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문학의 거목, '광장'의 최인훈 작가 별세
권라영
| 2018-07-23 13:29:33
평생 이념과 현실 문제 치열하게 성찰
한국 현대문학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소설 '광장'의 작가 최인훈이 23일 오전 10시 46분 별세했다. 향년 84세. 고인은 4개월 전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해왔다.
고인은 1934년(공식 출생기록은 1936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재학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월남해 195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으나 전후 분단 현실에서 공부에 전념하는 데 갈등을 느끼고 1956년 중퇴했다. 이후 1959년 군 복무 중 쓴 단편소설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와 '라울전(傳)'을 '자유문학'지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4.19혁명이 있고 7개월 뒤인 1960년 11월 '새벽'지에 중편소설 '광장'을 발표했다. 발표 직후부터 문단 안팎에 큰 파장을 가져온 이 소설은 전후 한국문학의 지평을 새롭게 연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된다. 출간 이후 현재까지 통쇄 204쇄를 찍을만큼 널리 읽혔으며,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최다 수록 작품이라는 기록도 가지고 있다.
'광장'을 필두로 그는 이데올로기가 대립하는 분단 현실을 문학적으로 치열하게 성찰했다. 저명한 문학평론가 김현(1942∼1990)은 그를 두고 "뿌리 뽑힌 인간이라는 주제를 보편적 인간 조건으로 확대시킨 전후 최고의 작가"라고 평했다.
전망이 닫힌 시대의 존재론적 고뇌를 그린 '회색인'(1963),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면서 파격적 서사 실험을 보인 '서유기'(1966), 신식민지적 현실의 위기의식을 풍자소설 기법으로 표현한 '총독의 소리'(1967~1968) 연작, 20세기 자체를 전면적으로 문제 삼으며 동시대인의 운명을 조망한 대작 '화두'(1994)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문학계는 그를 "근대성에 대한 관심,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 새로운 형식의 탐구를 바탕으로 '신이 죽은 시대, 신화가 사라진 시대에 신비주의와 소재주의에 빠지지 않고 자기의 방법론으로 개발한 내면성 탐구의 절정에 선 작가", "문학작품을 썼다기보다 차라리 '문학을 살았다'라는 표현에 적실한 작가"로 평한다.
그는 2008년 "한 권 분량의 새 작품집을 낼 만한 원고를 갖고 있다"고 밝혔으며 이듬해 자신의 희곡이 올려진 무대에서 관객들과 만나 "창작하는 사람들에게 은퇴란 없다. 지금도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고 말하며 새 작품에 대한 의지를 보여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돌연히 찾아온 암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아 2003년 계간지에 발표한 단편 '바다의 편지'가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고인은 생전 동인문학상(1966), 한국연극영화예술상 희곡상(1977), 중앙문화대상 예술 부문 장려상(1978), 서울극평가그룹상(1979), 이산문학상(1994), 박경리문학상(2011) 등을 받았다.
1977년부터 2001년 5월까지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많은 문인 제자를 배출했으며 퇴임 이후에도 명예교수로 예우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원영희 여사와 아들 윤구, 윤경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다. 이날 오후부터 조문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장례는 '문학인장'으로 치러지며, 위원장은 문학과지성사 공동창립자이자 원로 문학평론가인 김병익이 맡았다.
영결식은 25일 오전 0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내 강당에서 열린다.
KPI뉴스 / 권라영 기자 ry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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