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혐오는 어떻게 전염되는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4-04-12 16:52:59

세 번째 창작집 '유대인 극장' 펴낸 소설가 이성아
경계인들의 삶을 천착하면서 혐오의 속성을 성찰
혐오는 무언가 이용하려는 세력들이 조장하는 것
"자발적 망명정신으로 이제야 제대로 쓸 것 같다"

'세상은, 낮과 밤, 빛과 그늘, 그리고 시차로 나뉘어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태양을 공유하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우리는 이어져 있는 거라고. 서로를 끊임없이 의심하라고 아무리 무섭게 닦달해도 신비롭게 이어진 인연마저 끊을 수는 없다고. 단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보지 않았다고 모르는 건 아니라고. 모른다고 없는 건 아니라고.'

 

▲10여 년 전부터 구례에 내려가 살면서 글쓰기에 몰입해온 소설가 이성아.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보지 않았다고, 가보지 않았다고, 만난 적이 없다고 반드시 모르는 건 아니다. 어떤 존재는 구체적인 형상을 보지 않고도 더 잘 알 때가 있다. 소설가 이성아는 최근 펴낸 세 번째 소설집 '유대인 극장'(강) 수록작 '스와니강'에서 그런 신비로운 인연에 대해 말한다. 평행우주 저편에서 살아가는 듯한 분신 같은 존재, 팬데믹 시절 뉴욕에 살던 그 여인의 황망한 퇴장이 가슴에 맺혀 가본 적 없는 '스와니강'을 떠올리며 썼다.

팔순이 넘은 엄마가 역시 팔순을 넘긴 박 선생님과 동거를 시작했다. 두 분은 육십여 년 전 고향의 산골 국민학교 초임 교사로 부임해 이십대를 함께 보낸 사이였다. 육십 년 세월이 지나서 재회해 함께 살고 있는 건데, 삼십대에 이혼해서 삼십 년 가까이 혼자 살고 있는 나는 엄마에게 경의를 표한다. 팔십이 넘은 나이에도 내가 모르는 매력을 간직하고 있는 엄마가 사랑스러웠고, 세상의 통념을 깨는 듯해서 몹시 유쾌하기까지 하다.

박 선생님 딸인 그녀는 나처럼 힘들게 이혼을 한 뒤 뉴욕으로 건너가 딸 '은지'와 함께 한의사로 살아간다. 양해의 말 한 마디 없이 가정을 파탄 내는 어른들이 만들어낸 무력함 속에서 낯선 환경에 던져진 은지는 약이 없으면 발작이 일어나는 약물중독에 빠졌다. 뉴욕의 그녀는 발작 상태의 딸을 두고 코로나 바이러스에 스러졌다. '나'에게도 힘들었을 딸이 있다.

'하루아침에 달라져버린 눈앞의 세상에, 은지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녀는 어쩌다 미국까지 가야 했을까. 전남편의 지속적인 괴롭힘에 대한 이야기를 엄마로부터 들었지만, 듣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워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그건 마치 세상 사람들의 입방아에 돌고 돌아온 나의 추문처럼 쓰라렸다. 그 무렵, 나는 그녀를 나의 분신처럼 느끼고 있었다.'

표제작 '유대인 극장'의 언니도 추문의 피해자다. 혐오는 누구나 쉽게 단정하고 전파하는 추문을 매개로 한다.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폴란드 바르샤바에 머물고 있는 나에게 언니가 불쑥 찾아온다. 바람 피운 남편으로부터 적반하장의 이혼을 당한 언니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추근거림과 그 추문을 피해 도망치듯 동생에게 온 것이었다. 피아니스트인 언니는 왜 당당하게 대처하지 못했느냐는 동생의 힐난에 반문한다. '내가 그런 거 잘 못하는 거 너가 더 잘 알지 않아?' 어린시절 언니만 떠받드는 부모에게 화가 나서 콩쿠르에 나가는 언니의 악보를 칼로 실뱀장어처럼 만들었던 기억이, 동생에게는 지워졌는데 언니에겐 남아 있다.

사라진 언니를 찾아다니다 바르샤바에서 우연히 만난 홀로코스트 실험극 '유대인 극장'에서 동생은 자신도 감염됐을지 모를 혐오를 들여다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 방제복을 입은 이들이 사람들 귀에 대고 뭔가를 속삭이며 돌아다녔다. 속삭임을 들은 이들이 마치 감염이라도 된 듯 방제복을 입은 이들과 똑같은 짓을 했다. 동생은 방제복을 입은 이들이 출현했을 때는 숨이 턱 막혔다. 그녀가 자신에게 독설을 날린 폴란드 할머니와 무엇이 다른가 싶은 자책이 명치를 찔러댔다. 혐오는 왜, 어떻게 전파되는가.

"요즘 시대가 혐오를 가지고 마케팅 하는 느낌이 들어요. 자꾸 혐오를 전염시켜서 그걸 가지고 이익을 누리려는 세력들이 있어요. 유럽에서 좀 충격을 받았는데 우익들이 활개를 치고 있더군요. 바르샤바에서도 감염되듯 번져가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이상향이라고 생각했던 북유럽 이런 데조차 요즘 난민에 대한 혐오라든가 이런 것들이 갈수록 더 심한 것 같아요. 혐오는 뭔가 이용하려는 세력들에 의해 조장되는 것이지, 인간 본성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10여 년 전부터 내려와 살고 있는 전남 구례 광의면 집필실에서 만난 이성아는 "소설 속 동생은 어린시절 부모에게 배제당하는 듯한 느낌에 상처받았을 뿐 아이들의 본성이 그런 건 아니다"면서 "배우 이선균의 안타까운 죽음에서 보듯 무심코 추문에 가세해 혐오하는 무리에 자신도 포함돼 있는지 점검해볼 필요는 있다"고 덧붙였다.

 

▲이성아는 "혐오는 어떤 세력이 조장하는 것이지, 인간 본성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베이비시터'의 '우희'는 아이 넷을 키워낸 전업주부인데 쉰 중반을 넘어선 나이에 처음으로 구직활동에 나섰다. 병적으로 집착하는 집요한 남편의 가스라이팅으로부터 깨어나 독립하기 위해 일이 필요했고, 능력 있는 디자이너 '리사'의 자폐아 아들을 돌보는 베이비시터 자리를 얻었다. 자폐아인  '기우'는 오히려 스스로 세상으로 향한 문을 닫아버린 주체적인 존재처럼 보이는데 비해, 정작 세상이 의심하지 않는 남편 선호는 주님의 말씀을 들먹이며 자신을 존경하고 복종할 것을 강요한다. 우희는 타인을 이해하려고 하면 할수록 어째서 자신은 점점 지워는지 불가사의했다. 남편이 이기적으로 보내온 '주님의 말씀'처럼, 그녀는 그동안 제대로 세상과 사람을 보지 못한 벌을 받는 양 눈이 먼다.


이성아는 1998년 단편 '미오의 나라'를 '작가'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재일북송교포를 천착한 이 단편에서부터 줄기차게 경계에 선 이들과 시대의 폭압에 무너진 사람들 이야기를 펼쳐왔다. 이번 창작집에도 8편 중 절반인 4편에 북송교포와 탈북자들의 삶이 투영돼 있다. 

 

'천국의 난민'은 장편에 담지 못했던 재일북송교포의 삶을 들여다본 단편이다. '그림자 그리기'는 탈북자들의 가장 어두운 현실을 직시한 작품이고, '리영광씨가 오늘도 걷는 까닭은'은 탈북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자유로운 인물형을 제시한다. '삼함닭곰집에서'에는 탈북했다가 다시 북으로 돌아간 여성을 등장시켜 탈북자의 인권에 대해 돌아보는 에피소드를 진설했다.


처음부터 작가를 지망한 것이 아니라 저널리스트를 꿈꾸었다는 이성아의 관심은 주로 공동체의 삶에 꽂혀 있지만, 정작 등단의 동력은 여성의 부당한 처지와 결혼생활의 갈등이 제공했다. 이전 창작집 '절정'(2005)과 '태풍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요'(2011)에서는 주로 '가족 로망스'의 환상을 깨고 주체적인 삶을 자각하는 여성들을 그려냈다. 그는 이번 소설집에 이르러 이제 사회적인 이슈와 내부로 향하는 시선을 함께 결합하는 단계로 접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일단 저에 대한 것부터 풀어낸 다음에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지금은 그 두 개가 이제 다시 한 번 만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따로 내 속에 있는 거를 해소한 뒤 사회적인 문제와 만났다가, 지금은 세상 눈치를 보지 않고 제대로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한데, 막연하지만 진짜 문학이 시작되나… 이런 생각도 들어요."

 

▲이성아는 "갈수록 소설 쓰는 일이 재미있다"면서 "여전히 가장 가슴 뛰는 일"이라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이성아는 지난달 아일랜드에 가서 떠올렸던 '자발적 망명정신'을 언급했다. 제임스 조이스처럼 바깥에서 안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그가 내려와 살고 있는 구례도 일종의 자발적 망명지에 가깝다고 했다. 그는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구례 이야기를 통해 인구 소멸 시대 귀촌한 사람들을 들여다볼 계획이다.

"바르샤바 레지던스 3개월을 하고, 발칸반도도 혼자 여행하면서 처음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후로 정말 퇴보에 퇴보를 거듭하고 있는 현장을 보는 느낌이었어요. 국적이라는 게 자국민을 보호하는 것 같지만, 진짜 권력 한줌을 위해서 국민들을 아무렇지 않게 버릴 수 있는 그런 거더군요. 세계 질서라고 사실 말은 거창하게 하는데 한 꺼풀만 들춰보면 참 같잖은 그 권력에 대한 욕망, 이런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창 밖으로 연분홍 박태기꽃이 한들거리는 집필실의 오래된 풍금 곁에서  "갈수록 소설 쓰는 일이 재미있다"고 이성아는 말했다. 그는 "할 줄 아는 게 소설 쓰는 것밖에 없는 사람이 마지막까지 남는 것 같다"면서 "여전히 가장 가슴 뛰게 하는 일은 소설"이라고 덧붙였다. 가슴 뛰는 '작가의 말'.

-젊은 날의 들뜬 욕망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니, 마치 메이크업을 지운 연극배우처럼 말갛고 담백한 느낌이 나쁘지 않다. 어쩌면 이제야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자발적 망명 정신'으로, 자유롭게.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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