숙은 누군가 버리면 치워야 하는 존재가 떠올라 젊은 민준을 생각했고, 쓰다 보니 민준의 역할이 중요해지더라고 했다. 민준이 발견한 아기는 진영이나 샤오의 아이거나, 나올 때부터 불평등한 모든 아이들의 상징일 터이다. 민준의 쓰레기 매립장 독백.

버려진 건 아기인데 왜 민준도 버려진 듯한 느낌을 받는 걸까. 아기는 누가 버렸을까. 아기는 왜 버려졌을까. 그렇게 버려질 만큼 출생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걸까. 세상에 완벽한 존재가 있나. 완벽한 존재는 없다. …쓰레기 매립지 너머로 해가 넘어가려는 순간 민준은 아기 바구니를 한 번 더 내려다본다. 민준은 꿈에서 봤던, 책 표지에 새겨졌던 두 글자를 발치의 쓰레기에서 발견하고 읽는다. 바로 'Life', '생명'이라는 글자다.

 

▲강영숙은 "우리의 삶이 삶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로 대체되어 가는 듯한 이상한 징후를 발견했다"고 썼다.   [은행나무 제공, (c)정멜멜] 

 

-쓰레기 매립장까지 가는 '생명'을 어찌할까.

"누구나 다 이기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텐데 그냥 여유가 좀 있었으면 좋겠다. 햇빛이 좋은 날 돌아다니면 그냥 이 햇빛이나 자연이 이렇게 좋은 거구나 그런 생각들을 하는 것처럼, 생명에 대한 생각도 그렇게 너무 복잡하게 자기 이익을 놓고 따진다기보다는 조금 편안하고 자연스러웠으면 좋겠다. 꼭 아기라는 형태의 것만이 아니라, 우리 환경이나 옆에 있는 어떤 것들에 대해서도 그렇다. 사람들이 너무 쫓기고 각박한 것 같다. 요즘은 사는 게 공포스러운 부분조차 있는 것 같다. 조금 더 여유 있게 좋은 거, 좋지 않은 것들을 그냥 받아들이며 살고 싶은 느낌이 있었던 것 같다"

강영숙은 최근작인 장편 '부림지구 벙커X'에 이르기까지 환경 오염과 자연 재해로 고통받는 재난 상황을 꾸준히 다루었다. 그는 이번 소설에서는 "기후 변화나 환경 문제 같은 재난을 하나의 심리적 배경으로 사용하는 차원에서 나아가 사람들의 삶에 실질적으로 파장을 깊이 주는 형태로 만들어보고 싶었다"면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기실 우리가 태어난 자리의 상식과 인식의 틀 안에 존재하는 것이 답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소설을 쓰는 동안 한두 가지 질문을 내내 가지고 있었는데 그 하나는 삶의 의미에 관한 것이었다"면서 "다른 하나는 우리의 삶이 삶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로 대체되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상한 징후의 발견이었다"고 썼다. 엄마를 호스피스 병동에 두고 오가며 지켜본 일련의 과정에도 이번 소설은 빚을 졌다고, 강영숙은 말했다. 작가의 맺는 말.

이 소설을 쓰느라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아마 그것을 후회하게 되겠지만 이렇게라도 꾸역꾸역 써나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소설의 미진함을, 살면서 쓰면서 채워갈 수 있게 되리라 믿는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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