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묘지와 친일②] 현충원 '친일반민족행위자 묘' 이장법 또 폐기 수순?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 2026-02-26 17:40:35
친일 인사 묘 이장 관련 입법, 근 20년간 거듭 실패
22대 국회에도 발의됐지만 20개월간 심사도 못 받아
정부·여당 결단 없으면 "이번에도 폐기될 가능성 커"
김백일, 김홍준, 백낙준, 신응균, 신태영, 이응준, 이종찬(이상 국립서울현충원, 가나다 순) 그리고 김석범, 백선엽, 백홍석, 송석하, 신현준(이상 국립대전현충원).
이 12명은 국가유공자 자격으로 현충원에 안장됐다. 여야 합의를 바탕으로 제정된 특별법에 따라 2005~2009년에 활동한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한 1006명에 속하는 이들이기도 하다. 정부에서 공인한 친일 인사라는 얘기다.
12명 중 교육·종교계에서 활동한 1명을 제외한 11명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 또는 일제의 괴뢰 국가인 만주국 군대의 장교였다. 조선인이 다수 포함된 만주 일대의 항일 무장 세력 탄압에 앞장선 것으로 악명 높은 간도특설대 출신도 여럿이다(각각의 이력은 별도 기사 '국립묘지와 친일' ① 참조).
현충원에 묻힌 친일 인사는 이들만이 아니다. 민간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에서 2009년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이들 중 69명(위 12명 포함)의 묘가 현충원에 있다. 일제를 위해 싸운 친일 인사들이 일제와 맞서 싸운 독립유공자들과 함께 현충원에 안장된 기괴한 풍경이다.
이 때문에 오래전부터 시민 사회에서는 현충원의 친일 인사 묘를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 인사 묘 전체를 당장 이장하는 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정부에서 공인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묘라도 옮기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호응해 친일 인사 묘 이장 관련 법안이 노무현 정부 시기인 17대 국회 이후 총선을 거쳐 국회가 새로 구성될 때마다 거듭 발의됐다. 하지만 매번 입법에 실패했다. '더불어민주당 계열 국회의원이 법안(들) 제출→임기 만료로 폐기'가 근 20년간 반복됐다.
보훈처(현 보훈부)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된 이들은 독립운동이 아닌 다른 자격으로 안장 자격이 부여돼 법적 문제가 없다', '이장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그러는 동안 2020년 백선엽이 현충원에 안장됐고, 2023년에는 대전현충원 홈페이지 '안장자 찾기'에서 백선엽이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기록이 삭제됐다.
이번 22대 국회에서는 친일 인사 묘 이장을 위한 법이 제정될 수 있을까? 제107주년 3·1절을 앞둔 현시점에서 볼 때 가능성은 크지 않다.
26일까지 국회에 발의된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국립묘지법) 개정안 30건 중 친일 인사 묘 이장 관련 법안은 1건뿐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김구의 증손인 민주당 김용만 의원 등 11명이 22대 국회 개원 직후인 2024년 6월 12일 발의한 법안이다.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된 사람 중 안장대상심의위원회에서 '국립묘지 명예를 훼손한다'고 인정한 사람을 국립묘지 안장 대상에서 제외하고, 보훈부 장관이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유골이나 시신을 국립묘지 이외의 장소로 이장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발의 후 1년 8개월 넘게 지나도록 이 법안은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입법을 위한 기초 단계인 법안심사소위의 심사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우리가 '소위에 올려 일단 심사라도 하자'고 하고 있는데 국민의힘에서 반대해 심사가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KPI뉴스에 밝혔다. 이어 "정무위에서 국민의힘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민생 법안 등이 있어서 국립묘지법 개정안이 우선순위에서 밀린 면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쪽의 반대는 근 20년간 친일 인사 묘 이장 법안 제정을 가로막은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의 외손인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은 KPI뉴스와 한 통화에서 "국민의힘 또는 그 전신 정당에서 반대한 것이 그동안 발의된 관련 법안이 다 임기 만료로 폐기된 가장 큰 이유일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법안 제출→임기 만료로 폐기'가 반복된 것은 민주당의 전반적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수에 가까운 국민의힘 쪽의 반대를 넘어서려면 친일 문제 해결을 언급해온 민주당 쪽의 응집된 정치력이 필수적인데, 그런 것을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 전 관장은 "민주당 의원 다수는 이런 문제를 건드리는 게 유리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문제로 논쟁이 벌어지면 보수 언론 등으로부터 '친일 문제를 거론하는 건 좌파다'라고 공격을 받기 때문에 논쟁을 피하려는 분위기가 민주당에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이 전 관장은 "백선엽이 현충원에 안장될 때도 민주당은 겉으로는 반대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세게 반대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당시 조선일보에서 "백 장군이 현충원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이 나라는 더 이상 대한민국이 아니다"라고 단언하는 등 보수 언론의 공세가 거셌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도 민주당 차원에서 관련 법안을 '나 몰라라' 하는 일이 반복됐다고 비판했다. 방 실장은 KPI뉴스와 한 통화에서 "민주당은 야당일 때는 친일파 청산을 얘기하지만 정권을 잡으면 그게 흐지부지되는 모습을 거듭 보였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보인 모습에 대해 방 실장은 "선거를 의식하는 면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친일 인사 묘 이장을 추진하면 보수표를 잃을 수 있다고 정치공학적으로 바라보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에 더해 "강고한 수구 세력의 눈치를 보는 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친일 인사 묘 이장을 어렵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는 현충원의 역사다. 서울현충원은 1954년 착공됐는데, 본래 국군묘지로 조성됐다. 애국지사 등도 안장될 수 있는 국립묘지로 바뀐 때는 1965년이다. 친일 인사 묘 이장에 반대하는 쪽에 '독립유공자 묘역이 나중에 끼어든 것인데 우리가 왜 옮겨야 하느냐'고 비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독립운동가 후손들 사이에서 독립유공자 묘 이장 얘기도 나온다. 이 전 관장은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친일파와 같은 공간에 모실 수는 없는 일이니 차라리 독립유공자 묘역을 다른 곳에 만들어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그런 분리는 안된다'고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실은 국립묘지법 개정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밝혔지만, 그것만으로 입법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방 실장은 "이대로라면 이번에도 임기 만료로 폐기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정부와 여당 차원의 결단과 추진 없이는 상황을 바꾸기 쉽지 않아 보인다.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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